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0 새벽] 예배의 태도, 하나님을 뵈옵는 자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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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99 하나님 사랑은
본문 마 8:1-3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힙입어 이 새벽의 시간에도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외면치 않으시며, 언제나 넘치는 은혜와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안아주시는 아버지를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오늘도 주님의 넘치는 사랑과 위로와 긍휼과 자비를 경험하는 이 새벽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일학교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을 법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본문이라 할 수 있다. 산상수훈 말씀을 전파하시고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한 나병환자가 주님을 찾아가 자신을 치유해 주시기를 간청하였고, 주님께서 그를 깨끗하게 낫게 해주시는 장면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배의 태도, 하나님을 뵈옵는 자들의 자세’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참된 예배자들이 가져야 할 예배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예배자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을 뵈옵는 자들의 합당한 자세 그 첫번째는 사모하는 마음이다. 나병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다시피 피부가 썩어가는 질병이다. 오늘날 한센병과 동일하다 고 하기는 어렵지만 구약에서는 이 모든 피부질환들을 종교적으로 부정하다고 규정하였고, 이와 같이 부정한 자들은 사회적 통념상 하나님께 극심한 죄를 지어 받은 심판으로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죄인들로 규정하였었다. 이 부정한 자들 존재만으로도 부정하게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성 밖으로 내쫓겨나 격리 생활을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저들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과 물건들까지도 부정하다고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레위기 13-14 장에는 이러한 나병환자들에 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처럼 부정한 자들은 머리를 풀어 해치고 자신의 옷을 찢은 채로 거리를 다니면서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 라고 외치면서 다녀야 했고, 멀리서 이런 부정한 사람들의 외침을 듣는다면, 그와 접촉하지 않도록 일반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만일 이러한 부정한 자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와 활보하다가 걸릴 경우 율법 중 매우 중요한 정결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엄중한 죄목이었다. 물론 본문 속에 나병환자가 마을 안에서 주님을 만난 것인지, 마을 밖에서 만난 것인지 정확하게 본문은 언급하진 않아도, 수많은 인파들을 몰고 다니셨던 주님이 지나가실 때 “나는 부정합니다!” 라고 외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이 환자는 정말로 큰 결단 속에서 주님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9:27-31 을 보면 주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는데,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를 지른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두 눈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지팡이로 땅을 딛으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군중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지팡이로 더듬으며 걸어가는 속도가 일반 사람들만큼 되겠는가? 거대한 행렬 속에서 점점 뒤쳐지는 가운데, 저들은 자신들이 도저히 주님 을 따라갈 수 없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마20:29-34 를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떠나 길을 가실 때, 마침 그 길가에 있던 두 맹인이 그 소식을 듣는다. 이 맹인들이 언제 지나가실런지도 모르는 주님을 향하여, 그리고 혹 수 많은 군중들 속에 시끌벅적한 상황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어떻게 하였는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무리들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였다.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그럼에도 더욱 소리를 크게 지른다. 그만큼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가 아니면 주님을 앞으로 만날 수 없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간절한 소망, 간절한 부르짖음이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었던 아니겠는가?
우리는 오늘 본문 속의 나병환자를 통해서 “주님을 찾아뵈올 때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나아와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죽어가는 생명을 담보로 주님을 찾아왔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상한 피부와 썩어가는 육체일 뿐이었지만, 적어도 나병환자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상한 마음과 상한 심령과 상한 육체이지만 자신의 전부를 내걸고 주님을 찾아왔던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시는가? 어떤 사모함과 간절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오시는가? “오직 주님 아니면 나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죄로 인하여 병들고 썩고 고름이 떨어지는 이 죄악의 저주 가운데 나를 건져주실 유일한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어쩌면 예배의 구경꾼, 예배의 관객이 되어 한 편의 공연을 관람하듯 앉았다가 돌아가지는 않으시는가? 주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임을 고백한다면, 그에 합당한 마음과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을 뵈옵는 자들의 합당한 자세 그 두번째로, 우리는 예배로 하나님앞에 엎드려져야 한다. 이 불쌍하고도 가련한 나병환자는 주님을 만나자마자 주님께 절을 하였다. ‘절하다’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세퀴네이’인데, 직역을 하면 “무릎을 꿇다” 이다. 무릎을 꿇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이 앞에 서 있는 상대보다 상대적으로 약자임을 고백하는 것이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강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특히 이 단어를 성경 다른 곳에서는 "엎드리다"로 번역한다. 누군가 앞에서 절하며 엎드리는 행동은 어떠한 의미일까? 당시 고대근동 사회에서 누군가 앞에서 엎드림의 의미는, 흔히 전쟁 속에서 사용되던 의미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정복하게 되면 약소국의 지도자들이 끌려나와서 강대국의 군주 앞에 엎드리게 된다. 따라서 이 엎드림의 의미는 1차적으로는 "굴복" 이다. 당신이 나보다 강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엎드림은 상대 앞에서 나의 목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상대를 향한 전적인 신뢰의 의미까지도 담고있다. 그런데 이 ‘절하다’ 라는 단어에는 또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예배드리다(worship)" 의 의미이다. 따라서 나병환자는 죽을 각오로 주님 앞에 나아오자마자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드렸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말씀이 끝나고,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주님을 반긴 자는 당시 예배를 주관하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성경을 연구하는 랍비도 아니었으며, 율법을 잘 아는 바리새인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주님께 찾아온 자, 가장 먼저 주님을 영접한 자는 죽어가던 자, 저주 받은 자, 모두가 접촉하기를 피하던 나병환자였다.
특히 이 사람은 돌에 맞아 죽을 각오로 주님을 찾아왔다.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죽을 각오까지 하면서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였고, 그 발 아래에 절하며 주님께 경배를 올려 드렸는가? 그는 자비하신 하나님, 긍휼히 여기시니는 하나님을 믿었고, 치료하시며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자신의 삶과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사모하였기 때문에 죽을 위협 을 무릅쓰고 주님앞에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의 불쌍한 육체, 썩은 내 풍기는 가련한 몸둥이로 주님을 예배했다. 주님께 그 이름에 합당한 경배를 올려드렸다. “내 저주 받은, 도저히 소망이 없는,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이 몸이지만, 이 것이라도 주님께 드립니다. 나의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예배, 우리의 경배가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배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고백하면서도, 입술에서의 고백과 예배 중 우리의 태도가 서로 달라서 되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께서 이 자리 가운데 좌정해 계시며, 지금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예배자들의 마음의 중심을 감찰하고 계시다. 간절한 마음으로, 주께서 주실 말씀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뵈옵기 원하는 마음과 태도로,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자세로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능력과 존귀와 권세와 부하심이 무한하시며, 자비와 긍휼과 인자도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예배자의 마음의 중심까지 살피시는 그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겠는가? 하나님을 뵈옵는 자들의 자세는 사모함과 엎드러짐이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베풀어주실 은혜들을 간절히 사모하며, 주님의 임재 앞에 겸손히 엎드려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 바라옵기는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님, 하나님을 뵈옵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을 뵈옵는 예배의 자리에서 주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늘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어 주님께 우리의 삶을 올려드리는 우리의 예배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들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 양문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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