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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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요즘 선생님들이 검은 옷을 입고 국회에서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교사들의 안타까운 소식으로 그 동안 잠재해 있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현재의 법이 너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고 개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개정을 요구하는 아동 복지법이 제정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교에서 학생들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대우 받는다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아동 복지법으로 교사들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교사들이 다루어지고 있다고 교사들이 토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사들에게 공정하면, 학생들에게에 불공정하고, 학생들에게 공정하면, 교사들에게 불공정한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모든 권리와 이익을 공평에게 나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한 정된 재원을 가지고 서로 제로섬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 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분야, 조직 , 회사 등 모두 비슷하거나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결코 완전히 공평하게 파이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혜택이 되었을 때,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되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어느 경우에도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만족하게 공평하게 파이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전환문> 그렇다면 완벽한 공평은 있을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완벽한 공평은 있습니다. 다만, 그 완벽한 공평을 우리의 오늘의 삶에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공평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2. 완벽한 공평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48장을 보면, 열두 지파에게 땅을 배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땅 배분의 원칙은 “공평"입니다. 47장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Ezekiel 47:14 NKRV
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이 공평의 원칙에 따라 땅이 배분됩니다. 48장에서는 공평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로 표현합니다.
1절 부터 7절까지 보면, 모두 “동쪽에서 서쪽까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네모난 케이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케이크를 횡렬로 똑 같은 크기로 12개를 만들고 그 자른 케이크를 나누는 거와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호수아에서 12지파에게 땅을 배분 할 때는 이렇게 횡렬로 배분하지 않았습니다. 지파의 인구 수에 따라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차이가 나도록 배분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마지막 장에서는 회복되는 이스라엘은 똑 같이 공평하게 모든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줍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지난 주 설교에도 말씀 드렸지만, 에스겔의 마지막 섹션은 앞으로 이루어질 마지막 때의 모습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모든 지파 모든 성도들에게 공평하게 약속의 땅이 배분되어집니다. 즉,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그 곳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받을 선물과 몫은 차별이 없습니다. 동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차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100평짜리 아파트에 살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간신히 믿어 천국 가는 사람은 초가집에 살 것이라 말합니다. 틀렸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오직 공평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죽어서 천국가서, 초가집이 아니라 초호와 강변 뷰가 보이는 고급 아파트에 살 것을 기대하는 차별을 기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차별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차별 그 것이 이 땅의 법칙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시대에 땅이 배분 될 때 차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차별을 좋아합니다.
예전에 제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할 때, 필리핀 에어라인이 폐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한국 가는 비행기 표를 가진 사람들은 필리핀 에어라인 사무실에 가서 환불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환불을 받기 위해서 저와 몇몇 친구들은 마닐라의 마카티로 갔습니다. 줄이 엄청나게 길었습니다. 일 처리는 너무나도 느렸습니다. 아마 그 날 몇시간을 줄만 서다 올 수 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공평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차별을 원합니다. 누구보다 더 내가 먼저 환불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친구가 새치기를 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당당하고 과감하게 새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렀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특혜를 원하고 차별을 원했습니다. 지금은 그 친구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던 우리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우리는 줄을 서지 않고 신속하게 환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업무를 마치고, 공평하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옆을 걸어서 지나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나만의 특별한 혜택을 받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과 차별되어 특권을 누리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법입니다. 공평이 없는 세상, 차별과 특혜가 난무한 세상이 바로 이세상이고, 누구보다 더 많이 갖고, 누구보다 앞서고, 누구보다 잘 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공평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공평하게 환불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누군가가 특혜를 받아 줄을 서지 않고 유유히 환불 업무를 마치고 내 옆을 지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감정은 어떻습니까? 부럽죠. 부러움을 너머 질투합니다. 시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질투하고 시기하고 부러워 하는 모든 원인은 바로 이 땅의 원리가 공평이 아니라 차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평의 가치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리고 공평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삶의 원리는 차별입니다. 특혜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끊임없이 시기와 질투와 부러움과 자기 자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시기, 질투, 부러움, 자기 자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공평"이 원리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시기, 질투, 부러움, 자기자랑이 없는 그 공평한 하나님 나라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땅에서 “공평"을 실현하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이 땅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공평하게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그 공평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십시오. 공평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차별과 특혜와 시기와 질투와 자기자랑과 부러움을 버리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태도입니다.
<전환문>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의 공평의 가치를 우리의 악한 본성으로는 쉽게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어떻하면, 우리는 그 공평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어떻게 그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며 살 수 있을까요?

3.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 나라를 두십시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Ezekiel 48:8 NKRV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12지파에게 땅을 배분하는 가운데, 그 배분되는 땅 중앙에 “성소"가 자리합니다. 성소는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입니다. 그 성소는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그 거룩한 성소가 공평하게 땅을 배분하는 가운데, 그 배분된 땅의 중앙에 있습니다. 12시파 중 6 지파는 그 성소의 북쪽에 있고, 나머지 6시 지파는 성소의 남쪽에 있습니다. 성소는 12지파가 배분받는 바로 가운데 땅에 있습니다. 이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모든 성도들의 가운데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모든 성도의 삶이 한 가운데에 성소,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앙에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의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소를 우리 모든 삶의 중앙에 둘 때, 하나님도 거기 계십니다. 3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Ezekiel 48:35 NKRV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여호와 삼마, 뜻은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을 때 공평이 실현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배가 찬양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일상의 삶에 임하고, 하나님의 공평이 실현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한 가운데 무엇을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입니까? 이 땅의 부동산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까? 돈을 숭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까? 자기의 명예를 자랑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모토로 이 정부가 출범한지 어언 2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회의적이었는데, 제 주변의 몇몇 목사님들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면, 공정과 상식이 회복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열열히 지지했던 주변 지인들 조차도 공정과 상식이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정, 공평, 이 것은 이 땅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시기, 질투, 자기 자랑, 부러움 들만 이 땅에 계속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 공평한 세상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공평한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그 하나님 나라를 나의 오늘날의 삶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여호와 삼마를 내 삶 속에 모셔야 합니다.
예배가 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예배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복음의 은혜가 공평에 주어졌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기억이 그 예배가, 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서 공평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예배하는 그 하나님 나라 거기에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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