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7_믿음
Notes
Transcript
믿음
믿음
구원 서정에 있어서 중생이 하나님의 단동적인 일이라면, 예수를 믿음은 사람의 일이다(행16:31).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하는 동작인 믿음이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한다(엡2:8).
믿음의 신비는 “내가 믿지만, 믿음을 주셔야 믿을 수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믿음에 대한 오해
믿음에 대한 오해
믿음은 늘 오해에 노출되어 왔다. 교회사적으로 통일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제각각 다른 정의를 내리다보니 교회는 여러 전통으로 나뉘었고, 대립하게 되었다. 신자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 같은 신앙고백을 하지만, 각양각색의 이해로 혼란과 오해가 쌓인다. 그러나 믿음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로 구원의 삶을 바르게 세울 수 있다.
신자들의 오해
동의로서의 믿음
의지적 결단으로서 믿음
감성적 느낌으로서 믿음
소원으로서 믿음
전제에 대한 수용으로서 믿음
신비적 체험으로 인한 믿음
믿음의 정의
믿음의 정의
WCF는 믿음을 성령의 의해서 생성되며, 말씀과 그리스도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말씀에 관해선 “믿음이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고로 성경에 계시된 모든 것이 참되다고 믿는 것”이며, 그리스도에 관해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수납하고 그리스도 안에 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WCF는 동적인 의미,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동작’으로 믿음을 설명하고 있다.
개혁주의가 말하는 믿음의 세 요소(그리스도와 연합의 관점에서)
지식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하는 지식을 포함한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므로 구원지식이다.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내용은 복음이다.
믿음이란 복음의 사실적 진리를 아는 지식을 포함하며, 위 지식은 이성적으로 역사적 사실임을 아는 지식을 포함한다.
믿음은 이성의 활동을 포함한다. 이성은 구원 지식을 접수한다. 이성을 통해 접수되는 계시가 성령의 구원 작용을 통해 나를 구원하는 효과가 있는 구원지식이 된다. 구원에는 이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흔히 하는 오해 중 이성을 배제한 믿음을 좋은 믿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계시를 무시하고 이탈한 거짓 믿음이다.
동의
이성과 성령의 작용을 통해 접수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해 동의하고 수납하는 것을 말한다.
동의는 ‘아멘’이다. 제시된 지식(계시)이 참되다는 것과 그 내용이 내게 필요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의미한다.
지식과 동의는 연속적, 유기적으로 하나의 동일한 믿음을 이루는 요소이다. 지식이 없는 동의는 있을 수 없다.
동의는 지식에 대한 확신을 포함한다(cf. 히11:1, 39). 여기서 약속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약속이다. 선진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약속을 받지 못했고 보지 못했지만, 이미 받았고 보고 있는 것처럼 확신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확신을 믿음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동의는 의지와 감정의 반응을 수반할 수 있다.
신뢰
지식과 동의가 선행해도 신뢰가 없다면 믿음이 되지 못한다.
신뢰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그리스도께 맡긴다는 의미이다. 신뢰는 적극적인 동작이며, 그 동작의 대상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믿음의 동작이 완성된다.
신약에서 믿는다 πιστευω 동사는 목적어로 여격과 목적격/대격을 취한다. 이는 주어가 동사의 동작으로 대상에 집중하는 의미이다. 믿음은 대상을 알고, 대상을 아는 지식을 확신하고, 그 대상에 나를 맡기며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신뢰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되어 주시는 결속의 힘이다. 믿음이 인간의 일이기도 하지만, 성령에 의한 인간의 일이다.
믿음의 특성
믿음의 특성
믿음은 수동성이다.
믿음은 부르심의 결과이다. 주입된 성향이 아니다. 믿음은 성령의 내재로 인격적 교통을 통해 주어진다. 주입은 이를 비인격적 일방의 형태로 전락시키는 문제를 가진다.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믿는다. 그러나 믿는 주체는 나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믿음은 능동적이다.
선물로 주신 믿음을 행사하는 것은 사람이다. 믿음은 반드시 사람의 인격적 결단과 의지가 담긴 동작이다.
의지와 적극이 담기지만, 구원 자체에 대해서 아무런 기여나 공로가 없다.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붙잡는 대상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받기 때문이다. 믿음은 유일한 도구가 될 뿐이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믿음은 배타적이다.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닌 것은 모두 부인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붙잡는다.
믿음은 균형적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까지도 믿음을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해 포기한다면, 올바른 믿음이 아니다. 믿음에 기반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능동적으로 치우치면, 건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
믿음에 정도가 있긴 하나, 아무리 작아도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은 역사한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역사하는 힘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에 확신이 포함되긴 하나, 정도와 확신의 차이가 있을 순 있어도 참 신자는 믿음을 완전히 상실할 수 없기에 은혜의 방편을 부지런히 사용하여 믿음의 조성자이시고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확신에 도달해야 한다.
신약에서 믿음의 다른 표현
신약에서 믿음의 다른 표현
성령의 충만한 삶이 곧 믿음으로 사는 삶(엡5:18).
“충만을 받으라”: 현재시제 수동태 명령형
수동태: 성령이 나를 충만하게 하시는대로 내가 그렇게 된다는 뜻.
명령형: 충만이 성령의 동작이긴 하지만강압적으로 지배하시는 의미가 아니라는 의미.
현재시제: 성령이 우리 안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실 때,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성령의 사역이 나를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
“2인칭 복수”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고, 특정한 때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항상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
“충만”
신자가 이르러야 할 경지가 아니라 구원 받은 자들의 가장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을 의미.
∴ “성령으로 충만케 되라” = “믿음으로 살라”
“성령을 좇아 행하라 -> 성령으로 걸으라; 성령과 동행하라”(갈5:16)
현제 시제, 2인칭 복수 명령형
성령과 더불어 걷는 삶을 한 순간이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정상적인 모습.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롬1:17)
믿음과 행위의 관계
믿음과 행위의 관계
믿음과 행위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성경의 의도와 맞지 않다.
행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문제이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행위와 밖에서 하는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사람의 행위는 그리스도를 통해(구원받은 후) 하는 행위다. 그러나 밖이든 안이든 구원 받는 일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다. 공로가 되지 않는다.
행위가 공로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경륜에 의해서다. 행위언약이 작용하던 타락 전에는 행위가 영생에 근거가 되었지만, 타락 후로는 은혜언약이 작용되어 그리스도의 성취가 영생의 근거가 되었다. 은혜언약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믿음뿐이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 은혜 언약이고 하나님의 경륜이다.
오직 믿음으로 언약 안에 들어가고 언약이 들어온다. 어떤 의미로도 믿음 외에 다른 것(행위)이 방편 또는 조건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신약성경이 행함을 강조할 때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상태를 전제한다. 즉 구원 받은 자에게서 행함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믿음의 열매 즉 선한 행위가 따른다는 논리다. 그리스도를 붙잡는 믿음이기에 그 믿음은 행함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고 연합은 행함의 열매를 가져온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단회적이고 지속적이다. 단회적인 부분을 칭의, 지속적인 부분을 성화라고 부른다. 칭의와 성화 모두 연합의 결과이며, 의인은 믿음의 지속적 동작 그리스도 안에 머무름으로 살아간다(성화).
믿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믿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리스도만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은 성화(행위)라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