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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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3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4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5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릴 것이니
6 이는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7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 드릴 것이며
8 해 질 때에는 두 번째 어린 양을 드리되 아침에 드린 소제와 전제와 같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니라
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10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
11 초하루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12 매 수송아지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삼에 기름 섞은 소제와 숫양 한 마리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13 매 어린 양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섞은 소제를 향기로운 번제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며
14 그 전제는 수송아지 한 마리에 포도주 반 힌이요 숫양 한 마리에 삼분의 일 힌이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이니 이는 일 년 중 매월 초하루의 번제며
15 또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라
오늘 본문은 날마다 드리는 번제물인 상번제, 안식일 규례, 초하루 규례에 대한 내용입니다.
구약의 율법 중 제사법, 절기 규례를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사나 절기와 같은 규례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그 제사와 절기 규례들을 다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율법들을 지금 신약시대 이후의 교회에서 그대로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사, 절기 규례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율법들에 담긴 정신을 먼저 살펴보고, 그 정신이 지금 우리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방식을 연구해야 합니다.
율법에 담긴 핵심 정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정신이 바로 율법에 담긴 근본 정신입니다.
오늘 매일 드리는 상번제, 안식일, 초하루 절기 규례를 통해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정신이 어땠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번제 (매일 번제)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서 매일 드리는 번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매일 두 마리의 양을 번제물로 드립니다.
제사장이 아침에 어린 양 한 마리, 해 질 저녁에 양 한 마리를 하나님께 번제물로 불에 드리는거죠.
또한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은 제물을 소제로 드립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제사물이죠.
이렇게 매일 드리는 양 두 마리와 곡식 제물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화제”가 됩니다.
6 이는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화제며
이 번제가 “향기로운 화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번제를 드림으로 인해서 인간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화제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번제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적용)
그렇다면 매일 드리는 이 번제가 주는 정신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드리는 번제는 “매일” 드려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 번제를 매일 드려야합니까? 사람은 육체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육체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정신을 일깨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 동안에 그것이 우리를 각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들이 습관적으로 계속되면 무뎌지는 경우도 있죠. 그러나 그러한 습관과 같은 일이 나중에 우리에게 또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매일 번제를 드립니다. 아침, 저녁으로 두번씩 드리죠. 그 제사를 드릴 때마다 그들은 눈으로, 코로, 귀로 보고, 맡고, 듣습니다. 제사를요.
그럼으로 인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잊기 쉬운 자들이 이 제사로 인해서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인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매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매일 하나님을 잊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억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매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방식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눈으로 보아질 때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읽어서 귀에 들려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 안식일 규례
안식일은 9-10절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잘 알고 있죠. 일주일에 한 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취하신 안식을 누리며 기억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의 주인 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이 온 땅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고, 모든 만유의 주재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합니다.
안식일 가운데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사실상 많은 행동의 규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도 없었고, 음식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위해 그 전날 미리 음식을 준비하고, 일할 것들도 다 마무리 해놓아야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유가 아닌 억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오히려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온전한 믿음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유란 하나님께서 그 절대 주권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가운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안전한 생활을 누리고, 그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억압이 아닌 자유였던 것이죠.
적용)
이 안식일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정신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우리가 안식일 규례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여전히 주일을 통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닙니다. 주일은 안식일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약의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모든 만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만약 주일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일이 없다면 그것은 주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을 통해서 진정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은 단지 그 “주일만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아니라 “모든 날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그 주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주일 “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 주일 “만”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죠. 주일을 통틀어 모든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실 그것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3. 초하루
초하루도 안식일과 비슷하죠.
매 달의 첫번 째 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날이고,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과 초하루의 진정한 정신은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 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적용)
결국 매일 드리는 번제, 안식일, 초하루의 정신을 종합하면 “모든 날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마치 상번제를 통해서 매일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듯 매일의 삶을 예배로 드려야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안식일과 초하루와 같이 특별히 정해진 주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주일의 예배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모든 시간은 하나님께 예배가 된다는 사실로 귀결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시기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