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시대 우리는 이것으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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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시대 우리는 이것으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서론]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진품명품쇼가 있습니다.
알아보니 지금도 하고 있기는 한데 예전만큼 인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워낙 그때 좋은 것은 다 들고 나와서 그런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나와 전문가들에게 가치를 판단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에 있던 항아리 하나를 들고 나와 낮은 금액을 적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을 해보니 진짜 골동품 항아리로 드러나 높은 가치를 평가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더 높은 가치를 가진 것을 보고 엄청 기뻐하면서 놀라워 합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황당했던 경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자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문서라면서 진품명품쇼에 들고 나왔습니다.
내용은 모르지만 워낙 문서에 한자도 많고, 도장도 찍혀 있어서 가족들은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보존했다고 합니다.
상태도 매우 좋고, 글자도 너무 또렸했습니다.
다들 높은 가격이 매겨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문서는 다름아닌 노비문서 였습니다.
1700년대에 쌀 열가마에 서로 노비를 교환한다는 내용의 문서였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출연자분들이 좀 당황한듯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 문서는 그 분의 조상들이 노비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문서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실제로는 짝퉁이라면 어떨까요?
오히려 우리가 소홀히 여기던 것이 진품이라면 어떨까요?
오늘 말씀에는 이러한 진품명품쇼가 진행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할 진품, 명품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6장에서 북이스라엘의 왕들 이야기를 하다가 17장에서 갑자기 예언자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깜빡이도 안 켜고 그냥 끼어들어 온 것같은 느낌입니다.
왜 갑자기 엘리야가 등장했을까요?
오늘 말씀이 등장하는 시대는 오모리 왕조의 아합왕 시대입니다.
북이스라엘에서 5번의 왕이 바뀌고 6번째 왕이 된 사람이 아합입니다.
그의 아버지 오므리는 왕이 되어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겼습니다.
사마리아는 천연의 요새일 뿐만 아니라 교통의 요지입니다.
이를 통해 북 이스라엘은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오므리의 집’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화려함에 비해 나라의 영적 상태는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16장 30절에 보시면 오므리 왕의 아들 아합은 어떤 다른 왕들보다 주님보시기에 더 악한 왕입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타락한 왕입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지독한 우상숭배자였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전을 만들어 온 백성이 우상을 섬겼습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범벅이 된 우상숭배가 만연하면 이는 결국 사회적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상으로 변해 버렸고, 비도덕적, 비윤리적 일들이 일상처럼 벌어졌습니다.
왕도 백성들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세상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매우 안정되고 번성한 나라였지만 속으로는 매우 썩고 타락한 나라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이때에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바알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기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형식적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 왕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예언자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그의 역할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자신의 말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연 이 어두운 시대속에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실까요?
[본론]
1절입니다.
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명령하셔서 아합왕 앞에 서게 하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하필 엘리야를 부르신 것일까요?
엘리야의 출신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길르앗 디셉 마을 출신 예언자입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 있는 곳으로서 서편에 있던 지파들에게 무시당하곤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디셉 마을은 현재 지명도 알수 없을 정도로 무명의 마을입니다.
엘리야는 그냥 변두리에 있던 그렇고 그런 무명의 예언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쓰실때에는 그의 배경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의 마음의 중심일 뿐입니다.
그런 무명의 엘리야가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인 아합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보통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무명의 예언자가 왕 앞에 나선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어떻게 엘리야가 이런 용감 무쌍한 일을 할수 있을까요?
그 답은 그의 말에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용기가 필요할때마다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단어를 ESV성경으로 보면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훨씬 정확한 번역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아합왕 앞에 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치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하고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왕은 아합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할 분이 누구인지 엘리야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이름도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 입니다.
이게 엘리야의 사명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는 용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자신이 입을 열기 전까지 몇 년동안 비 한방울 오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하필 가뭄일까요?
전쟁이나 전염병이 아니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주요 산업이 농사라는 점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천수답입니다.
천수답이란 ‘하늘천, 물수’, 즉 하늘의 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수 없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의 비를 담당한다고 알려진 바알에게 의존했던 것입니다.
바알이 비를 내려줘야 농사가 풍년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나님이 가뭄을 주신다고 말하니 이 말은 저주일수 밖에 없습니다.
선포를 들은 아합왕은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자신이 믿는 바알신이 비를 내려주리라 믿고 숭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엘리야의 말을 무시합니다.
어차피 듣보잡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뭄을 통해 바알의 실체를 고발하시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진짜라고 믿는 신이 짝퉁, 가짜라는 것을 밝히시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늘의 비, 즉 풍요와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임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풍요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신명기 11:13-17 입니다.
당신들이,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하는 그의 명령들을 착실히 듣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면, 주님께서 당신들 땅에 가을비와 봄비를 철 따라 내려 주셔서, 당신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거두게 하실 것이며, 들에는 당신들의 가축이 먹을 풀을 자라게 하여 주실 것이며, 그리하여 당신들은 배불리 먹고 살 것입니다. 당신들은, 유혹을 받고 마음이 변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그 신들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당신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면, 주님께서는 당신들에게 진노하셔서,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며, 당신들은 밭에서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은, 주님께서 주신 기름진 땅에서도 순식간에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를 누리는 방법은 바알을 섬기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고 바알과 같은 우상을 섬기면 가뭄이 들고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고 오래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잊어먹은 것은 바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뭄이라는 결핍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절에서 엘리야가 다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선포하기 전까지 비가 단 한방울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는 역사상 어느때보다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말할만큼 사람들이 오래 살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날 정도로 풍족한 세상입니다.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AI를 통해 쉽게 얻을수 있는 편리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울증 환자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마약이 이제 어린 청소년들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수년째 우리나라 20,3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입니다.
40대 이상 사망 원인 1위는 암입니다.
암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좌파와 우파의 갈등, 세대간 갈등, 지역간 갈등, 남녀간의 갈등, 고용주와 노동자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이 극심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이로 인해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기후위기까지 덧붙이면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화려한 세상 속에 살지만 우리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무엇인가 결핍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결핍을 채워줄 더 발전된 약과 기술, 제도일까요?
우리의 근본적인 결핍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결핍입니다.
우상에게 치여 하나님 말씀이 세상 속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결핍을 어떻게 채워주실까요?
2-4절입니다.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이 곳을 떠나서, 동쪽으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지내며, 그 시냇물을 마셔라. 내가 까마귀에게 명하여서, 네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게 하겠다."
엘리야가 선포한 말처럼 그 땅에는 진짜로 극심한 가뭄이 일어납니다.
이 가뭄은 3년 넘게 계속됩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에 실패하게 되니 먹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가뭄으로 강이 메마르니 먹을 물도 귀해졌습니다.
그러니 아합왕은 무명의 예언자 엘리야가 했던 저주의 말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엘리야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아시고 그에게 피할것을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이곳이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말합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나서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을 아시고 그에게 요단강 동쪽 그릿 시내가로 가서 숨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5-7절입니다.
그는 곧 가서, 요단 강 앞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렀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물은 그 곳 시냇물을 마셨다. 그런데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얼마 있지 않아서, 시냇물까지 말라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경험하는 비결을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곧 가서’입니다.
엘리야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까마귀를 통해 먹여주시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 까마귀가 아니고 진짜 동물 까마귀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곳으로 이동합니다.
가뭄으로 물도 식량도 구하기 힘든 이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엘리야를 도와 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밤낮으로 식량을 가져다 줍니다.
엘리야가 자기 새끼도 아닌데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가져다준다는 게 참 놀랍기만 합니다.
원래 까마귀는 탐식이 많은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먹을 것을 누군가에게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한낱 미물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한 예언자를 돌보십니다.
그의 삶을 인도하시고 먹여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광야시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셨습니다.
광야는 모든 것들이 결핍된 장소입니다.
양식도, 물도 없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 먹을 물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기적들을 통해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곳이 바로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순종하여 1세대는 모두 죽었습니다.
믿음과 순종의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비’도 컨트롤 하실수 있으시고, ‘까마귀’도 컨트롤 하실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지 않는 영역은 없습니다.
가뭄이 들자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바알’에게 빌고 또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도 엘리야의 말처럼 비 한방울, 이슬조차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 누가 진짜 여호와 하나님인지 진품, 명품이 드러난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우상에 속고 말았습니다.
무능력하고, 아무것도 아닌 바알에게 무릎꿇는 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가뭄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들이 기억할 것이 무엇이며, 섬기고 예배할 분이 누구인지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둠과 결핍의 시대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까?
누가 우리의 생명과 축복을 좌지우지 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생명과 축복은 무엇으로 경험할수 있습니까?
그 답은 순종에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먹이시며, 지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임을 깨닫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이 말씀을 믿고 결핍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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