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6_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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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신인협력에 의한 구원이 아닌, 성령의 단동적인 능력에 의해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개혁주의 중생 교리의 특징이다.
이 장의 목표
개혁주의 중생 교리의 특징을 살리는 것
살펴볼 것
개혁주의 중생 개념이 갖고 있는 전제를 밝힘
그 전제에 따른 중생의 필요성을 설명
성경신학적 중생의 개념 정리
연합과 중생이 다른 구원 서정과 어떤 유기적 관계를 갖는지
중생 교리가 주는 실천적 의미

중생의 전제

중생 교리에 대한 개혁신학의 특징
전적 타락과 대비한다.
전적 타락을 전제한다.
중생 교리의 필요성: 전적 타락
전적 타락: 영적 영역뿐만 아니라 육과 지정의까지 모두 포함한 전인격적인 타락. 여기서 전적이란 말은 존재에 있어서 타락의 결과와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로만 카톨릭은 영적인 타락만을 이야기하고 육체와 이성의 영역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본다.
전적 타락의 결과: 오염(죄성 출생), 죄책(죽음).
롬6 “죄의 종”: 바울은 전적으로 죄가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고, 우리 몸 전체가 얼마나 죄의 세력과 지배에 매여 있는지를 말한다. 죄인은 전적으로 죄의 성향이 지배하고 있어서 그 성향에서 나오는 모든 의지와 행동은 죄뿐일 수밖에 없다.
개혁신학이 말하는 중생이란, 타락의 결과로 전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죽어있는 상태에서는 죄성향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인간을 풀어주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중생 사건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마지막 부활의 근거이며, 그 안에 성도의 중생이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중생이라고 의도적으로 말하는 것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 기독론적 관점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구원론적 중생의 은총의 근거가 되신다는 의미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 중생 사건(부활) 안에 우리의 중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롬6 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셨음”(롬6:4, 9, 10)과 함께, “우리도 살아났다”고 기록한다(롬6:4, 5, 8, 11).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성령의 능력이 우리도 다시 살리신다.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성도의 중생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에 연결하여 말한다(벧전1:3).
성령의 내주로 중생이 일어나지만,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의 중생(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중생은 그리스도의 중생 안에 있다. 이것이 신약의 핵심이며, 개혁신학이 그리스도의 부활 속에 성도의 중생이 있음을 말하는 이유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중생이기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우리 각자에게 중생의 은총을 적용하신다.

중생에 대한 성경신학적 관점

구약
구약 백성이 언약 공동체였다는 사실은 연합의 개념이다. 그들이 언약의 조항들을 지킬 때, 연합이 유지되고 같은 공동체임이 확인된다. 언약에 대한 순종은 연합을 누리는 방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구약에서의 중생 개념은 부분적이며, 물리적이고, 육체적이고, 가시적이고, 상징적이고, 제한적이며, 땅에 속한 방법이다. 구약의 중생적 의미를 담은 사건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과 재창조로 성취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데 구약의 기대가 있다.
신약
구약의 언약이 담고 있던 연합이 완성되었다. 모든 이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약속이 성취됨으로써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 그와 연합할 수 있게 되었다. 중생의 관점으로 보면,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거듭날 수 있게된 것이다.
신약에서의 중생의 의미는 구속사적-종말론적 새 시대의 도래의 특성과 함께 간다. 즉 구약이 기다렸던 새 시대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의 완성에 의해 결정된다.
마태복음에서의 중생 개념은, 개인 구원의 차원보다는 범우주적 차원의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바울서신에서의 중생 개념은, 이전의 삶과 상태에 대한 단절적 대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 구도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시작된 새 삶의 특징은 이미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중생)와 새로움 가운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는 의미(성화)가 함께 있다. 여기서 중생은 성화의 근거가 된다.
베드로에게 중생 개념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특징을 가졌으며, 중생과 말씀을 연결시킨다.

중생의 필요성

“새로워짐”은 요한 신학의 특징 중제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셨다. 여기서 육과 영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중생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달려있다.
영에 대한 정리
5절 “성령”과 6절 “영”은 동일한 성령으로 이해하면 된다. 종합하여 읽으면,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데, 육으로 육의 일을 하고 성령으로 일을 한다” 성령에 대한 강조에서 중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데, 절대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중생할 수 없기에 성령에 의한 중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육에 대한 정리
타락 이전 상태의 육 VS 죄성을 가진 육
타락 이전 육: 니고데모 대화에서, 성령의 능력은 육의 능력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대비되고 있다. 육의 한계로는 사람이 거듭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는데, 육은 성령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강조만 보면, 여기서 의미하는 육이 죄로 인해 오염된 육이든 타락 이전 상태의 육이든, 육이 지니는 한계와 연약함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죄성을 가진 육: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은 “거듭나다”를 설명하시기 위해 하신 말씀이다. “성령으로”는 신약 계시의 점진적 진행 관점에서 볼 때 성령강림 사건이 있기까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물”을 아는 것으로 전제하셨고, 같은 유대인으로서 니고데모와 예수님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물로써 중생을 설명한 것이다. 니고데모는 물을 들었을 때, 부정한 상태에서 거룩해지기 위해 물로 씻는 정결 예식을 떠올렸을 것이다. 구약에서 물이 갖는 정결의 의미는 신약에 와서 성령에 의해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예언적 표현이다. 예수께서 물을 언급하신 것은 죄의 문제를 고려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육은 죄성을 가진 육이라고 생각된다. 죄로 인해 무능력한 육은 죄악된 육의 일만 도모하고, 거듭나는 일은 성령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으로 영과 육의 대비를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어느 해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중생 자체는 타락 이전 상태에서도 이룰 수 없으므로 여기서는 “육” 자체의 한계에만 집중하면 된다. 성령이 하시는 중생의 일은 타락 전후 상관없이, 육의 모든 능력으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선 중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수님이 중생을 단순히 구원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의 문제로 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중생의 결과 즉 실천적 차원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중생의 이론

“거듭” 또는 “다시”, “위로부터”. 요한복음 니고데모 대화에서 알 수 있는 중생에 대한 조직신학적 특성은 중생은 영적이고 신비적인 위로부터의 중생이며, 하나님 나라를 누린다(본다)는 인식과 체험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중생은 죄를 씻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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