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5주일예배_렘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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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의 진실과 대면하는 삶 본문: 예레미야 1:4-10
예레미야 1:4–10 NKRV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구약성서에는 대예언자로 불리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 그들입니다. 방대한 예언서 기록을 남겼고, 그런 만큼 그 활동의 족적이 뚜렷한 세 예언자입니다. 비단 이 세 예언자들뿐 아니라 어떤 예언자의 메시지도 소홀히 될 수 없지만, 예언자들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예언자를 꼽는다면 예레미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세 예언자들만 두고 말한다면, 이사야는 현란한 신학적 거장의 면모를 지니고 있고, 에스겔은 강렬한 희망의 선포로 두드러진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예레미야는 스스로 가장 극적인 고난의 삶을 살았고 그 메시지 또한 한 없이 깊은 의미를 갖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혼탁한 세상, 역사의 격랑기(유다왕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에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자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는 예언자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상황을 전하는 본문입니다. 소위 예언자의 소명기사입니다. 모든 예언서들에는 그 첫머리에 소명기사가 나옵니다. 그것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 예언자들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로서 왕이나 종교 지도자로서 제사장이 세습으로 그 역할을 이어받는 것과는 달리 예언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으로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예언자들은 전적으로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러기에 예언자들은 그 출신이 다양합니다. 귀족, 제사장, 농부, 목자 등 다양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예레미야는 지배계층에서 배제된 제사장 가문 출신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가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된 말씀을 다시 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는 장면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태어나기도 전에” 예언자로 세웠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예언자로 운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깊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정황을 헤아려 보자면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여된 어떤 조건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첫머리는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의 제사장 출신인 힐기야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에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부여된 운명적 조건이 있습니다. 아나돗은 솔로몬 왕 때 파면당한 제사장 아비아달이 추방당한 곳입니다. 솔로몬 왕은 훗날 사두개파의 조상으로 알려진 사독을 아비아달 대신 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나돗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당한 곳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아비아달 제사장의 후손으로서 예레미야는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자신의 가문과 그 땅의 기풍을 체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예언은 항상 당시의 역사적 상황, 그리고 예언자 자신의 경험과 인격을 매개로 하고 있습니다. 아나돗의 몰락한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서 예레미야는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조상들이 처했던 그 상황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예언자로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깊다는 것을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언자 자신이 자각하기 이전의 역사적 유산이 그 자신에게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언자로서 삶의 무게감을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 언뜻 보기에 의외의 이 대답 태도에서, 마치 모세의 태도를 연상시킵니다. 모세가 어땠습니까? 이집트에서 억압받는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소명 앞에서 말이 어눌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내세웁니다.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제시해주니 더 이상 발뺌하지 못하고 모세는 마침내 그 소명을 받아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어떻습니까? 말도 못하고 어리기 때문에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어리다는 것은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이기보다는 어리석다는 의미로 새기는 것이 적절합니다. 참 이상한 장면입니다. 예언자는 점쟁이가 아니라 대변인을 뜻하는데, 대변인이라면 당연히 말 잘하는 사람이 맡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대변인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 말을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상황은 확실히 의외의 사태입니다. 모세에게서, 그리고 예레미야에게서 나타난 이 현상은 사실 예수님에게서도 나타납니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인상은 항상 확신에 차 있는 이미지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예상하고 “잔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일관된 태도에서, 저는 중요한 진실을 확인합니다. 겸손, 겸양? 그렇게 이해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자신이 감당하고자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취할 수밖에 없는 태도입니다.
물론 선뜻 응한 예언자들은 뭘 모르는 사람들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고 그 나름의 정황이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언자예레미야처럼 이렇게 마치 발뺌을 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는, ‘내가 감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점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역사적 무게감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정말 큰 일을 낼 수 있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함께 하며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똑똑히 보아라. 오늘 내가 뭇 민족과 나라들 위에 너를 세우고, 네가 그것들을 뽑으며 허물며, 멸망시키며 파괴하며, 세우며 심게 하겠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아예 당신의 말을 예언자의 입에 맡기고 계십니다. 어떻든 예언자는 하나님을 대변해서 선포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아예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을 예언자의 입에 넣어 준다는 표현은, 이 예언자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태도, 하나님의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의 태도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온갖 말재주로 현란한 말들을 꾸미고 선포하는 것과 전혀 차원이 다른 태도를 말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예언자의 태도를 말합니다. 말의 위력이 어디에 있는지 일깨주는 말씀입니다. 말의 힘은 그 현란함에 있지 않고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음을 일깨주는 말씀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온갖 기인행각으로도 유명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말로써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표했습니다. 어눌한 말솜씨를 기인행각으로 보완한 것은 아닙니다. 삶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그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눌하다고 고백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말씀들을 선포했습니다. 때로는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절규하기도 했지만, 정말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새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 예언자의 소명체험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수없이 현란한 말들로 자신을 드러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오늘의 삶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비수와도 같은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신앙이 뭣 때문에 필요할까요? 신앙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 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은, 사람들 앞에서 말로써 선포하여 자기 몫을 감당하는 이들 뿐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삶의 태도를 일깨워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진실을 외면해야만 잘 살 수 있는 삶의 현실이기에,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삶이 그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면 저 그 길에서 도망가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래도 진실된 삶을 살겠다고, 그 진실 앞에 자신을 내 맡기겠다고 다시금 다짐하도록, 오늘 말씀은 우리를 일깨웁니다. 그 말씀의 진실을 마음 깊이 새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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