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5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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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마 8:14-17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우리 인생 가운데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고, 갈등과 분쟁들, 고난과 시련들이 물밀듯 밀려듭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주님의 자비의 손길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손 내미셔서 우리 불쌍한 인생들을 만져 주시옵고 고쳐주시옵고 회복시켜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태복음 8-9 장은 예수님의 이적과 치유기사에 집중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와 귀신들리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첫째로,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만지시기 원하는 분이시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들의 입지는 상당히 좁았다. 능력과 자질이 뛰어나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으며, 중한 병에 걸려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천대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신다. 앞에서의 백부장 뿐만 아니라 베드로 역시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 열병으로 앓고 있는 그의 장모를 보셨다. 그러고는 그 여인의 손을 만지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분과 만난 어떤 환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하셨던 것처럼 환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시고, 의도적으로 만지셨다.
마9:27 에 보면 두 맹인이 등장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들이 예수님께 눈을 보게 해 달라고 청할 때에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라고 하셨다. 마20:29-34 에도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 맹인 두 사람이 길에 앉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고쳐달라고 부르짖었을 때에도 예수님은 저희 눈을 만지시니 보게되어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마9 장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실 때에도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던 그 딸을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갈 때에도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건져주셨다. 마17:7 에도 변화산에 함께 올라갔던 제자들이 무서워 떨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라고 하셨다. 막9:27 에도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 간질로 넘어진 어떤 이의 아들을 고치실 때에도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고 기록한다.
여러분, 예수님의 일생이 만지시고 고쳐주신 사역들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죄의 결과인 사망으로 인하여 모든 영육간의 질병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창세 이전부터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여전히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영육간의 질병들 속에 고통받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죄로 얼룩진 그들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셨고, 그들의 인생을 만져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굳이 만지지 않아도 치유하실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들을 만지셨다. 율법적으로 만지지 말아야 할 대상일지라도 굳이 만지셨다.
사람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만 주님께서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신다. 그러한 주님께서 오늘도 그분의 택한 백성들의 인생을 만지시기를 원하신다. 죽기까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주님께서 오늘도 이 시간 주님 앞에 엎드린 모든 주의 백성들의 인생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시고, 사랑으로 만져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여러분, 어떤 CCM의 가사와 같이 주님과 같이 우리 마음 만지는 분은 없다. 주님과 같이 우리의 인생을 어루 만지시는 분은 없다. 따라서 사랑으로 만져 주시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자. 우리의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고치시는 놀라운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 교훈이 그러하다.
둘째로, 주님께서 만지시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베드로 장모를 치유하시는 기사는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 공관복음은 모두 베드로 장모의 상태가 중했음을 말한다. 특히 막1:30 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누워있다’라는 구절의 시제를 보면 그 의미가 오래전부터 장모는 병을 앓아왔고 지금도 그 병을 앓고 있음을 말한다. 오랫동안 시달려 괴로운 상황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장모에게 주님께서 손을 대시니 어떻게 되었는가? 그 병이 완전히 떠나갔음을 보게 된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주님께서 만지신 자들은 하나같이 그 질병이 얼마나 중하였든지간에 모두 완쾌되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만지시면 죽은 자라도 일어난다. 힘이 소생한다. 마음이 강하여진다. 하나님의 손은 권능의 손이다. 주께서 만지시면 깨어진 관계가 회복이 되고, 상한 심령들이 나음을 입으며, 쇠잔해진 영육이 강건케 되는 역사가 임한다.
오늘 본문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눅4:40 부터 보면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주님께 나아온다. 마태와 마가는 이 병자들이 “각종 병에 걸린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라 말한다. 눅4:40 에서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찾아온 수많은 영육간 환자들에게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라고 기록한다.
여러분, 인애와 자비가 충만하신 주님께서는, 죄에 물들어 그 결과로 세상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시사, 그 인생을 만져 주시기를 원하신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님 앞에 나아와 만져 주시기를 간구하는 자들의 소망에 응하시사, 상처나고, 피가 나며, 썩어가고, 진물이 흐르며, 혐오스럽고, 안스러운 우리의 죄로 충만한 몸과 마음을 주의 피 묻은 손으로 만져 주시사 그 보혈이 우리를 완전히 덮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셨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기저기 부딛혀 상처나고, 곪고, 아프고, 상한 우리의 몸과 영혼을 끊임없이 만지시사 치유하시고, 회복하시고, 힘을 더하여 주시고, 강건케 하신다. 여러분, 영혼이 쓰러져 가는 분들이 있는가? 몸이 병들어 괴로운 상황에 놓인 분들이 있는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곳에서 두려움에 떨며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 있는가? 여러 깨어진 관계들 속에서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여 신음하는 분들이 있는가? 주님께 모든 인생의 답이 있다. 주님이 해답이시다. 주님만이 고치실 수 있다. 어떤 갈등도, 어떤 문제들도, 어떤 질병도, 어떤 고난도 능히 고치시고 회복시키실 주님을 붙들라. 놀라우신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의 은혜로 회복된 자들은 이제 주의 일을 위하여 충성해야 한다. 15절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가 주의 만져주심으로 회복된 후, 은혜를 입은 자가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문에서는 ‘예수께 수종들더라’ 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수종들다’라고 번역한 ‘디아코네오’ 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봉사로 섬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또한 '삶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다, 식탁에서 시중을 들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베드로의 장모의 섬김은 이 모든 의미들을 다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헌신은 자신을 회복하게 해 주신 주님께 응당 보여야 할 반응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사랑과 자비의 손길로 회복과 치유를 경험했고, 계속해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그저 당연하게 그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주의 나라를 위한 봉사와 헌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복을 베푸시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질병이 나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더 넓고 큰 집, 좋다. 그러나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의 광채에 눈이 멀어버렸던 사울은 아나니아를 통해 그의 눈을 뜨게 되고, 그 후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전세계를 향한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또한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다가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한 장애우를 보게 되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라고 그를 잡아 일으켰을 때,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 찬미하며 성전에 기뻐하며 들어가게 되지 않았던가. 이처럼 은혜로 회복되면 섬길 수 있다. 회복되면 섬겨야 한다. 섬기게 하시기 위해 회복시키신다. 이것이 주님의 목적이다.
출애굽기 초반부에 바로에게 전하는 모세의 말을 보면,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섬기다’라는 단어 ‘에베드’는 ‘예배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즉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택하시고 속량하시는 그 이유는 하나님만 섬기는 것, 하나님만 예배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속량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만 예배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더욱 주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치유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더욱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형통의 은혜가 임하는 것은 더욱 주의 일을 위하여 달려가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셨는가? 그렇다면 이제 다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기로 결단하라. 바로 이것이 여러분들을 고치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갈등이 회복되고, 고난에서 해방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다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로 결단하라. 이것이 여러분들을 횝복시키신 하나님의 뜻이다.
말씀을 정리한다. 주님은 사랑과 자비로서 여전히 그분께 속한 백성들의 인생을 만져 주시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주님의 손길이 닿은 자마다 모든 괴롬과 질병에서 해방된 사실들을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도 주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긍휼과 사랑이 넘치시는 주님께서 그분의 인자하신 손길로 우리 인생을 어루만지실 때 모든 갈등, 괴로움, 질병, 상함이 치유될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의 답은 주님께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자비하신 주님의 만저주심을 사모하며 주님께 나아가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님, 주님께 간절히 자비의 손길을 간구합니다. 우리 인생을 만저 주옵소서. 우리 인생을 붙들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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