여호와를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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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믿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마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그분이 네 갈 길을 알려 줄 것이다.
본격적으로 실제적인 지침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지혜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믿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교회론’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주로 배웁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학자의 말들과 내용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그래! 이게 진정한 교회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나름 교회란, 이래야 해!, 교회란 저래야 해! 라고 생각하며 저만의 기준으로 여러 교회를 제단했던 부끄러웠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전공책 딱 한 권읽었을 때 였습니다. 원래 전공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똑똑하잖아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참으로 한심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거 잘하면 교회 아니였겠다 생각도 하는데 어찌 되었건..)
제가 만약 그 지식으로 교회를 세우지도 못했겠지만, 교회를 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성도 여러 명을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여 저의 지식으로 교회를 세우려고 한들 아쉬움이 있고 다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고, 주님께 여쭈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 주님이 저의 부족한 지식도 사용하여 주시고, 교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처럼 제가 전공책을 통해서 얻은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지식’입니다. 본문은 그 지식이 전부인 것처럼 지식만을 의지하지 말라고, 즉 지적인 교만에 빠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여 지식을 얻는다고 한들, 다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 설령 우리가 자타공인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앞에서 날마다 겸손함으로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경험을 주님 앞에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인생의 주관자이며,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잠언 기자도 그런 의미에서 6절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야다'라는 단어 입니다. 야다는 보통 ‘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창세기에서는 남녀가 ‘동침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시편에서는 ‘~와 관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감안하여 6절을 다시 읽어 본다면 ‘너는 범사에 끊임없이 여호와를 알아가라’, ‘끊임없이 교제하라, 끊임엄이 관계해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길 원하시며, 끊임 없이 우리와 관계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그러면!' 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 길을 인도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권위적으로 내 말을 잘 듣고 그 말을 복종하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이어 나간다면, 그분을 끊임 없이 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찾는 자를 얼마나 기뻐하시며, 우리 인간과 관계하기 원하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시에 하나님이 얼마나 인격적이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 길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길에서 펼쳐지는 여러 변수들을 알 지 못합니다. 화창하고, 맑은 날이 계속 될지. 눈이 올지, 비가 올지, 폭풍이 칠지, 천둥이 칠지 말입니다. 뭐 불가능에 가깝지만, 엄청난 예지력으로 그 변수들을 기가막히게 알아차렸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그것들을 안다고해도 그 여러 변수들이 우리에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편적인 생각으로 볼 때, 우리의 인생이 평탄한 것이 행복한 삶이고, 굴곡 있는 삶이 불행한 삶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평탄한 삶을 살아서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하지 않는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이와 반대로 인생의 선배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굴곡있는 삶을 통해 자신이 더욱 단단해 졌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그럼, 굴곡있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생의 굴곡으로 삶이 왜곡되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인생 또한 허다합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의 인생의 여러 변수들이 있고 그 변수들이 장차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여러 변수들이 바른 의미가 되길 원한다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주님께서 주관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인생에 참되고 바른 의미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지식을 내려 놓고, 매 순간, 매 상황 하나님을 의지 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모든 인생을 인도해 주실 것이며 그 인생을 의미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지 말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고 악에서 떠나거라.
이것이 네 몸을 건강하게 하며 네 뼈에 영양분이 될 것이다.
7절은 위의 5절의 내용과 아주 비슷합니다. 결국 본 잠언에서는 ‘진정한 지식’이 무엇이며, ‘지혜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악에서 멀리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물론 앞에서 살펴 본 내용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겠지만, 그만큼 중요하기에 우리에게 많이 들리는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해 주시고,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주님앞에 겸손히 내려 놓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네 재물과 네 수확물의 첫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창고가 가득 차고 네 포도주 통에 새 포도주가 넘칠 것이다.
다음으로 재물에 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재물의 힘은 대단합니다. 저도 그 위력을 알아가는 중이지만, 인생의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식을 낳고 더 많은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 재정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느낄거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저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이듭니다. 그러니 수 많은 신앙인들이 돈 앞에 굴복하여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요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재물로 공경한다면, 그 재물을 귀히 여기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존중히 여긴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실 거라는 이야기 입니다.
네 번째, ‘그러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네 창고가 가득차고 네 포도주 통에 새 포도주가 넘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보답을 해주시겠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좋은 투자자이다. 넣는 거 몇 배로 불려 준다는 기복 신앙적인 메세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이 또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자신의 호의를 베푸시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동일하게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정말로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예배팀 세미나때 예수전도단을 섬겨주시는 염민규 간사님께서 세미나 강사로 와주셨습니다. 그때 사명에 관해서 우리의 사명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찬송가를 예로 들면서 우리의 사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입니다.’ 참 감명 깊어서 몇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2)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리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주님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3)밤 깊도록 동산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여기서 작가의 심경의 변화, 신앙의 여정이 너무나도 잘 묘사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미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기뻐하며 교제하다 그 깊은 교제 속에서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 마음을 공감해 주고 싶어서 하나님이 마음이 있는 곳에 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사명이 의무가 아닌 주님과의 교제 속에서 발생한다,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는데서 사명이 시작된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거창하게 ‘당신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물어보고, 여러 가지 구호를 외치며 각자의 사명의 자리로 결연한 의지와 함께 달려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사명 또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동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을 하면서 친구로 지내며, 그 기쁨과 감격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며, 사랑과 성실을 마음판에 새기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총 10구절의 잠언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열 구절은 자칫 4개의 ‘그러면’을 필두로 조건적인 사랑, 뿌린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이 되어집니다.
우리가 그 복들을 위해서 고군분투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있다면 그 큰복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율법의 근간이 되는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을 기반으로 이웃까지 사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질문1) 내가 의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5 절)
질문2) 하나님은 그분을 인정하는 사람을 지도해 주십니다. 나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모습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