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의 이스라엘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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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2. 같은 시각 남왕국 3. 두 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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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고 기도하며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선택이 길어지고 고민이 되는 이유둘 중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쉬고)
종종 이런 질문들을 받습니다.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구분해요?”
둘 중 하나만, 셋 중 하나만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4-5개의 보기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익숙한 사람들이죠. 그 중 정답을 찾아내야 점수를 얻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에 늘 정답을 찾으려고 하죠.
(쉬고)
이 것은 세상의 방법이에요.
세상은 늘 우리에게 정답은 한가지 밖에 없으니 어서 선택하라고. 늦으면 뒤쳐진다고. 늦으면 빼앗기고 만다고 우리를 재촉하고 압박해요.
(쉬고)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에게 둘 중 한가지만 맞는 정답이니 선택하라 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곳에 도착하도록 이끄시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답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벌을 주고 상을 주시는 분이 아니에요.
뒤쳐지게 만들고 빼앗기게 만드는 분이 아니에요.
빨리 답을 선택하라고 재촉하고 압박하지 않아요.
(쉬고)
우리가 어떤 답을 선택하던 상관 없으세요. 때론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것을 선택하고 걸어간다 해도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세요.
왜요?
그 선택 속에서도 일할 수 있는 분이시고, 나의 욕심에 의해 한 선택이라도 선하게 바꿀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이에요.
잘못된 선택 앞에 갑자기 나타나셔서 “그거 맞아? 진짜 맞아?”라고 하실 수도 있는 분인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께서 계획을 이루어 나가시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쉬고)
둘 중 하나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선택 속에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면서 걸어가면 되는거에요.
이 선택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내가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거에요.
(쉬고)
하지만 이런 하나님께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이야기 하실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던지"
“여로보암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에 동화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쉬고)
하나님 말씀은 다른 것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공급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눈 앞에 있다 보니 하나님보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선택할 때가 있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갈 때도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 그 분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꽤나 불편합니다. 하면 안되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죠.
(쉬고)
오늘 본문에는 나답이 등장합니다. 나답은 북이스라엘의 1대왕 여로보암의 아들입니다. 아버지 여로보암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북이스라엘 다스렸는데, 그 때 정말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남단과 북단 벧엘과 단에 성소를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고, 하나님 말씀에 따르지 않고 보통 사람. 아무 사람이나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지켜왔던 절기를 임의로 바꾸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의미를 완전히 잊도록 만들었습니다.
(쉬고)
그 결과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 세상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시작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던 것이 이루어졌음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지 않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가나안의 우상 숭배를 따라 갔습니다.
결국 세상에 동화되어, 세상과 같아졌습니다.
자신만 세상에 물든 것이 아니라 북이스라엘. 모든 백성들도 세상과 다르지 않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쉬고)
그랬던 그가 죽고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습니다.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나답 역시 여로보암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정과 판단이 아닌, 세상. 외부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러한 죄들을 지었던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나답 역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며 해안 평야 지대로,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쉬고)
이 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동화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라는 것입니다.
나답은 내부를 단속하면서 북 이스라엘의 새로운 출발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정말 그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아버지의 잘못과 실수를 보면서 잘못되었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세상이 아닌 하나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면 그는 내부를 단속하며 북이스라엘을 개혁시키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어제 이주헌 목사님을 통해 나누었던 말씀처럼, 나답도 남유다의 아사왕처럼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개혁의 모습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아버지였다 해도,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에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며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기 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집중했고,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 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왕으로써 나답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쉬고)
아버지의 악행을 이어받아,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데로 세상을 살아갔다는 것이죠.
사실 나답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선택하는 것이 더 편했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그냥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것을 선택하고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좋습니다.
나답은 늘 그랬든 자신의 익숙함을 선택했고,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세상 속으로 들어간거죠.
결국 나답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데로 벌을 받게 됩니다.
바아사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나답을 죽이거든요. 나답은 왕이 된지 2년만에 죽게 되었고, 바아사가 새로운 왕이 됩니다.
새롭게 왕이 된 바아사는 24년을 다스립니다.
하지만 북 이스라엘은 여전히 위태위태합니다. 바아사가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 숭배는 계속되었기 때문이죠.
하나님 말씀이 아닌 우상을 계속해서 의지하는 한, 누가 왕이 되던 그 나라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쉬고)
나답이 이렇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 같은 시각 남유다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왕의 자리에 오른 아사종교개혁을 진행을 통해 우상과 산당 그리고 바알 신전의 매춘부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41년간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아사가 41년간 남유다를 다스리는 동안 북 이스라엘은 왕이 여섯번 바뀌는데 그 중 3번이 쿠데타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우상 숭배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쉬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합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던지"
“여로보암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에 동화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말합니다.
(쉬고)
저는 적어도 새벽을 깨우는 제2가족들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바라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잘 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더라도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려 하는 분들이 여러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쉬고)
지금처럼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노력,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하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방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일들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싶어도 세상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툭툭 건든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을 1초라도 끊어내려고 계속해서 우리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새벽 예배 다녀왔고, 기도도 했고 말씀도 읽었어도,
이 것은 하루의 나의 삶을 온전히 방어해주지 못합니다.
들었던 말씀, 읽었던 말씀수시로 생각하면서 붙들고 순간 순간마다 기도하지 않는 한 우리의 집중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거든요.
어제 나누었던 남유다의 아사왕이 그랬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나라를 바꾸어 가던 그였지만,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이 아닌 아람왕을 붙들었습니다. 돈을 의지했습니다.
방심하며 변질되어가던 그의 마음이 결정적일 때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쉬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이 시간 기도 할 때 나를 위한 기도와 함께 더불어 모든 제2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신앙의 길은 나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닌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 혼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함께 걷는 이들을 격려하고 독려하면서 같이 걷는 것입니다.
우리 중엔 여로보암이 나답과 같은 사람은 없지만, 혹여라도 동역자가 다른 길로 걸어가거나 삶이 무너져가고 있음이 보인다면 우리가 옆에서 지지해주며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방심하지 않게 됩니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붙들기에 우리는 방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유다의 아사왕처럼 변질되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북이스라엘의 나답처럼 세상이 아닌 하나님에게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고정할 수 있습니다.
(쉬고)
내가 먼저 서고 동역자를 살릴 수 있는 힘을 얻는 이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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