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5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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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음

여러분~ 오늘도 함께 모여서 말씀을 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난 9월부터 해서 계속 열왕기상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성경의 특징이라고 하면, 이 내용이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성경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 당연히 어떤 이야기들이 담기겠어요? 왕들 중심의 이야기들이 담기게 됩니다. 인물 중심으로 말씀이 이어진다는 거에요.
우리가 열왕기상을 시작하면서 여러 인물들을 보았는데, 처음은 다윗과 솔로몬을 보았죠. 그리고 지난주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죠? 바로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이라는 인물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여로보암 왕을 중심으로 보았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열왕기상 성경을 보는 동안에는 이렇게 인물 중심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질 거에요. 그러면 당연히 오늘도 인물 중심으로 보겠죠?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인물은 바로 아사 왕입니다.
지난주에 북이스라엘을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남유다 왕국의 왕을 볼텐데요, 과연 이 아사 왕이라는 사람은 어떠한 통치를 했는지, 또한 그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사 왕은요, 남유다의 3대 왕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잠시 살펴보았던 르호보암 왕이 1대구요, 그 이후에 2대 아비야 왕 이후로 나타난 왕이 바로 오늘 볼 아사 왕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왕을 평가할 때에는 그 말씀의 초반부에 바로 그 내용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아사왕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바로 11절에 등장합니다.
뭐라고 하죠?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라고 말합니다.
지난번 북이스라엘의 왕을 평가할 때 여로보암을 기준으로 평가했던 것처럼, 남유다의 왕들은 다윗으로 그 기준을 삼아 평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사 왕은 어떤 평가를 받았죠?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사 왕이 무엇을 했길래 그런 평가를 받았을까요? 이후의 말씀에 등장합니다.
12절에 등장하듯이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모든 우상을 없앱니다.
여기서의 남색은 바로 동성애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를 향해 잘못된 욕망을 품는 것이죠.
이 부분을 보면 동성애라는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알 수 있겠죠. 하나님은 이에 대해 분명히 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레위기 20:13 NKRV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지만 당시 이러한 죄악을 문제삼지 않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고대 그리스만 하더라도 귀족들이 어린 미소년과 함께 지내고 하는 경우들도 많았던 것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아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러한 죄악을 분명히 끊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일을 했죠? 우상을 없애버리죠.
솔로몬 이후로 많은 이방의 문화들이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로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 땅에도 많은 우상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과 아비야 때에도 이러한 우상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합니다.
솔로몬 때부터 이러한 우상들을 죄로 여기기보다는 그냥 두고 즐겼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된 문화는 그 자손들에게도 그대로 남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자신의 조상들이 만들고 즐겼던 그 이방의 우상마저도 없애버립니다.
심지어는 어떤 일까지 하냐면, 13절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어머니인 마아가가 아세라 상을 만드는 일을 하니까, 태후의 자리에서 쫓아내버리기까지 합니다.
사실 이 말씀에 등장하는 아세라 상은 바알과 아스다롯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죄의 유혹에 빠지도록 한 우상들입니다.
이 신들은 이 가나안 지역에서 숭배를 받던 지역의 우상이었습니다. 주로 농사와 풍요, 그리고 출생과 관련된 신들이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이들을 섬기는 예배의 형태가 남녀 간의 관계를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 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가나안 지역에서 처음 농사를 하게 되었을 때, 가나안 백성들이 뭐라고 한거에요? 농사가 잘 되려면 우리가 지금 하던대로 이 신들을 섬겨야 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우상을 전파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염려하셔서 모든 가나안 민족들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지만, 결국 백성들은 그 말씀을 지키지 못했고, 이러한 우상들이 판치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우상이 오랜 시간을 지나 아사의 시대까지 넘어왔고, 심지어 왕의 가족들에게까지도 그 우상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사는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 우상들을 다 찍어 시냇가에서 불사르게 되죠.
하지만 말씀에서 한가지 행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바로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는 것이죠.
산당은 방금 나온 우상들을 예배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예배하기 위한 장소를 오직 성전으로 한정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산당은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죠.
하지만 아사는 이러한 산당을 없애지는 않았죠. 그럼에도 성경에서 아사의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했다는 것을 보면, 그가 행했던 모든 일들이 그저 겉치레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행한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5절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신이 성별한 금과 은, 그리고 그릇들을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기까지 합니다.
이런 것만 보아도 아사의 마음이 정말 하나님 앞에 온전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따르고자 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16절 부터는 또 다른 인물과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스라엘 왕 바아사입니다.
이름은 서로 비슷하지만, 이 아사와 바아사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16절에서 일생동안 전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할 정도였죠.
그런데 17절을 보면, 그 바아사가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 라마 성을 건축합니다.
라마라는 지역은 어디냐면,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렇게 있으면, 예루살렘의 바로 근처에 있는 도시였어요.
그래서 그 지역을 막고 아사 왕이 그 근처의 지역들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죠.
아사 왕으로서는 그 상황이 정말 좋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그 성이 완성된다면 유다 왕국으로서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러자 아사는 어떤 판단을 하냐면, 이방 나라를 사용합니다. 흔히 말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쓴 것이죠.
이 아람 나라는 북이스라엘 위쪽에 있던 나라인데요, 그 나라에게 연락을 하여 북이스라엘을 공격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백도어 공격, 빈집털이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뢰를 위해 아사 왕은 성전과 왕궁에 있던 수많은 은금들을 모두 가져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냅니다.
벤하닷 왕으로서는 손해될 것이 없겠죠. 잠시 군사 일으켜서 공격만 해주면 많은 재물이 자신에게 오는 것이니까요.
벤하닷은 아사 왕의 요청대로 해주었고, 바아사는 그 소식을 듣고 라마 건축을 중단한 채 다시 북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그 모든 재료들을 챙겨서 그 근처에 게바와 미스바 성읍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3절에서 말씀은 아사 왕이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고, 24절에서 죽었다는 것으로 아사 왕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보면, 아사 왕은 어떤 왕인 것 같나요? 매우 훌륭한 왕이고, 칭찬받은 왕이고, 전략적인 감각도 꽤나 괜찮은, 나라를 구한 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사 왕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성경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로 같은 시기를 기록한 다른 성경인 역대기 성경입니다.
역대하 16:1–6 NKRV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들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지라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운반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여기를 보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과 동일한 내용이라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런데 역대하에서는 그 뒷이야기가 더 등장합니다.
역대하 16:7–10 NKRV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오늘 열왕기 말씀을 통해서 보았던 아사의 모습과 뭔가 조금 다른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니에게 꾸중을 듣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하나니를 가두고 백성들을 학대하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보았던 좋은 왕 아사의 모습은 아니죠.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기록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기록 연대가 포로귀환 이전과 포로귀환 이후라는 것에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열왕기상의 기록자가 일부러 그 부분을 감출 가능성도 있겠지만, 정확한 것은 아마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사 역시도 결국에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칭찬받은 그러한 왕이었다고 우리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사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살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사 왕은 오늘 말씀에서 두가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유다 왕국의 신앙을 개혁하고 다시금 하나님 말씀대로 향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어땠죠? 북이스라엘의 공격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방 민족의 군대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사의 입장에서는 지혜로운 판단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실제로 그 전략이 성공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아사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실책을 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던 은금을 다 이방 왕에게 보내버린 것이죠.
우리가 읽지 않았던 역대하 말씀을 보면 앞부분에 아사 왕의 전투장면에 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 당시 아사 왕은 상대했던 이방 민족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그들을 무찌른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것을 경험했던 아사 왕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러한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잘못된 판단을 행한 것입니다.
아사는 왜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일까요? 바로 그에게 두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사 왕은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상을 불태우고, 동성애를 하는 이들을 쫓아내는 등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만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 즉 외교와 군사의 측면에서는 말씀과 믿음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 외적인 부분에서는 말씀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아마도 그의 오랜 왕으로서의 통치 기간동안, 다른 나라의 왕들을 통해, 그들이 행하는 것들을 보면서 그러한 마음들이 생겼을 수 있겠죠.
결국 아사는 그의 말년에 잘못된 선택으로 성전의 은금을 잃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견자를 가두고, 백성을 학대하는 일들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그의 육신을 괴롭혔던 발의 병 또한 이러한 아사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도 됩니다.
이러한 아사의 모습처럼, 우리 가운데에도 이와 같은 두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과 관련해서는 정말 그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고 살아가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들이 있다는 것이죠.
어떤 모습들이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으로는 선데이 크리스챤의 모습일 수 있겠죠. 주일날에는 정말 신실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하루만 지나면 그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한명의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그러한 유혹이 많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상시에는 주님을 찾지 않다가, 시험때만 되면 좀 도와달라고 주님을 찾는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겠죠.
그러한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은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느 순간에서건 말씀이 우리의 우선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그러한 마음이 우리 가운데 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나누고 할 때에는 말씀대로 살아야겠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는 달라! 가장 최적의 효율을 찾고 가장 경제적인 것을 선택해야지! 라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어떤 순간에서든 주님의 말씀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그 선택이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면 마땅히 주님을 위해 그러한 선택을 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우리 친구들 중에 편치 않은 마음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내일 시험때 좋은 점수 구하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죠.
물론 시험 점수 좋게 받으려고 갑자기 주님 찾고 이런 모습들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바로 오늘 말씀의 아사가 어떤 평가를 받았느냐입니다.
아사는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분명 좋지 않은 행동들을 하나님 앞에서 범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인 열왕기상에서도, 그리고 그의 악한 행동을 기록한 역대하에서도,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옳은 왕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야기겠어요? 하나님은 그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기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로 적용하자면,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라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여기시고 우리와 함께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갑자기 내일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들어주시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마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그 순간뿐만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순간 하나님과 함께하는, 말씀을 따라 한마음을 품고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할게요. 오늘 유다 왕 아사의 삶을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은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이라는 것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모든 순간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나아가 그 모습을 통해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든 하늘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내 한가지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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