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바보처럼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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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2:5-11
빌2:5-11
어릴 적 저희 어머니께서 저와 여동생을 두고 항상 기도하실 때 마다 꼭 하셨던 기도가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분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우리 자녀들이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바람대로 머리가 되지는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늘 가슴 한 켠에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녀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부모의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머리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 한 분 이시고, 그리스도인은 낮은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 하고, 다스리려고 하고,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셔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과 정 반대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가 우리가 읽은 빌립보서 2:5-11절 본문의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신 그 은혜로 우리 성도들도 이 땅에서 하나 됨을 이루어가기를 사모 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2차전도 여행 중에 세워진 빌립보 교회의 내부적인 분쟁에 대한 소식을 옥중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 빌립보서 1장 27절부터 2장 4절까지 교회가 한마음을 품을 것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기희생적 사랑을 본 받아 공동체의 하나 됨을 이루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촉구 합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내가 옳다고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이익, 자기 의견, 자기주장 속에 움켜쥐기만 한다면 교회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으로써 마땅히 가지셔야 할 하나님 되심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 하셨습니다. 사람은 늘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태어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지막은 움켜쥐던 두 손의 힘이 다 빠져 다 펴고 죽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왜 그렇게 움켜쥐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되심을 움켜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하나님께 순종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가 꽉 움켜쥐고 있는 자기이익, 자기의견, 자기주장을 우리 손에서 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도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비우고, 낮아집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언약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높여 주십니다.
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주신 이유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만물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예배 하도록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 하면서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들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 이시다.” 라고 부르짖게 하십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순종을 서약 하는 행위입니다. 고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사단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피조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짖게 하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하나님 되심을 움켜쥐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고, 낮추신 것이 오히려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심으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 하는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왜 공동체가 다툼이 생기고, 분열이 일어납니까? 그곳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의 통치와 다스림을 따르겠다 고백하는 예배가 사라지면 내 안에 있던 자아가 다시 살아나 다툼과 분열과 갈등을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함이 사람의 결핍을 메우는 줄로 믿습니다. 그 충만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이 흘러나오고, 자기의 유익 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순종합니다. 결국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함이 우리의 결핍을 메우고, 우리를 통해 공동체의 하나 됨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형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충만함 속에서 스스로를 내어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람의 본질은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을 채우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함에서 내어 주는 것에 있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충만함을 입어 우리의 결핍의 문제가 해결 되어졌습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을 본 받아 날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공동체의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홀로 영광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엇이 우리의 하나 됨을 무너뜨립니까? 어떤 것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떠나 내가 높아지고, 내가 왕이 되려고 유혹합니까? 그럴 때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읍시다. 자기를 비우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읍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우심을 통해 충만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통해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심으로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시작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함 속에서 우리가 충만하여 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 깨지고, 상하고, 다투고,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으로 싸매어 주고, 위로가 필요한 곳에 위로가 되고, 낙심과 좌절이 있는 곳에 용기와 힘이 되어 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찬양 멜로디는 굉장히 밝고 신나는데 가사는 굉장히 의미가 깊고, 무거운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 제목이 His will 3집에 있는 ‘바보처럼 살래요’ 라는 CCM 찬양입니다. 제가 이 찬양을 자주 차에서 듣고 다니니까 제 차를 탔던 학생 중에 한 명이 이 찬양을 듣다가 제가 생각나서 카톡을 보냈습니다. 근데 이 찬양 가사에 보면 ‘당신 참 바보 같군요, 당신 정말 바보 같군요, 당신 참 바보 같군요’ 3번 나옵니다. 그런데 정말 감동적인 가사가 이제 제일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나도 바보처럼 살래요’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는 게 얼마나 바보 스럽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세상에서 볼 때 얼마나 거짓말 같고, 바보 스럽습니까? 우리도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하여 공동체 안에서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스럽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거 하시겠습니까? 왜요?
왜 우리가 굳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 그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까? 우리 주님이 먼저 나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충만함을 내게 나누어 주셔서 나의 결핍을 채워주시고,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 때문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작정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나도 바보처럼 살래요’ 고백하는 믿음의 세대가 생겨나고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이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 부서 속에 또 여러분들이 다니는 직장과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우리를 통해 하나님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