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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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는 키다리 아저씨로 나를 도와준다.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는 키다리 아저씨로 나를 도와준다.
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키다리 아저씨”라는 말을 아시나요? 우리에게는 친숙하게 단어입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미국의 진 웹스터 작가가 쓴 소설의 제목입니다.(원제: Daddy-Long-Legs)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 부모없이 지내던 제루샤 애벗은 매달 후원자에게 후원자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는 조건으로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대학교 진학 후원을 받습니다. 후원자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애벗은 현관에서 본 그의 기다란 그림자를 보고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리고 자신은 “주디”라고 칭합니다. 애엇은 자신의 대학생활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통해 알려줍니다. 이러한 책의 내요을 통해 “키다리 아저씨”는 정체를 알리지 않고 뒤에서 몰래 남을 도와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속으로 키다리 아저씨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뒤에서 기브엔 테이크가 아닌 정말 내가 잘되기만을 바라고 후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에게 두 종류의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만나는 키다리 아저씨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의 키다리 아저씨
첫째는, 눈에 보이는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적용: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 교회 공동체)
먼저 1절에 야곱은 걸어서 동방 사람들이 사는 땅 곧 밧단아람으로 갔을까요? 이것은 바로 장자권 사태 때문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축복에는 아버지의 축복으로 모든 민족을 섬기며 친척들도 다스린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창 27:27-29)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에서는 아버지에게 애원해 축복을 받은 야곱이 너를 다스리겠지만 “애써 힘을 기르면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창 27:39-40) 야곱과 에서의 축복은 형제들 사이의 긴장감을 불어줍니다. 에서의 축복을 빼앗아 그를 다스리게 될 야곱과 힘을 기르면 그 운명을 뒤집을 수 있다는 축복을 받은 에서. 에서는 마음에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합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다.”
(창 27:41 새번역)
이를 알게 된 어머니 리브가는 재빨리 야곱을 피신시킵니다.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하고 다니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 아들을 불러다 놓고서 말하였다. “너의
형 에서가 너를 죽여서, 한을 풀려고 한다.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제 곧
하란에 계시는 라반 외삼촌에게로 가거라.” (창 27:42-43 새번역)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토 집을 떠나 외삼촌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라반은 야곱을 반깁니다.
“라반은 누이의 아들 야곱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그를 만나러 곧장 달려와, 그를 보자마자 껴안고서,
입을 맞추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야곱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라반에게 다 말하였다. 말을
듣고 난 라반은 야곱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와 한 피붙이이다.””(창 29:13-14 새번역)
“너는 나와 한 피붙이다”라는 고백을 들었을 때 야곱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마치 아담으로부터 “내 살중의 살이요”라고 고백을 받았던 하와의 심정과 같이 않았을까요?
-> 이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눈에보이는 키다리 아저씨들 곧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교회 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그 공동체의 사랑과 헌신으로 커갑니다.
야곱의 키다리 아저씨
둘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적용: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심)
야곱의 상황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야곱은 자신 안에 있었던 욕심의 선택으로 친족살인의 두려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집, 옷, 양식, 어머니, 하인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습니다. 언제까지 걸아야하는지도,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터벅 터벅 광야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와 주십니다. 그는 베델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약속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 28:13–15 새번역)
이 장면은 마치 살인자로 이집트에서 도망나와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의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에서 라헬을 만나는 장면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라헬을 만나는 본문을 살펴보면, 야곱이 우물에서 목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때마침 라헬이 찾아옵니다.(9절) 이것은 마치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갈 때 한 소녀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등장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창 24:15) 즉,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만났던 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처럼 성경은 오늘 본문도 “때마침”이라는 단어를 통해 야곱이 리반의 딸 라헬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십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키다리 아저씨를 이렇게 소개하고 계십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창 23:6 새번역)
하나님은 나의 평생동안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따라오십니다. 이때 따른다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추격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의 뒤를 졸졸졸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FBI 경찰이 파란불과 빨간불 쌍불을 켜고 쫓아와 끝내는 범죄자를 잡아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불을 켜고 우리를 추격하여 끝내는 잡아낸다는 의미입니다. 사로잡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굴복하여 “나는 늘 하나님을 벗어나려고만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포기치 않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성경은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개역개정)
키다리 아저씨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과 선택들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욕심으로 축복권을 빼앗은 일을 선으로 바꾸셔서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의 약속이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으로 생긴 친족살인의 비극적인 결말을 용서와 화합으로 바꾸셨습니다.(창 33:4)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십니다. 그분은 모든 지혜와 능력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 다윗처럼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시 23:1-6 새번역)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과거의 후회도, 현재의 두려움도, 미래의 불안도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나의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키다리 아저씨를 믿을 때 눈 앞에 상황에 일희일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내가 또한 너의 키다리 아저씨란다. 아무런 걱정하지말고 내게 맡기렴.” 우리 모두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