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과 한 여인 / 막 5:21,43 / 찬송가 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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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이 거룩에 전염되고 죽음이 생명에 물러난다.

Notes
Transcript

서론

오늘도 이렇게 오후찬양예배 오신 성도 여러분들을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저는 추위를 싫어합니다. 추운 것도 싫지만, 추운 날씨에 제가 잘 체하기 때문에 추위를 싫어합니다. 2주 전에 아내랑 같이 초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에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답답했던지 환기를 시켜줄려고 문을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약간 선선하다 느낌을 받고 있었지요. 그렇게 초밥이 나왔고, 맛있고 먹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임신해서 많이 먹지 못했기에, 제가 다 뺏어 먹었지요. 그리고 주문한 초밥들을 다 먹고, 마지막 서비스 초밥으로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김밥 같은 것, 마끼라고 하더라구요. 마끼 두 개를 주셨습니다. 두 개 모두 제가 다 먹어버렸습니다. 살짝 추운 온도에서 과하게 먹어버려서 속이 꽉 막히며 체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3일 정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2kg 정도 빠졌습니다. 먹지 못해서 조금 힘들었지만, 2kg 빠져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주 좋아져서 교회 점심식사도 맛있고 먹고, 만나홀 카페 차도 잘 마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방금 말했던 것처럼 대개 사람들은 한 가지만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이야기를 가져와서 자기 생각을 더 강하게 말하곤 합니다. 추위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만 하지 않고, 추위 때문에 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넣어서 추위를 싫어한다는 말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지요. / 이러한 모습은 옛날 서양의 연극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떠한 늙은 왕과 그의 세 명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딸은 굉장히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고 아버지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셋째 딸은 정말 착하고 아버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었지요. 그러다가 이 왕이 자신의 나라를 딸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그냥 셋째 딸에게 주지 않고 한 가지 시험을 하게 됩니다. 딸들을 모아서 한 명씩 왕에게 칭찬하는 말, 사랑하는 말을 해보라는 시험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 왕은 셋째 딸이 자기를 가장 사랑하니까 당연히 셋째가 제일 화려하게 말을 해주겠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첫째와 둘째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나라에만 관심 가져서, 마음에도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엄청나게 꾸며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셋째 딸은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언니들과는 다르게 한 마디만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저의 소금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소금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지요. 뭔가 쓸모없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셋째 딸에게 더 말을 해보라고 요청하였지요. 그러나 셋째 딸은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됩니다. 셋째는 소금이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소금이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왕은 오해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의 나라를 첫째와 둘째 딸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서 어떻게 됩니까? 첫째와 둘째는 나라에만 관심있었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쫓아내고 버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 왕과 세 명의 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 신하는 쫓겨난 왕을 보면서 그 왕을 나쁘게 평가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신하가 집에 들어가서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신하에게는 친아들이 있었고, 입양된 둘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둘째 양자 아들이 첫째 친아들과 아버지 사이를 이간질 시켜버립니다. 그렇게 신하는 자기 친아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것이지요. 그 다음 어떻게 됩니까? 둘째 양자 아들이 아버지를 쫓아내서 재산을 다 차지하게 됩니다. 아까 들었던 왕과 세 명의 딸 이야기와 비슷하지요? 이렇게 두 가지 비슷한 이야기를 같이 들려줌으로써 비극을 더 비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마가복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마가복음에서 먼저 이러한 기술을 사용한 것입니다. 두 가지 사건을 같이 쓰면서 진리를 더욱 선명하게 말하는 기술을 마가복음이 먼저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 사건 사이에 혈류병 여인 사건이 끼어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장 21-43절 사이에 25-34절이 혈류병 여인 사건으로 들어가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책으로 보는 사람들은 혈류병 여인 사건이 끼어들어가 있는 것을 보며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야이로의 딸 사건이 흘러가야 하는데, 굳이 왜 그 사이에 혈류병 여인이 들어가냐고 사건이 진행되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하면서 성경은 완전한 책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 쪽 사람들은 저희랑 성경 보는 안경이 아예 다릅니다. 그러나 혈류병 여인 사건은 야이로의 딸 사건을 풀어내는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또한, 혈류병 여인 사건이 사이에 들어가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제 거라사인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배를 타서 맞은편으로 건너가 바닷가에 계시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Mark 5:22 NKRV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예수님께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가 찾아옵니다. 이 당시에 회당은 유대인들의 예배 장소였습니다. 한 마을에 회당이 있는데, 여기서 회당장이었던 것이지요. 마을에서 굉장히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발 아래 엎드리어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23 NKRV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지금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 12살로 뒤에 나오는데, 그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정말 위독한 상황에 처해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야이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살려달라고 구원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곧바로 무리들과 함께 야이로의 딸에게로 가게 됩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모였기 때문에, 예수님 중심으로 에워싸면서 서로 밀면서 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 여인이 그 무리 속으로 숨어들어 갑니다. 그 여인은 누구입니까? 25절, 2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25–26 NKRV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그 여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열 두 해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었습니다. 12살의 야이로의 딸을 구원하러 가는 예수님께 12년 동안 혈류병에 걸린 여인이 찾아옵니다. 혈류증. 말 그래도 몸에서 피가 나오는 병입니다. 이 병은 26절에 보니까 거의 고칠 수 없는 불치병과 같았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의사들에게 모든 재산을 다 써버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혈류병은 더 심하여 졌습니다. 몸에서 피가 나오는 것. 이것은 율법에서 분명하게 부정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부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여인은 소망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그녀는 거의 죽은 상태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에게로 가는 예수님께 그녀는 나아가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그녀는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혈류증 걸린 이 여인은 이제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소문으로만 들어온 예수님께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Leviticus 15:11 NKRV
11 유출병이 있는 자가 물로 그의 손을 씻지 아니하고 아무든지 만지면 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유출병을 가진 그녀는, 혈류증에 걸린 이 여인은 부정한 여인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부정함을 전염시키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다른 소망이 없었습니다. 12년 동안 온갖 방법을 다 찾아보아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위험을 무릎쓰고 소문으로만 들어온 예수님께 찾아갑니다. 사람들의 정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수님의 무리 속으로 숨어들어갑니다. 27절, 28을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27–28 NKRV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 혈류병 여인은 그렇게 무리 가운데 끼어 들어가서 예수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게 됩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 받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이 여인의 믿음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믿음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정함은 그 부정함을 전염시킵니다. 다른 것들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부정함이 거룩함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정한 사람들은 따로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 안에 들어온 믿음은, 상식이 부서지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만 의존하는 이 여인의 믿음은 말도 안 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분이라면, 나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해주실꺼야. 부정함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이 전염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지요. 그렇게 이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구원이 일어났습니다. 29절,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29–30 NKRV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여인은 예수님께 구원 받았습니다. 혈류병 여인에게서 부정함이 나왔지만, 예수님께로부터 차원이 다른 거룩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상식이 부서져서 오히려 이 여인이 병 고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옷에 손 댄 사람을 찾게 됩니다. 이 여인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율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갔고, 함부로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34절에 예수님은 병 고침 받은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34 NKRV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두려워떨고 있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회당장 야이로는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야이로는 이 여인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을 갖고 담대하게 예수님 붙잡고 자기 딸을 고쳐주실 것을 믿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소식이 야이로에게 찾아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Mark 5:35 NKRV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회당장의 집에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에게 알려줍니다. 너의 딸은 죽었다. 그런데 왜 계속해서 선생 예수님을 붙잡고 있으냐. 왜 예수님을 더 괴롭게 하고 있느냐. 이미 끝났어. 그만 포기해. 예수님을 이제 놓아드려. 이 말을 들은 야이로는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혈류증 걸린 여인을 보고 겨우 믿음이 생겼는데, 그 믿음이 완전히 다 부서졌습니다. 왜냐면 죽음이 그에게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죽음이 자기 딸에게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절망했습니다. 그는 이제 포기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 이제 그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말할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36절에 놀라운 예수님의 음성이 선포됩니다.
Mark 5:36 NKRV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해라. 혈류증 여인과는 반대입니다. 혈류증 여인은 믿고 예수님께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회당장 야이로는 죽음 앞에서 믿음이 사라졌고 두려워떨고 있었는데, 그 야이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와서 말씀해주십니다. 두려워 하지마. 나를 믿어라. 야이로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부정함을 거룩하게 바꾸신 분. 여기까지는 받아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죽음입니다. 죽음까지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신가? 그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음성에 반응하여 죽은 딸이 있는 곳까지 가게 됩니다. 3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39 NKRV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였더니, 벌써 사람들이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이미 죽어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울고 있냐. 이 소녀는 지금 자고 있다.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그 소녀는 정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소녀에게 다가가십니다. 12년 동안 혈류증에 앓은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예수님께서 12살 죽는 소녀의 손을 잡으십니다. 41,42절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41–42 NKRV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님은 12살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 ,소녀야. 쿰! 일어나라! 그리고 구원이 일어납니다. 죽은 소녀는 살아나서 걷게 됩니다.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정한 여인을 거룩하게 만드신 것도 놀라운 사건인데, 지금은 죽음이 물러가고,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부정함은 거룩에 전염되었고, 죽음은 생명에게 전염되었습니다. 모든 상식이 부서지는 역사를 우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4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Mark 5:43 NKRV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기에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시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때까지 숨기셨던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은 때가 차서 붙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게 되십니다. 거룩하신 그 분이, 죄가 없으신 그 분이 나무에 달리시기 됩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받은 자라고 율법에서 말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 죽은 죄인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야이로 딸과 혈류증 여인 사건은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예수님을 선명하게 보고 믿게 된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괜찮은 사람들만 가까이하며 살아갑니다. 더럽고 나쁜 사람들은 멀리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러운 사람을 멀리하고,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고, 죽음과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뭔가 부정적인 것이 자신을 전염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좋은 영향력을 주는 것 안에만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모습을 우리들도 영향을 받아서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깊이 알게 되면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죄악을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날마다 깊이 알아가는 사람들은 다르게 살아갑니다. 자신에게 어떠한 사람들이 찾아오던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더럽고, 악한 사람들이 찾아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부정적인 사람들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예수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 주변을 예수님의 은혜로 전염시키게 됩니다. 우리가 왜 교회 공동체에 모이는 것입니까? 이렇게 모여서 왜 예배 드리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 들으면서 예수님으로 충만하여 지고, 그리고 예수 공동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여 예수로 충만하여 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 거룩한 공동체에서 예수 충만하여져서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예수님의 은혜로 전염시키는 것이지요. 이것을 기억하면서 이번 한주도 예수님께 집중하며,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며, 예수님의 교회 공동체에 자주 나오며, 예수님으로 충만하여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정함을 거룩함으로 바꾸시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신 구원자 예수님을 몰랐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먼저 구원자 예수님으로 충만하여져서 어느 곳에 가든지 누구를 만나던지 가정이나 이웃이나 직장에서 예수님을 전파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