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63 views
Notes
Transcript
본문: 왕상 18:30-46
제목: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제 말씀에 이어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목숨을 건 대결이 등장합니다. 어제 말씀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바알에게 부르짖는 장면이 등장했고요. 오늘 말씀에서는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응답받은 기도가 어떤 기도였는지 알아보고, 이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직전 상황에 대해서 살펴볼텐데요. 열왕기상 18장 30절 말씀 보세요.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먼저 수축합니다. 여기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황폐해졌는가를 보여줍니다. 북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인 아합왕은 이와 같이 바알과 아세라에 대한 우상숭배에 있어서는 역사적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열왕기상 22장 말씀에 보면,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아람과 전쟁하기 전에 여호와의 선지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여쭙자고 제안하는데, 이때 바알과 아세라로 물들어있던 북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북이스라엘은 다원주의적인 종교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믿고 바알도 믿고 아세라도 믿고. 이 신도 믿고 저 신도 믿고. 많으면 많을수록 복도 많이 받으니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져있었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북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색채가 바알과 아세라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단이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어도 문제이겠습니다만, 무너진 제단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끔찍한 영적인 상태를 반영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서 31절 말씀 보세요.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데, 쌓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엘리야가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돌 열두 개를 취하는데요. 이 부분이 왜 독특합니까? 북이스라엘은 열 개의 지파로 구성되어 있고, 남유다는 두 개의 지파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과연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 단순한 실수로 돌 열두 개를 취한 것일까요? 네. 그럴 수 없죠. 엘리야는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돌 열두 개를 취했습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분열하면서 몇 지파씩 나누어졌는가, 북이스라엘의 현실이 어떠한가, 열 지파는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가. 이런 부분들을 떠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엘리야 선지자가 돌 열두 개를 취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제단을 쌓는데요. 32절 말씀 상반절을 보시면,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열두 지파였으니까, 열두 개의 돌을 취한 것이다.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엘리야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예배를 드릴 때에나 기도를 드릴 때에나, 자기 의를 세우고 자신의 공로를 덧입히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만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야 선지자가 열두 개의 돌을 선택하여 제단을 쌓고, 제사 드릴 준비를 다 마친 후에, 제단 위에 물을 세 번 붓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차도록 붓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등장해서 기도하는데요.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 내용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내용은, 여호와께서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하나님 살려주세요. 지금 불 안 떨어지면 저 죽습니다.” 이런 식으로 본인을 위해 기도한다거나, “하나님, 저 시건방진 우상숭배자들,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는 패역한 죄인들을 지금 당장 처벌해야 하니, 불을 내려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며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상황은 너무나도 급박한 상황이었으며, 숫적으로나 분위기로나 압도당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침착하게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주 하나님, 주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저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명예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에게 있어서 그는 본인의 목숨이나 백성의 심판을 위한 목적, 대의. 이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명예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이러한 엘리야 선지자의 믿음은 37절에서도 나타납니다.
37절 말씀 보세요.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야 선지자는 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짧은 기도이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저들로 알게 해달라는 간구는, 하나님을 향한 엘리야의 유별난 열정을 잘 나타냅니다.
이어서 두 번째 기도 내용은 엘리야가 여호와의 종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모든 일을 행한다는 사실을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선지자 직분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불을 내려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죠.
마지막 세 번째 기도 내용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 내용은 다소 어색해 보일 수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죠. 왜 그런가 하면,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사람에게 허락하신 자유 의지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함부로 좌지우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하늘에서 제단으로 불이 떨어짐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죠. 엘리야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간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의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 “회개하다”라는 동사는 “슈브” 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요. 원어적인 의미는 “돌아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분들이 회개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일종의 고해성사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회개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성경은 회개를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직접적인 행동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표현 자체가 “돌아서다”이기 때문에, 본인이 실수로 잘못했거나, 부지중에 잘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잘못한 행동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에는 “싸바브”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데요. 앞서 설명해 드렸듯이, 슈브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방향을 바꾸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돌아갈 때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우상숭배의 길을 갔고, 그들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불을 통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구약성경의 방식대로 회개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죄인이 이성적으로 본인의 죄를 깨닫고, 죄의 비참함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지 않고, 주님의 자녀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고, 그러한 죄를 짓지 않도록 결과적으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인데, 이 과정에는 죄인이 스스로 알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한다.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죄인의 마음을 돌이켜주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회개는 죄인이 스스로 결단하고 돌이키는 노력을 해야함이 마땅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일환으로, 마음을 돌이켜주시는 그 은혜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엘리야의 기도 세 가지 내용을 정리하면서 적용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엘리야의 기도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수많은 우상들 중에, 수많은 종교들 중에 한 자리 꿰차는 것이 하나님 되심을 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친숙한 불교나 천주교를 기독교와 동등한 종교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만약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바알과 아세라를 진짜 신처럼 숭배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도 구원받고 저렇게 해도 구원받는 거니까, 하나님도 믿고 부처님도 믿고, 바알도 믿고 아세라도 믿고. 다 믿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의 명예보다, 패역한 백성들에 대한 심판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장 먼저 드러나야 함을 기도로 나타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의 명예가 끝없이 실추되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수많은 소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엘리야와 같이 즉각적인 기도 응답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시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엘리야의 두 번째 기도 내용은, 엘리야의 선지자 직분에 대한 정당성 확보였습니다. 엘리야는 열왕기에 등장한 이름 없는 하나님의 종들과 동일하게 주로 혼자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도 없고,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도 없고,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 확실하고,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 것이 확실하지만, 겉으로 볼 때에는 볼품없고,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어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존재는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정체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의 모습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일단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영적인 역량에 비해 한참 아래에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사역을 감당했지만, 우상숭배의 참상이 엘리야 선지자를 코너로 몰고 갔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점에서 일단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온전히 살아내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기도 내용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불을 내려 달라고 엘리야는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와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의 목적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무엇 해 달라고 요청할 때, 요청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니까,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니까, 달라고 하면 무슨 맡겨놓은 것 돌려받듯이 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란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위해,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어떤 일을 하시는지 드러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이른 새벽에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신 것 참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왕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올려드리고, 또 기도 응답받으면 금상첨화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부디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를 올려드리시고, 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하시는, 모든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향한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 우리는 열왕기상 18장 말씀을 읽으며, 대한민국의 참담한 현실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온갖 탐심과 안목의 정욕에 휘둘리는 세상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폄하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이 세대를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한없이 크신 주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무지한 이 세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깨닫는 우리나라 되기를 원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의 마음을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고, 오늘 말씀에 기록되어있는 대로, 마음을 돌이켜 주시는 주님의 역사를 체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주님의 자녀들이 힘써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UBC (pp.208)
18:30 “그가...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이는 산당을 수리한 것을 가리킴. 열왕기 저자는 그런 지역 성소에서의 예배에 일반적으로 반대함(3:23). 그러나 우상숭배에 더욱 반대하며,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넘어간 맥락에서 엘리야가 그렇게 행한 것에 대해 우리가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를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음. 여호와 예배의 중앙화는 이상이지만(신 12장), 어떤 예배라도 여호와에 대한 예배는 바알 숭배보다 나음. 제단이 그 목적을 이루고 나면 여호와께서는 그 제단을 제거하심(38절).
이 본문에서 온 이스라엘이 열 개 지파가 아니라 열두 개의 지파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흥미로움. 이스라엘 정부의 양상과 관련된 현실 정치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이스라엘은 여전히 이스라엘임. 따라서 제단을 돌 열두 개로 만들고 물로 열두 번 흠뻑 적심.
📷
열왕기 주해 – 김진수 (pp.154)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노력이 무위로 끝나고, 엘리야 선지자가 나섬. 그는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음. 여호와의 제단이 무너졌다는 표현은 당시 여호와 신앙이 얼마나 황폐해진 상황이었는지를 보여줌.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한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제단의 건축을 넘어선 영적인 신앙의 재건을 향한 사전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음.
엘리야의 기도
엘리야는 짧은 기도문 속에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기를 두 번씩이나 간구함. 엘리야의 최대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명예였던 것. 엘리야는 과연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유별했던 사람(왕상 19:10, 14).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열심임.
엘리야가 기도한 후에 그는 즉각적으로 응답 받았음. 엘리야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셨기 때문. 하나님께는 관심을 끌기 위한 특별한 의식이나 행위가 필요하지 않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진실성이 담긴 기도만으로도 충분함.
가뭄의 끝
엘리야는 아합에게 “큰 비 소리가 있다”라고 말하였음(41절). 본문에 밝혀져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큰 비 소리”를 듣게 하셨던 것으로 판단됨. 하나님은 종종 선지자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바를 보고 듣게 하심(왕하 6:12, 14-17). 주목할만한 것은 엘리야가 “큰 비 소리”를 들었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사실. 그는 간절히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도응답의 증거가 나타나도록 일곱 번까지 기도하였음. 이는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라고 하더라도 기도는 반드시 필요함.
📷
김지찬(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 – 766)
18:30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가까이 나아오라고 말한 뒤에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였음. 이 제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헐었던 제단임. 엘리야는 야곱의 아들들의 수를 따라 돌 12개를 취하였으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음. 물이 흐르고 차도록 제단 주위에 도랑을 만들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벌여 놓고 물을 번제물과 나무 위에 3번이나 붓게 했음. 물이 제단 전체를 적시고 도랑에 가득 찼음.
📷
NAC(pp.310)
18:30-40
매우 극적인 상황이 이어짐.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의 광란의 제식으로 무너진 제단을 고쳐 쌓음. 그리고 그는 곧 일어날 기적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제단에 물을 부음. 엘리야는 불이 내리기를 기도하면서, 주님께 그가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달라고 간구함. 여호와가 없으면 이스라엘도 없을 것이라는 것. 엘리야는 또한 자신이 언약의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정당성을 인정받기를 기도함.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백성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알게 하고, 그들에게 즉시 회개할 기회를 달라고 간구함. 이 기도에는 하나님의 명성, 선지자 사역의 타당성, 백성의 안녕에 대한 염려 모든 것이 깃들어 있음.
지체없이 불이 떨어짐. 불은 제단과 제물 모두를 태움. 그순간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라고 고백함. 이 시점에서 그들은 바알에 대한 주장 중 어떤 것도 옳지 않음을 알았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엄격한 여호와 일신론자가 되었음.
백성들은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기 위해 바알 선지자들을 죽였음. 아마도 이는 신 13:1-11에 따라 이루어진 처형이었을 것. 모세는 이스라엘을 언약의 하나님에게서 우상숭배로 인도하는 선지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령함. 이단을 추종하는 자들도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자들은 이단을 추종하는 자들보다 더 큰 책임을 짐.
18:41-46
원수들을 처형한 엘리야는 마지막으로 여호와께서 주님임을 증명함. 비가 올 시간. 엘리야는 아합에게 비 맞지 않게 서둘로 집으로 돌아갈 것을 충고함. 비가 오는 것으로 주님의 승리가 완결됨. 바알이 자기 선지자들이 죽어도 방치하는 반면, 하나님은 자기 선지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살아가게 하시고 보호하심.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들을 먹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반면, 바알은 궁핍한 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을 살려 내라고 아낫에게 요구함. 여호와는 하늘에서 불이나 비를 보내실 수 있지만, 바알은 자신에게 가장 헌신적인 숭배자들에게 응답할 수 없음. 바알은 신이 아님. 여호와는 유일한 하나님이심. 여기서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보여주는 증거임.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