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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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내 아들아’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이 본문이 정말 부모가 자신의 아들에게 쓴 권면인지, 아들처럼 여겨지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하는 권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내 아들아’라고 말할 때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척이나 진지하고, 간절하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놀다가 부모님께 꾸중들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식이 친구의 부모님께는 전해졌지만, 저희 부모님께는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 부모님 앞에 긴장하며 서게 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하셨고, 그 친구를 데리고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음날 그 친구에게 그 전달의 상황을 물어보니, 눈물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시절, 제가 잘못한 일은 들통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때 혼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훈계가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자녀에게 하는 훈계와 남의 자식에게 하는 훈계는 같을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정도와 남의 자식을 사랑하는 정도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듣는 사람이 아들이든, 아니면 그 후손이든 대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언의 기자가 정말 사랑하고, 간절하며 진중하게 이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크게 4가지의 가르침 혹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1v - 5v 재정에 관한 교훈(특히, 담보)
6v - 11v 게으름과 부지런함
12v - 15v 못된 사람과 악한 사람
16v - 19v 여호와께서 싫어하는 사람
첫 번째는 재정에 관한 교훈 특별히, 담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게으름에 대해서 꾸짖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못된 사람, 악한 사람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으며, 네 번째로는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사람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씩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절-5절입니다.
잠언 6:1–5 DKV
내 아들아 만약 네가 네 친구를 위해 담보를 세우거나 만약 남을 위해 보증을 섰다면 너는 네가 한 말로 덫에 걸린 것이요, 네가 한 말에 스스로 잡히게 된 것이다. 내 아들아, 네가 네 친구의 손에 잡혔으니 너는 네 이웃에게 가서 겸손히 간청하여라! 잠을 자지도 말고 졸지도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새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너 자신을 구하여라.
보증을 섰을 때, 재빨리 그 보증으로부터 벗어나라,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듯이, 새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 나듯이 너 자신을 재빨리 구해내라는 권면이 나옵니다. 흔히, 보증을 서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그 빚을 변제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보증을 서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의미를 잘못 해석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메세지인 것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렇게 대상을 나누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와 상관없이 단순히 보증을 섰거든 빨리 벗어나라는 권면만 일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누군가를 보증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보면, 남의 문제를 자신이 직접 해결해 주려고 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결해 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 관계만 더 나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길이 온전한 구원의 손길 일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잘못과 실수는 우리 주변에서 적잖게 봅니다. 특히 교회안에서도 참 많이 목격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 해결해 주려고 했던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실수 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구원해 주거나 보증을 서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일 아니 오늘 이 아침의 일 또한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루 하루를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인데, 먼 미래의 일을 그것도 남의 일을 보장해주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바르게 자각하고 더욱 겸손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봤다면, 진정으로 우리를 보증해 주실 수 있는 분, 예수님까지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단 하루도, 보증할 수 없는 우리를 보증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 볼 때, 진정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생기며, 구원이 임할 것입니다. 6-11절입니다.
잠언 6:6–11 DKV
너, 게으름뱅이야, 개미에게 가서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어라. 개미들은 장군도, 감독도, 통치자도 없는데 여름에 먹을 것을 저장해 두고 추수 때에 양식을 모은다. 너, 게으름뱅이야, 너는 언제까지 자겠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겠느냐?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더 눈 좀 붙이자, 조금만 더 손을 모으고 자자” 하다가 가난이 강도처럼 네게 이르고 빈곤이 무장한 사람처럼 이르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게으름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당장의 일을 즉시 처리하지 않고, 좀더 미루는 습관, 나태함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강사님께서 강의 도중 한 책을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라는 책이었나? 아무튼 이런 비스무레 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강사님은 그 책을 읽으며 바쁜 자신의 삶을 반성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처럼 잠시 쉬어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 날의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그날을 푹 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폭풍과 같이 밀려 오는 업무량에 며칠을 고생하셨다며, ‘잠시 쉬어도 안괜찮다. 쉴 거면 다하고 쉬어라’라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이 강사님이 읽은 책의 의도는 잠시 여유를 가지며, 자신을 돌보자는 식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의도와는 다르게 강사님은 그 말을 잘못 오인해서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의 의도와 상관없이 얻게 된 교훈은 일을 부지런히 그날 그날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에 관해 말하면서 개미를 이야기로 들고 있습니다. 개미는 겨울을 나기위해 열심히 일하며, 양식을 모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으면 겨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간혹, 노력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좋은 결과가 바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요행을 행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그것이 하나님이 이 땅위에 세우신 창조질서 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성자 예수님께서도 열심이 일하셨습니다(요 5:17). 그러니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이 지으신 창조 질서 안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면 개미가 열심이 일한 보상으로 풍족한 겨울을 맞이하듯, 우리도 우리의 미래에 귀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2-15절입니다.
잠언 6:12–15 DKV
못된 사람, 악한 사람은 거짓말만 하고 다니고 그들은 눈짓과 발짓과 손짓으로 서로 신호를 한다. 또 그들은 마음에 심술이 있어 계속 악한 일을 꾀하며 싸움을 부추긴다. 그러므로 재앙이 한순간에 그들을 덮칠 것이며 그들은 갑자기 파멸해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실제로 불량하고, 악한 사람들의 어떠한지 그 행동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못되고 악한 사람은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또 눈짓과 발짓으로 서로 신호를 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음모를 꾸미는 악한 사람들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악한 마음으로 남들을 싸움에 부추깁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으로 분명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악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실증해 주고 있습니다.
잠언 6:16–19 DKV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며 그분이 정말로 싫어하시는 것 예닐곱 가지가 있다. 곧 거만한 눈, 거짓말하는 혀, 죄 없는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략을 꾸미는 마음, 악한 일을 하려는 데 빠른 발, 거짓말을 쏟아붓는 거짓 증인, 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심는 사람이다.
이렇게 잠언 기자는 구체적으로 재앙을 맞게될, 파멸하게 될 악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악인에 대한 진술이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거의 대부분은 그리 낯설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거만하고, 거짓말하며, 악한 계략을 꾸미며, 악한 일을 하고, 불화를 심는 등의 행동들 말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졌을 때, 즉, 우리의 악한 본성이 우리를 지배할 때,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죄들의 항목입니다. 하지만 잠언에서도 그랬듯이, 이 죄들의 결과는 불보듯 뻔합니다. 바로 파멸과 사망 뿐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악인에 대한 서술을 읽을 때 나를 돌아 보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을 내 안에 모셔 항상 거룩하게 의롭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각각의 세부적인 지침을 말해주고 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반성하게 해줍니다. 어쩌면 그것이 잠언, 지혜서의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시에 나 자신 또한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자각하지 않았더라면, 그 위대하고 광대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분이신지 모르고 넘어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잠언서를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책임져 줄 수도 없는 존재이며, 보증해 줄수도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십시다. 그리고 게으르기 십상이며, 우리의 자아가 앞서 악해지시 쉬운 연약한 존재임을 직면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십시다. 그렇다면 이 잠언의 내용처럼 주님이 주시는 지혜 안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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