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기에서 놋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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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상 14:21-31
제목: 황금기에서 놋 시대로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말씀을 기록한 열왕기 저자의 영적인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열왕기상 14장 21절 말씀을 보시면, 르호보암에 관한 굉장히 중요한 정보 세 가지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정보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의 첫 번째 왕으로 등극하는데, 왕으로 즉위할 때 그의 나이가 41세였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41세라고 하는 나이는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회사생활로 예를 들자면, 41세 남성의 경우 과장 또는 차장 정도의 직급을 갖게 되는데요. 이 정도의 직급이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는 직급이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르호보암의 경우에는 41세에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왕세자로 훈련받으며 성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으로 40년간 통치했다는 점에서 로흐보암은 태어났을 때부터 왕으로 즉위하기까지 40년간 왕세자로 훈련받으면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르호보암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인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40년간 통치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배우며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참된 모습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어디에 달려있는지. 이러한 부분들을 아버지를 통해 선행학습한 것이죠.
이어서 두 번째 정보는 21절 말씀 중간 부분 보세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첫 번째 왕으로 즉위한 것은 사실이나, 더 중요한 사실이 등장하죠.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르호보암이 17년 동안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르호보암이 분열된 이스라엘 국가, 다시 말해 남유다의 초대 왕으로 등극해서 17년간 통치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 이면에 담겨 있는,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르호보암이 통치했던 그 장소가 다름 아닌,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이었다는 것입니다. 왕이라는 감투를 르호보암이 쓰게 되었지만, 르호보암이 용포를 입고 통치하는 그 장소가 본인 뜻대로 통치하는 독무대가 아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한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국가가 남유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읽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약성경에 박식한 분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 신명기 말씀을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신명기 12장 1절 말씀 들어보세요.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이어서 신명기 12장 5절 말씀 들어보십시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그리고 그 이하의 문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으로 나아가서 온갖 번제와 제물과 십일조와 서원제와 예물 등을 드리라는 명령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상 14장 21절 말씀에는, 신명기적인 역사관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신명기 12장 말씀을 떠올리고, 열왕기를 신명기와 연결해서 본문의 문맥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정보는, 14장 21절 제일 뒷부분에 보시면,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첫 번째 사실은, 솔로몬의 이방 여인과의 통혼 시기입니다. 솔로몬이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41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4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솔로몬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솔로몬이 장사되고 나서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할 때 이미 솔로몬은 르호보암의 어머니인 암몬 사람 나아마와 혼인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합니까. 솔로몬은 통치 초기부터 우상숭배에 대한 여지를 활짝 열어둔 상태에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뿐만 아니라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르호보암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가 등장한다는 것은, 열왕기 저자가 르호보암의 신앙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 역시 통치 후기에 우상숭배를 일삼으면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자 이렇게 열왕기상 14장 21절에서부터 우리는 르호보암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열왕기 저자가 말씀으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르호보암이 통치하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 나아마였다는 점에서, 르호보암의 통치 형태가 어떠한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열왕기 저자가 암시한 바와 같이,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답습할까요?
14장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열왕기상하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들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상 14장 21절에서는,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초대 왕으로 등극하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17년간 통치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일반 역사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소개 이후에 등장해야 하는 내용은 어떤 내용이겠습니까?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이러한 내용이 등장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열왕기 저자의 영적인 관점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의 인생이 어떠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일반인이라면 모르겠는데, 왕이라고 하면 그가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이러한 내용이 하나라도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르호보암은 무려 17년 동안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대통령이 세 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입니다. 이렇게 기나긴 세월을 두고 왕을 평가하는데, 평가의 기준이 르호보암의 인간적인 능력이나, 리더십이나 그의 정책이 아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의 인생이 어떠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이 우상숭배를 일삼았고, 백성들의 왕의 모습을 보고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성읍인 예루살렘이 우상숭배의 성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3절과 24절 말씀 보세요.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여기서 “남색하는 자”라는 표현은 우상숭배하는 곳에서 일하는 남창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23장 17절과 18절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앞서 설명해드렸듯이, 열왕기 저자는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지고 열왕기서를 기록했습니다. 열왕기 저자가 영적으로 바라볼 때 통일 이스라엘이 분단국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백성을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 거룩한 땅에 남창과 창녀를 우상숭배 처소에 배치하고, 문란한 제사 의식을 거행하도록 방치했습니다. 왕은 왕이니까 정치만 해야 하고, 우상숭배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을까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통령을 왕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왕은 왕이죠. 열왕기 말씀을 쭉 읽어보면,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은 우상숭배를 척결합니다. 그러니 르호보암이 솔로몬에 이어서 우상숭배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점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자 그래서, 열왕기 저자는 이러한 참담한 현상에 기록할 때, “남색하는 자”라는 표현까지 기록합니다. 이때, 남색하는 자는 히브리어로 카데쉬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거룩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코데쉬”입니다. 자음은 똑같고 모음만 다르죠.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초성은 똑같은 거예요. 이러한 현상은 열왕기 저자가 의도적으로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입니다. 동일한 어근이나 유사 발음을 사용해서 원래 용법과 다르게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고, 남색하는 자와 더불어 문란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유다 백성들은 우상숭배, 특별히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알과 아세라를 잘 믿으면, 크게 번성하고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그릇된 믿음이 어떤 결실을 맺을까요. 오늘 본문 25절 말씀 보세요.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솔로몬은 과거에 애굽의 왕인 바로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시대에 애굽의 왕이 예루살렘을 침략합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브라이트라는 구약학자에 따르면, 솔로몬과 동맹을 맺은 애굽의 21대 왕조는 22대 왕조를 세운 리비아 귀족인 시삭에 의해 전복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애굽의 우호 관계가 종식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인생은 참 알 수 없습니다. 솔로몬이 애굽의 바로의 딸과 결혼할 때, 아무런 이유 없이 결혼했겠습니까? 당연히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목적이 있었겠죠. 애굽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 평화롭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솔로몬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불안정한 왕조와 혼인관계를 맺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죠. 솔로몬이 혼인관계를 맺은 이집트 21대 왕조는 기원전 1077년에서 943년까지 왕조를 유지했던 나름 탄탄했던 왕조였습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혼인했을 때에는 그 왕조가 100년 이상 유지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의 입장에서 볼 때, 애굽과 좋은 관계를 맺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러나 르호보암이 우상숭배를 일삼자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이집트 21대 왕조가 시삭에 의해 전복됩니다. 그리고 시삭은 예루살렘을 침략하는데, 고대 문헌에 따르면, 시삭은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총 154개의 성읍과 도시들을 파괴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시삭은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다 빼앗아가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아갑니다. 이로 인해 르호보암은 금방패 대신에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르호보암 통치 5년 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옛말에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고 하는데, 남유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정성스레 바쳤던 수많은 보물들이 시삭의 손에 넘어가고, 금으로 만든 방패가 놋으로 만든 방패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결과가 얼마나 크고 두려운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열왕기 저자가 어떤 관점으로 열왕기상 14장 21절 이하의 말씀을 기록했는지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세상 역사가들이라면, 르호보암이 초대 남유다의 왕이었고, 무려 17년간 남유다를 통치하면서 어떤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서 기록했겠지만, 열왕기 저자는 철저하게 영적인 관점으로 르호보암과 남유다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성읍인 예루살렘에서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며, 우상숭배를 일삼았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결과 남유다는 애굽의 왕 시삭에게 침략당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남유다의 몰락에 대해 해석할 때, 여러 가지 다른 근거를 제시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인생살이가 퍽퍽해질 때, 정치, 경제, 외교 등의 문제를 언급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의 영적인 관점에 따르면,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어려움을 직면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드는 것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항상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의 삶은 어떠한지. 나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나는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런 부분을 세밀하게 점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림으로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열왕기 말씀을 반면교사 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애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근심케 만드는 것이 아닌, 빛과 소금된 역할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칭찬 받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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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pp.140)
르호보암은 자신의 아버지가 성전과 왕궁에 그토록 주도면밀하게 쌓아두었던 보물을 애굽의 왕 시삭의 손에 잃어버리는 파탄을 겪음. 솔로몬의 황금기는 르호보암의 놋의 시대로 대체되며, 솔로몬이 누렸던 평화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대체됨.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삼하 7:14에 나오는 아버지의 징계에 불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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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주해 – 김진수 (pp.187)
르호보암은 41세에 왕 등극, 17년간 통치(B.C.930-913). 그의 재위기간에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지 않고 높은 산들과 잎이 무성한 나무들 아래에서 우상숭배를 일삼았음. 이러한 우상숭배에는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까지 포함되어있었음. 개역개정의 ‘남색하는 자’는 원래 ‘성소의 남창’을 의미함. 열왕기 저자는 그러한 행위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이라고 평가함(14:24). 이는 유다 백성들 또한 그 땅에서 쫓겨날 수 있음을 암시함.
르호보암 5년에 애굽왕 시삭의 침공이 있었음. 고대 문헌에 따르면 시삭에 팔레스타인 원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시삭은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모두 154개의 성읍과 도시들을 파괴했다고 함. 다른 한편 열왕기 저자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함.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샬롬이 지나가고 전쟁과 분쟁에 휩싸이는 혼란의 시대가 시작된 것. 하나님을 배반하고 평화를 바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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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찬(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 – 766)
르호보함은 17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음에도 그에 대한 기록은 매우 짧다. 불과 11절만 할애되어 있기 때문. 그의 모친은 암몬 사람 나아마. 르호보암에 대한 신학적 평가는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였음.
유다가 악을 행한 것은 22절,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23절과 24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단순하게 산당을 지은 것이 아닌,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남색하는 자까지 있었음. 신 23:17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 신 23:18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이러한 악행으로 인해 유다는 애굽의 침공을 받음. 시삭이 유다를 침공한 이유는 알 수 없음. 그러나 솔로몬의 부와 영광의 상징인 성전의 보물과 왕궁 보물과 금 방패를 빼앗긴 것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길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줌. 이런 불길한 모습은 주전 587년에 성전이 파괴되면서 성전 보물이 빼앗길 것을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함. 르호보암은 금 방패 대신 놋 방패를 만들었음. 이는 유다 왕국이 힘을 잃어가는 것을 보여줌. 또한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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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pp.268)
14:22-24
유다의 죄는 하나님의 질투의 분노를 불러일으킴. 하나님께서 품으시는 질투는 정당한 질투임.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것이 질투임. 유다는 주님이 택한 백성의 일부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셨고, 모세에게 언약을 주셨으며,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새로 마련해 주셨음. 이후에 다윗과 솔로몬을 지도자로 세우셨음.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임. 여호와께서 이러한 배타적인 관계에 대해 질투하시는 것은 성격상의 결함이 아님. 도리어 질투는 하나님의 공의, 관심, 언약에 대한 신실함의 중요성을 부각시킴. 이처럼 정당한 보호가 아닌 부류들은 우상숭배나 음탕함 같은 파괴적인 행동에 대한 경솔한 태도를 나타낸다고 할 것.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을 비교하자면, 여로보암의 종교는 여호와 신앙의 요소와 가나안 땅의 우상을 섞었음. 그러나 유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나안 사람의 종교를 채택함. 있는 그대로 가져온 것. 설령 모세 율법과 언약을 따른 예배가 행해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충격은 가라앉지 않음. 백성들은 산당 외에도 성스러운 돌과 아세라 상을 숭배했음.
스네이스라는 구약학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함.
신전 안에는 매춘을 하며 신을 섬기는 남자와 여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풍습은 페니키아 종교 집단과 그 영향을 받은 숭배 집단에서는 어디에서나 흔히 행해지고 있었다. 그 풍습은 가나안 종교의 특징이었고 초기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모세 시대부터 르호보암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에는 세 부류의 예배가 존재했음. 첫째, 모세 언약에 계시된 바와 같은 유일신론적인 여호와 신앙.
둘째, 여로보암의 혼합주의적, 반 예루살렘 종교.
셋째, 가나안 땅에 존재했던 우상숭배를 따르는 것.
브라이트라는 구약학자는 솔로몬 생애 후반부에 솔로몬과 동맹을 맺은 애굽의 21대 왕조는 22대 왕조를 세운 리비아 귀족인 시삭에 의해 전복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애굽의 우호 관계는 끝났음. 시삭은 아시아에서 애굽 세력을 재건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솔로몬을 약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여로보암을 지원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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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 500 (로고스)
① 유다 왕 르호보암의 통치(왕상 14:21–31)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는 41세였고, 17년 동안(주전 930–913) 통치했다. 특히 저자는 그가 통치한 나라를 설명하면서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왕상 14:21)이라고 했다. 이 표현은 신명기적인 특징으로(신 12:5, 11, 21; 14:23; 16:6; 왕상 8:16; 대하 12:13; 시 132:13 등), 신명기의 핵심 사상인 언약을 준수해야 개인의 미래와 국가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유다 왕들을 소개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머니의 이름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르호보암의 어머니를 ‘나아마요 암몬 사람’(왕상 14:21)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신앙적인 영향을 누구에게 받았느냐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르호보암의 통치의 특징을 신명기 언약에 근거하여 판단하기를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왕상 14:22)라고 하면서 그 악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두었고, 남색하는 자도 있었다”(왕상 14:23–24)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남색하는 자’는 히브리어로 ‘카데이쉬’(קָדֵשׁ)인데, 열왕기상 15:12에서는 복수로 사용했다. 이 단어는 ‘거룩’을 의미하는 ‘코데쉬’(קֹדֶשׁ)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언어유희(word play)로 동일 어근이나 유사발음을 사용하여 원래 용법과 다르게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한다. 언약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남색하는 자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르호보암 5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 예루살렘을 쳤다(왕상 14:25). 이 일로 말미암아 르호보암은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겼고, 특히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들)도 빼앗겼다. 그래서 그는 금 방패 대신 놋으로 만든 방패를 만들었다(왕상 15:27–28). 이는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 이 사건의 원인은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다. 역대기에 선지자 스마야를 통하여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여호와를 버리므로 여호와께서도 유다를 버려 시삭의 손에 넘겼다고 말했다(대하 12:5). 이 일로 말미암아 일시적이긴 하지만 유다가 여호와께 겸비하여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도 했다(대하 12:7, 12).
솔로몬의 죽음에 대한 기록(왕상 11:41–43)이후에 유다 왕으로는 처음으로 왕의 통치 행위에 대한 축약된 형식적 문구가 나타난다(왕상 14:29–31). 저자는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하면서도, 북 왕국과 계속하여 전쟁을 했다는 사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르호보암을 대신하여 왕이 된 사람은 그의 아들 ‘아비얌’이다(왕상 14:31; 15:1, 7, 8). 역대기에서는 그의 이름이 ‘아비야’로 나타나 있다(대하 12:16; 13:1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