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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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예화]
[버가모 배경]
버가모 도시는 당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도시”라고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헬라 문명의 화려한 꽃”이라고 불렸기 때문입니다. 은광, 가축, 양털 직조, 그리고 글씨 쓰는 양피지 등을 생산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병원, 세계 최초로 양피지를 개발, 지식의 진보를 이루는 이십만 권이 넘는 도서관을 자랑하는 곳이 버가모 도시였습니다.
버가모 도시는 종교적으로도 열심이 뛰어난 도시였습니다. 로마의 통치자를 위해 신전을 건립한 최초의 도시였고, 황제 숭배를 수행하는 전 지역의 대표격인 도시였습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제우스, 아테나, 디오니소스, 아스클레피오스 등 신을 섬겼습니다. 또한 버가모 사람들은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전쟁의 승리는 그리스 신들로 부터 온다는 믿음이 있었고, 또한 승리를 할 때 마다 그리스 신들에게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버가모 제단”이 세워진 것입니다. 버가모 제단은 우리가 오늘 성경에 살펴본 13절에 “사탄의 권좌”로 불리우는 곳입니다
이처럼 문명이 화려한 도시와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 속에서 당시 버가모 교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 가운데 교묘히 타협하게 만드는 세상 문화 속에 젖어들 것이냐,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으로 살 것이냐에 관한 기로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우리의 목숨을 대놓고 위협하거나, 다른 신에게 절하며 우상숭배를 하는 환경속에 놓여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타협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서 사탄은 우리를 더 교묘하게 우상숭배하는 위치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예전과 같이 예수를 믿는 것에 있어서 생과 사가 걸린 문제라면, 오히려 우리가 지켜야 하는 신앙은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없이 살이 썪어 떨어져 나가는 문둔병”과 같이 우리를 서서히 고통없이 썩게 만드는 우상숭배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문명 버가모와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이 ’안정감’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과 같이 믿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말고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해서 승리라고 말하는 것이지 내 인생을 빛내주고 안정감을 얻는 모든 것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먼저 12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할 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좌우의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버가모 교회의 배경을 좀 더 살펴봐야 합니다.
당시의 시형집행권은 로마정부만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로부터 재판권과 사형집행권을 위탁 받았고, 그것에 대한 상징성은 가장 큰 권력인 “죽음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상징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본인이 “좌우의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소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을 저울에 달아 재판하고, 목숨을 왔다 갔다 하는 역할은 세상이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고 재판하시는 심판의 역할 하시는 분은 오직 나 그리스도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검의 권세로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칭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소개하시는 것에 이어서 버가모 교회를 칭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같이 13절 말씀 읽겠습니다.
계2:13
요한계시록 2:13 NKRV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라는 인물이 언급됩니다. 요한계시록 순교자 가운데 유일하게 언급된 이름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를 넘어뜨리고, 거센 핍박을 통해 공격해 옵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세상의 신들을 섬기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증인”으로써,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디바는 먼저 끝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잡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세상의 요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에수님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안디바는 죽임을 당할 때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면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부정하며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 같아 보여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을 붙잡았다는 것일 말씀합니다.
순교자 안디바는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실패한 인생 아닙니까? 한 발은 세상에 걸치고 한 발은 하나님께 걸치면서 어느 정도 타협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당시 세상의 사람들은 다들 섬기는 신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옷장안에 본인들이 섬기는 신상이 있는데, 로마에서 황제에게 경배하라고 명령하니, 내가 믿는 신도 섬기고, 로마 황제에게 숭배도 하면서 타협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적당히 하나님 눈치도 좀 보고, 적당히 세상 사람들 눈치도 좀 보고, 타협하면서 살면 얼마나 편안하고 쉽겠습니까?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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