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하고 사랑하라(골 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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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하고 사랑하라 (골 3:18-19)
<서론>
『아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거짓말 best3』
1등, ‘이거 싸게 주고 산 거야’
2등, ‘화 안 낼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봐’
3등, ‘돈 안 벌어도 돼. 건강만 해’
남편들은 아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비싸게 주고 물건을 샀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솔직하면 더 혼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돈 안 벌어오는 남편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남편이든 다 압니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알지만 적당히 모른척하고 마음에 안 들지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에 참 쉬울 것 같기도 하지만 결코 쉽지 않는 것이 부부관계입니다.
흔히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칼과 칼이 부딪혀 불꽃이 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새 사람이 된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부부관계는 무엇일까요?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오늘 강론이 낯설 수 도 있습니다. 최소 20년 이상 결혼생활하신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머...」 하실 수 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말하는 부관계의 원리에 귀 기울여야만합니다.
새사람을 입은 성도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에 다루었던 바울은, 이제 가정 안에서 지켜져야 할 삶의 원리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론>
1.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18).
먼저, 새 사람이 된 우리가 성경적인 부부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18)
18절은 성경적 부부관계를 세워가기 위한 원칙으로 「복종」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만,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표현은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아내들에게 굴욕적인 단어 “복종”을 강요하시는 것일까요?
그러나 “복종”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나면, 복종이 결코 굴욕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종한다’「휘포탓소」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은 위치에 둔다.」는 의미로서,
스스로,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 아래로 자신을 숙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상대방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임에도, 스스로 낮은 위치에 있으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복종하셨듯이, 아내도 남편과 동등하지만 하나님이 부여하신 질서를 위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종’이라는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절에 나오는 ‘순종’이라는 말과 비교하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두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순종’「휘파쿠오」는 ‘~아래에서 말을 듣다’라는 의미로서 다소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순종’은 ‘문지기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가서 그가 누구인가를 확인하여 문을 열며 영접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문 두드린 자가 누구이고 왜 문을 두드렸는지를 문지기가 알아내듯이 ‘상전의 말에 귀 기울여 듣고 따르는 자세’입니다.
골로새서 3:20, 22절은 자녀는 부모에게, 종은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순종’의 의미에 따라 해석하면, 자녀와 종은 부모와 주인의 음성을 듣기 위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내에게 ‘순종하라’가 아닌 ‘복종하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창조의 질서 상 남편이 머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후나 주종을 따지는 관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가 남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성경이 제시하는 부부관계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그가 혼자 지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창 2:18).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다 좋아 보였지만,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했다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 하나님의 눈에 좋지 않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로운 남자를 돕는 배필로 여자;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창조의 순서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에 여자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창조의 질서와 목적』을 기억할 필요는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남자 곧 남편을 한 가정의 리더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대표로서 남편의 권위와 질서에 아내들이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에 남편들이 너무 의기양양해 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남편이 무엇을 해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에베소서 5:22에서는 “주께 하듯” 라는 전제를 말합니다.
주 안에서 마땅한 일들에 대해서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는 것을 요구하면, 아내는 남편의 요구를 정중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내의 궁극적인 머리는 남편이 아니라 남편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아내의 의무를 다하는 중에도, 우리 부부관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 여러분, ‘주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성경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차적인 뜻이며, 또한 아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남편과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고, 그리고 주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합니다(19).
두 번째, 새 사람이 된 우리가 성경적인 부부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합니다.」
본문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19a)라고 당부합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애 낳아 키우고, 심지어 밖에 나가 돈까지 벌어다 주는 아내를, 남편은 당연히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세대는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40대 이상의 세대는 여전히 아내에게 가사노동, 육아, 직장생활까지 요구하는 것에 대해 별로 죄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여자니까, 아내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기록되었던 2000년 전 로마사회에서,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은 엄청나게 파격적인 것입니다.
그 당시에 부부관계를 말하는 그 어떤 규율에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있다면, ‘어떤 결격 사유가 아닌 이상 아내를 내쫓지 않아야 한다.’는 정도였을 뿐입니다.
그 시대의 여자들은 남성중심 사회의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서구 사회에 그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결혼한 여자들은 성을 바꾸는 풍습입니다.
그런 사회였으니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의 요청은 당시 남자들에게 아주 많이 어색했습니다.
더구나 본문이 말하는 남편들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ἀγαπάω」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기까지 하면서 아내를 배려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희생적이고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 여러분, 아내 사랑하기를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아내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남편들에게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19b)고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괴롭게 한다’는 것은 ‘쓴 맛이 나게 한다’ ‘쓰라리게 한다’ ‘화나게 한다’는 의미로 ‘아내의 가슴에 쓴 뿌리가 나게 하는 것’이고, ‘아내를 거칠고 비열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은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남편의 권위를 내세워,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권위가 이기적이고 무모하게 행사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내의 관심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남편들을 비하하는 유머들이 있습니다.
한 끼도 안 먹는 남편 - 사랑스런 영식씨 한 끼 먹는 남편- 귀여운 일식씨
두 끼 먹는 남편- 그냥 두식씨 세 끼 먹는 남편- 삼식이
세 끼 먹고 거기에 간식 먹는 남편- 종간나쉐끼
남편여러분, 좀 씁쓸하죠? 이렇게 남편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눈치만 보는 것 같던 남편이 어느 날 성난 사자로 돌변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가 빠진 호랑이인 줄 알았더니 날카로운 발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예전의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아내들은 또 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단련된 것 같았는데 아직도 남편의 큰 소리에 왠지 움츠러드는 것이 아내들입니다.
그러므로, 남편 여러분, 이 시간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존심 때문에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아내를 몰아 부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겉으로는 큰 소리 치면서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비겁하게 아내 뒤로 숨어버리거나 아내에게 떠넘겨 버린 경우도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과 아내 앞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아내만을 사랑하기로, 아내의 가슴에 쓴 뿌리가 생겨나지 않게 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아내의 가슴을 괴로움이 아니라 참된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성경적 남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 여러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
얼추 보면, 우리들이 한 번씩 이야기하는 ‘아내를 왕비로 여기면 남편은 왕이 되고 아내를 종으로 여기면 남편은 머슴이 된다’는 말이 연상됩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22:39)고 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부부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아내를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남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아내를 사랑하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않아서 행복한 성경적 부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적 부부관계는 ‘서로 복종하고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부부관계의 기초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강론에서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라는 문패를 걸고 사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평강, 그리스도의 말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라고 나눴습니다.
부부관계도 그리스도 중심 이어야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내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되어 질 때, 그리스도의 복종을 닮아 서로 복종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복종하고 사랑하는 관계의 중심에, 아내와 남편 모두의 구원자 되시며, 아내와 남편 모두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여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