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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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 본문을 11절 부터 읽었지만 1절부터 오늘 본문까지 함께 살펴 보려고 합니다.
사사들 가운데 기드온을 생각 하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양털 뭉치을 통해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던 모습과
300명의 용사를 모아 전쟁에서 승리한 모습이 생각 납니다.
기드온 이야기는 사사기의 중심에 기록되어 있고, 가장 많은 분량의 이야기가
기드온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통해 기드온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을 중심으로 사사들의 모습도 이스라엘의 타락의 정도도 기드온을 기점으로
변화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드보라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는 40년 동안 평안 했다고 기록합니다.
드보라가 죽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십니다.
미디안의 압제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고 살기 편한 평지를 떠나 산으로 숨어 들어 갑니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 굴을 파고 바위틈으로 들어가 숨어 지내며
미디안과 아말렉 사람들의 압제를 피하고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야 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힘든 생활을 했는지
먹을 것이 남지도 않고 , 양이나 소나 나귀도 모두 빼앗기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미디안과 아말렉 사람들을 표현하면서 메뚜기 때와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종종 미디어를 통해 중동아시아나, 중국에 메뚜기 때가 창궐하면 그곳에
모든 풀이 사라져 버리고 황폐하게 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 수가 많고, 그들이 몰려와 지나 간 곳은 파종된 새싹도 들에 풀도, 가축도 , 모든것을
싹쓸어 가버리는 것입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극도로 궁핍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궁핍함이라고 한다면 단지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피폐해 지고 이스라엘의 나라 자체가 쇠약해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통받는 이스라엘에게 예언자를 보내신다.
고통받는 이스라엘에게 예언자를 보내신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은 그 고통과 아픔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사사기를 통해 이 부르짖음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회개나
하나님앞에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는 행위라기 보다. 압제의 고통으로 인해 울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라고 보시면 이해하기 편할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울고 있는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들의 십니다. 그리고 이전에 이야기와 다르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를 먼저 보내주시는게 아닌예언자를 먼저 보내시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왜 보내셨을까? 생각해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어려움을 격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이야기 해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자신들이 이런 고통과 어려움을 격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이해 할 수도 없었습니다.
후에 살펴 보지만 기드온 조차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 예언자를 택해 다시한번 하나님의 행하신과 약속하심을 기억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가고 있는 방향을 바로 잡아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방향과 길을 잘가고 있는지 알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에게 뭍는 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집트를 떠나 출애굽을 하였는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가나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예언자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젖과 꿀이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오게 하신 분이 누구신지 알아야 했습니다.
바알도 아니요 아스다롯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복주시고 상주실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복주시고 은혜 주실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실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 주실 분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분이 누구신지 알아야 했고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되려 가나안 민족들이 믿는 신을 두려워 했고, 미디안과 아말렉 사람들의 압제를 두려워 했습니다. 가난을 두려워 했고, 먹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이방인들의 폭압에 죽음을 두려워 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단순이 그들에게 겁을 먹고 두려워 하는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을 경외하고 섬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모리 사람들이 믿는 신을 두려워 말라고 하신 말씀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어렵고 힘든일 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운 일이 생기면 모든 방법을 찾아 나서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통해 이겨내려는 시도는 없어 보이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때가 있습니다.
부처님도 찾아가보고, 신령님도 찾아가보고, 의사도 찾아가보고, 심리치료사도 찾아가보고, 주식 전문가도 찾아가보고, 다 찾아가 보는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매달리지 않는 점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만나 주신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만나 주신다.
기드온의 현실 적인 모습
기드온의 현실 적인 모습
11절에 여호와의 천사가 아비에젤의 후손 요아스의 성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믿에 와서 앉았다고 말합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그 곳에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밀 이삭을 포도주틀에서 떨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기드온의 모습 속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두려워하고 무서워 하는 모습 입니다. 12절을 보면이런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말합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 이삭을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 부르시고, 힘이센 장사라고 불러 주신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이렇게 읽어 보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야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큰 용사여 라고 읽으시면 왜 기드온이 큰 용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 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내 상황과 현실은 전혀 아닌데 교회에서는 너는 할수 있어 너는 잘 될꺼야, 우리는 승리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근거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 합시다.
당신은 큰 용사 입니까?
기드온이 큰 용사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큰 용사 기드온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큰 용사 기드온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당신은 큰 용사 입니다. 라고 말했을때 우리 마음속에 들었던 생각이 무엇입니까? 옆에 있는 지체들을 바라보면서 큰 용사라고 말했을떄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기드온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똑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미디안에게 줘 터지고, 아말렉에게 줘 터지고, 다 빼앗기고 죽을까봐 숨어서 밀을 털고 있는데 나보고 큰 용사라고요,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무런 힘도 없고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13절에 야훼의 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지금 모든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설명좀 해주시겠습니까? 우리를 애굽(이집트) 에서 나와서 선조들에게는 온갖 기적을 행하시는데 지금 그 기적,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미디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속에 들어왔다 나간거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왜 이렇게 고통습럽나?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셨다.
저도 같습니다. 어려움이 있을때 하나님꼐서는 그렇게 능력이 있으신데 왜 나에게는 그런 기적과 이적이 나타 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 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릴 때가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느낌과 감정과 생각은 이렇게 하나님을 부정하고 떠나게 만들때가 있습니다.
의인의 고난도 있겠지만,
기드온의 둔감함
기드온의 둔감함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6장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4절을 보시면
13절에 하나님을 향한 기드온의 불순한 질문에 하나님의 사자는 설명을 하지 않고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는 말만 하십니다. 기드온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예언자를 통해 설명했지만 기드온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설명에도 사람들은 전혀 듣거나 생각하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 보는 것이 더 빠른 답을 찾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이스라엘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러 가거라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보내 십니다.
너의 힘으로 라는 말은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기드온에게 임한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 하시겠다 약속 하셨고 그것을 지키실 것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6장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5절과 15절을 보시겠습니다.
자신의 집안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아무런 능력도 힘도, 용기도 없는 하찮은 인생인데 내가 큰 용사라고 하시는 겁니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입니다.
기드온은 자신은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를 조금 살펴보면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지역에 사는 유지 였고, 기드온 곁에 목숨을 걸고 싸울만한 사람이 10명 이상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혼자 단검을 들고 에글론왕을 죽였던, 에훗에과 아낙자손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옷니엘을 본다면, 기드온 자체가 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불신으로 가득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드온의 믿음이 없는 질문에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시고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과 아말렉 족속의 손에 넘겨 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압제와 고통속에서 지내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의사는 우리의 병을 진단 합니다. 그리고 그 진단의 결과는 치료에 목적이 있지 환자의 자잘못을 따지기 위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압제와 고통이 그들에게 왜 있는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안에서 고난과 고통이 왜 찾아 오는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면 그분은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평안케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의 고통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기 때문 아니냐?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이렇게 된것이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함으로 고통을 받았었다.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분입니다. 성경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성령 하나님은 끝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 어렵게 생각 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