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그리스도 있다
Notes
Transcript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의 힘이 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예전에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벌써 20년이 된 드라마더라고요.
그곳에 등장하는 이동건이라는 남자 배우가 짝사랑하는 김정은이라는 여자 배우에게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 안에 너 있다"
사실 드라마에서 보면 그렇게 달콤한 대사라기 보다는 남자 배우가 약간 격양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것을 답답한 마음에 하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로 회차가 끝나버리는 드라마로 인해서 많은 CF와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이 대사와 드라마 시그니처격인 음악으로 페러디 되었던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강렬했고, 굉장히 직설적인 표현 때문에,
그 당시 드라마에 푹 빠졌던 우리 성도님들이 그 당시 그렇게 가슴앓이 했었다고, 전 들었습니다.
딱 이렇게 남자가 표현해주고, 자매들은 어쩔줄 몰라하는,
그 당시 자매들이 꿈꿔왔던 이상형인가보죠?
사실 그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대사를 할 수 밖에 없던 것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자신이 하는 행동을 몰라봐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남자의 행동, 그리고 상황들이 모두 여자 주인공에 대해 마음이 계속 있는데, 그 마음을 몰라주다보니,
“이 안에 너 있다"라고 표현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보면요,
물론 사도바울이 짝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갈라디아에 거주하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랬더니,
그곳에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갑론을박’하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방법이다.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 생활하는데,
여러 율법들이 그들을 족쇄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가기 위해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더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사도바울이 들은 것입니다.
복음을 전한 바울은 그런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로마서 1:17 에서 말한 것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으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믿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구속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도바울이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전 그래서 나온 갈라디아서 2:20 절의 말씀이 사도바울의 그 답답한 마음에
제가 조금 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어금니 꽉 깨물고 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 다 같이 어금니 꽉 깨물고 다시 한번 본문 읽어보겠습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서 오늘 저와 함께 세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사도바울이 말하는 첫번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갑론을박’하고 있는 그들에게 말하는 것,
“나는 죽었다"
다시 말해서,
사도 바울은,
“내가 말하는 복음에 그리스도 안에 ‘나는 없다’, ‘나는 죽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언제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뭐 한 것을 이야기 했느냐?
내가 언제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무엇을 이룬 것을 이야기 했느냐?
내가 언제 복음을 전할 때, 전도 여행하며 이런 저런 역경들을 이야기하며, 내가 이룬 성취를 이야기 한 적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 내가 복음을 전한 내용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나 또한 그렇게 없어진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역할, 나의 성과,
이미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역할, 나의 성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멀리가지 않고, 갈라디아서 1 장에서 보겠습니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오직 복음은 말씀만이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만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 우리가 해야 할 것들에 있지 않고,
오직 복음은 말씀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말씀으로만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내가 몇번 예배를 드리고,
내가 몇번 봉사를 더 하고,
내가 헌금을 얼마를 더 드리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생각, 내 모든 마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만,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말씀으로만 충만해지시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다시 제가 앞부분만 읽어보면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우리가 절제되어 있는 글로 봐서 그렇지, 사실은 여기에 굉장한 사도바울의 감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아까 우리가 읽었던 것처럼 어금니 꽉 물고 말한 것입니다.
제가 어디서 이런 느낌을 받았냐면요.
갈라디아서 시작부터가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이 대부분의 서신서를 보면,
아무리 그래도 1장에는 그래도 성도들을 향해서 위로의 메시지나,
‘그래, 신앙생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나요, 참 애썼습니다'라고 위로하는 메시지들이 그래도 좀 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서에는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로새서에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정도만 보더라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때 보면 그래도 처음에는 정말 부드럽게 쓴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래도 신앙생활 잘 하고 있다. 이렇게 위로하며 격려하며 서신서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를 보면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이 서신서를 보는 사람들은요,
어? 이거 나한테 하는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정도고요.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 너희들 참 이상하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너희들 자꾸 그러면 너희 저주받을꺼야!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거의 이 정도면, 바울의 분노가 극에 달한거 아닌가요?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10 (NKRV)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기서 보면 정말 바울은 많이 화가 나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감정에 휩싸여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좋게 해결되는 일이 많지 않죠.
그러나 이 서신서가 정경이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 메시지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인줄 믿습니다.
왜 바울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는가, 생각해보면,
복음에 있어서 다른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렇게 저렇게 둘러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이 서신서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 있어서 “나는 십자가와 함께 죽은 것이다"
복음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죽었다"
본문 2:20 이어서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NKRV)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두번째,
“내 안에 그리스도 있다"
아까 1:12에서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 우리는 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역할, 나의 성과,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비교를 해보면,
우리 마음안에 무언가가 숙~ 하고 들어오면,
어떤 상황에서든 그것이 적용됩니다.
내 마음안에 어떤 좋은 물건이 있으면,
제가 예전에 직장 생활 할 때,
제가 카메라를 좋아하니까,
어떤 카메라가 마음에 쑥 하고 들어오면,
일하는 것도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였고,
먹는 것을 아껴 먹는 것도 카메라를 사기 위해서였고,
모든 마음이 그곳에 있는 것을 봅니다.
모든 행동, 모든 상황들이,
내가 잘 해서 저 카메라를 가질 수 있으면,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즘 저에게는요.
주일 말씀으로 적용하며 살아가는게 마음속에 쑥~ 하고 들어와 있습니다.
주일 말씀으로 한 주간 살아가기,
하나님이 주신 교회 공동체에 하나님이 모두가 모여 말씀을 주셨는데,
분명히 모두 모여서 주일에 말씀듣게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모두에게 주일 말씀으로 이 한주간을 살아가게 하시고,
반드시 그 말씀이 적용되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다.
주일 말씀 기억하시죠?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누가 물으니까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에게 안수기도하며 계속해서 성령이 임하도록 했다는 것,
기억하시죠?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성령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적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녁예배를 들었더니,
잠언 말씀에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우리의 본성은 마음에 머물게 하는 것이 지혜다!
드러나는 것은 그것은 죄다. 라고 배웠잖아요.
아, 그래서 우리 안에 성령은 계속 필요한 것이구나,
성령으로 우리의 본성이 드러나지 않게 해야하는 것이구나.
저는 그렇게 적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성령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이 필요하다.
말씀을 전하는 순간에도, 내 생각이 아닌,
성령이 필요하다. 그렇게 저에게는 적용이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면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 모든 것 예수 그리스도 십지가와 함께 못 박았다.
그래서 “나는 죽었다"
그랬더니 내 안에 무엇이 들어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온 것이다.
여러분들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일을 할때도,
가정을 돌볼때도,
길가다가도,
어떤 결정을 할때도,
어떤 순간에든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어떤 여자 주인공을 짝사랑하면서 이뤄지는 일들을 보면,
모든 일들이 그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애쓰는 것을 봅니다.
어느 회사의 실장님도 어떤 여자 사원이 마음에 들면 그 여자 사원을 위해서 애쓰는 모습,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시죠?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주변으로 계속 기웃거리는 장면들이
드라마에 종종 등장합니다.
드라마에 비유를 했지만,
그 남자주인공 마음에는 오직 짝사랑하는 여자 주인공이 있기에,
모든 일들에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마음이 가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믿음을 얻게 되었다면,
우리 안에는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역할, 나의 성과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있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내 안에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모든 상황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이 한 주간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해볼까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 있다"
2:20 후반 보겠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NKRV)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게 되면요!
세번째,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이제 여러분들의 인생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 안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미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코 우리의 인생이 불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행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 자체가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아픔이 찾아오더라도,
그 아픔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의 회복으로 찾아옵니다.
이 세상에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없고, 지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습니다.
조금 있으면 수능이 찾아옵니다.
죄송합니다. 미리 조금 인생 스포일러를 하자면,
그것보다 몇십배, 아니면 더 힘든 일들이 찾아올 것입니다.
더 많이 지칠 것이고, 더 많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순간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험을 처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역경을 견뎌내면,
그 다음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찾아와도,
견딜 수 있는 힘,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내 능력 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힘은 정말 강력하거든요.
사도바울이 이야기 하는 것은,
너가 해서 이룰 수 있는거,
그거 아니다.
지금 봐라, 너희들 계속 분쟁만 일으키고, 믿음조차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거 아니라는 거에요.
너희 안에 정말
너희 것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러면,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해져서,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 있다면!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으로 죽어가는게 아니라, 사는 것이라!
ζάω 자오.
여기서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말하는 산다는 의미가 헬라어로 ‘자오'라는 뜻인데,
이 단어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 부활, 곧 다시 살아다셨다. alife 라는 뜻으로 성경에 쓰였는데요.
그냥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정도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처럼, 우리도, 살게 된다!!
죄로부터 자유함, 영원한 삶, 구원받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적용해보면,
우리 매일 구원받아 살 수 있습니다.
누구와 함께 사니깐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니,
우리는 구원받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본문으로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매일 매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산다는 것이고,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는 구원받아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요.
“내 안에 그리스도 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이 바뀝니다.
지난 주에 석상윤 전도사님이 전도편지에 쓴 것처럼요,
뒤집어진 삶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삶의 역전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
구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내 인생, 내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는 삶,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202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