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갈을 사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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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해야 하는 승리

일본과의 축구 승리, 야구 등 모든 경기에서 져서는 안되는 상대
오래된 일본과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 아마 이런 감정의 관계는 끝이 없을 것
이스라엘에게도 이런 대상이 바로 블래셋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 원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닷길이 아니라 광야로 인도한 이유도 블래셋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은 늘 군사력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의식속에 정신력으로 신념으로 블래셋을 상대했다. 이순신장군이 수많은 열세에도 일본과 상대한것 처럼
그러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쉽지 않았다. 문화와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블래셋에게 저항하려 하면 고발을 할 정도이다.
우리나라가 친일을 청산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약해져 갔다.
삼손이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 이다. 블래셋과 싸우려 하니까 자기 백성들이 잡아서 블래셋에게 넘겨 주었다.
이런 와중에 단 한줄의 승리소식이 줄자막으로 지나간다.
사사기 3:31 “에훗 다음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가 되었다.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만으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쳐죽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
아무런 승리없이 이 한줄.
무기와 군대로 승리를 거둔것이 아니라 평범한 농부가 농기구로 600명을 죽이고 승리를 한 이야기.
삼갈의 승리는, 블래셋을 힘으로 겨룰 상대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 만이 이기게 할 수 있는 전쟁으로 맡긴 것이다.
늘 패배해 왔고, 늘 괴로움을 당해 왔다. 시원하게 이긴 것이 몇번 안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 삼손이 결국 해 낸것...왜에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는 조건은 늘 없다. 힘으로는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블래셋과의 싸움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의 대한 싸움이다.
오늘 우리가 하는 수많은 전쟁, 생활속에서 견디고 버텨야 되는 것들 수많은 문제들 중에 우리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되는 문제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토다의 숲을 5년동안 해 오면서, 우리 힘으로 아무리 해결하려 해도 안되는 상황들 뿐이었다. 가장 가난하고 연약한 우리가 이 어려운 장소, 망한 장소에서 버틸 돈도 없이 옆에서는 몇번이고 주인이 바뀌는 속에서도 버티고 있었다.
어려움이 수없이 쌓여왔고 반복되었다. 어떻게든지 우리 힘으로 해보려 했지만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작하신이가 하나님이시니까 끝내시는 이도 하나님이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사들이 그렇다. 자기들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순종해야 되는 싸움을 책임지게 했다.
성령의 일하심에 맡기면 승리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해야 될 전쟁인지 하나님이 하셔야 될 전쟁인지 구별해 내야 한다.
아니 내가 힘을 써야 되는지 기도에 힘을 써야 하는지 잘 구별, 기도하지 않아도 해결 할 수 있는 일들 우리에게 많음, 그러나 기도해야만 해결 할 수 있는 일들 있음.
2. 우리의 자격과 상관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어제는 토다에서 일했던 민교라는 청년과 대화를 했다. 한달전에 디스콰이엇이라는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8명의 30대 미만의 청년들이 3만명의 it커뮤니티를 만들고 수십억의 투자를 받는 회사였다. 어떤이는 성공보장의 길을 버리고 이 일을 선택하고, 어떤 청년은 청소년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으로 대학공부를 버리고 이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이들은 세상이 기준삼는 가장 좋은 길들을 다 버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이었다. 분명 이들이 큰 일을 해 낼 것 같다라는 믿음이 든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자격이 있어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
삼갈의 이름 앞에 “아낫의 아들"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신앙인들이 이름 지을때, 하람, 은혜, 예인등등 그러나 아낫은 가나안 여신의 이름이다. 이 말은 예상컨데 삼갈은 그의 부모가 가나안의 우상종교에 빠진 사람들일 가능성, 아들을 아낫 여신에게 바쳤다라는 의미일 수 있다.
전통적인 신앙안에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택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사들이 그러했다. 비주류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삼갈은 출신도 의아스럽지만, 너무도 평범한 농부였고, 무기도 농기구였다.
고린도전서 1:2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사사들은 예수님을 비추는 사람들이다. 예수님또한 비주류의 한낯 청년에서 구원자로 드러내셨다. 귀족 신분으로 충분히 오실 수 있는데 말이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아무 육체도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모습에 속지 않으신다.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때 성령이 역사하신다.
3. 한번이라도 쓰임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왜 이 삼갈의 이야기는 한줄만 등장할까. 의문이다. 안도현씨의 시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삼갈이 나오기 전 에훗의 이야기에는 너무도 상세하게 기록되었지만 삼갈의 승리는 단 한줄로 그 이전도 그 이후도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도 삼갈은 이 한번의 전쟁으로 사명이 끝났고 다시 평범한 농부의 삶을 살 았을 것이다. 600명을 몰아낸 것이 블래셋을 다 물리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왜 그럼 하나님은 삼갈의 이야기를 성경에 담았을까.
삼갈의 승리는 어려움을 완전히 해결한 승리가 아니다. 순간 순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다시 은혜를 주세요" 다시 일어나게 해 주세요. 순간 순간 의지해야 한다. 한번으로 하나님이 인생에 남아있는 모든 일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
성령을 늘 의지하도록 만드신다.
신앙생활을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감싸주고 위로해 주는 것으로 여기면 안된다. 이것은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다.
자기 주장대로 하나님을 섬긴다. 절대 헌금할 수 없어, 절대 교재할 수 없어, 절대 봉사할 수 없어, 절대.... 자기 부인이 없는 신앙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전쟁은 무기나 사람의 수나, 능력에 달려 잊지 않다. 학법 돈에 달려 있지 않다.
얼마나 성령이, 하나님이 역사하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자격, 형편 상관없이 하나님 은혜에 매달릴 때 우리는 전쟁에 승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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