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러나 아직인 것에 대하여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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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views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국을 성도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재림을 기다리며 어떻게 소망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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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기독교에서 천국,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이미”와 “아직” 이라는 시간의 관념 사이에서 설명하곤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천국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며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는데, 다시 오실 그 때에 우리에게 있을 것은 심판과 천국 소망의 성취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심판자이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믿는 자들이 천국을 소망할 때, ‘이미 그러나 아직’의 관점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이를 통하여 천국을 소망하는 나의 모습을 점검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천국은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적인 기쁨을 공급합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를 미혹하는 죄의 경향 속에서 매일 넘어지고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녀들에게 날마다 넘치는 그 사랑과 은혜를 주시기에,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분명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과 소망을 누리게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사귐 없이는 “아직” 오지 않은 천국을 온전히 소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천국에 대한 세가지 비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이미 시작된 천국의 기쁨을 품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천국을 온전히 소망하는 것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이를 발견한 사람
밭에 감추인 보화와 이를 발견한 사람
마태복음 13:44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첫 번째는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입니다.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보화를 발견한 밭을 경작하던 사람은 그 밭의 주인이 아니었고, 밭을 경작 중에 우연히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것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있는 것을 자신만 알 수 있도록 숨겨두었습니다. 후에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구입했습니다.
보화의 가치는 어느 정도 였을까요? 가치는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행동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는 보화를 발견한 후에 즉시 숨겨 두었습니다. 사람이 언제 숨기거나 감추는 행동을 하는지 아시나요? 대체로 뭔가 남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 발생했을 때 숨깁니다. 이와 같은 행동 속에서의 대상의 가치는 매우 낮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 말씀 속의 숨겨둠과는 크게 다른 듯합니다.
반대의 숨김도 있습니다. 지금은 오백원짜리 동전이 귀하지 않아서 이런 일은 없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바닦에 떨어진 동전을 발견하면 발로 빨리 밟아 숨기고 단청을 부리다가 사람들이 없을 때 빨리 그 동전을 주웠던 일이 생각납니다. 학계에서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숨기고 있다가 발표하여 학자로서의 권위를 보장 받는 일도 있습니다. 기업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서 어떤 가치 있는 무언가를 다른 기업들로부터 숨겼다가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일도 세상에 비일비재합니다. 이렇듯 숨김은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말씀 속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남의 밭에서 발견한 보화이기에 그것의 실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밭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숨겼두었습니다.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삼으로 보화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가치는 ‘숨겨 두고.’와 ‘모든 소유로 샀다.’ 라는 두 가지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보화가 절대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라면, 복음 아래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인 가치를 발견한 성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 가치를 깨달은 자는 말씀 속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같이, 절대적인 가치에 반응합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고자 해야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입니다.
성곡의 성도 여러분! 바쁜 일상과 삶 속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주님의 자녀로서 반응하며 소유하고 살아내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 가치를 잊고 있었다면 은혜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온전한 회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
마태복음 13:45–46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두 번째 비유에서 주님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도 앞선 비유과 같이 좋은 진주를 발견하고 자신의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보화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과 마찮가지로 진주의 가치를 알아본 장사 또한 자신의 소유를 모두 팔아 값진 진주를 삽니다. 그런데 두 번째 비유에서는 예수께서 천국을 진주에 비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값진 진주 사이의 관계를 통해 천국을 그려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장사를 천국에 비유하셨기에, 장사 대신 천국, 하나님 나라를 비유의 말씀에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입해서 말씀을 한번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이해됩니다.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합니다. 좋은 진주를 찾던 중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서 그 값진 진주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천국이 얻고자 했던 좋은 진주는 “참된 성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주를 찾는 장사는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를 대입하여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성도를 찾아 다니십니다. 또한 참된 성도를 발견하셨을 때 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참된 성도를 찾아다니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빌립보서 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좋은 진주를 얻고자 하셨던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포기하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분이십니다. 그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십자가 죽으심으로 모든 값을 치루셔서 “값진 진주”를 얻으신 분입니다.
“값진 진주”로 주님의 은혜를 입으신 성도 여러분, 필요하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천국을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합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천국의 입구조차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진주를 찾으시는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3:2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구원의 기쁨, 부활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자녀됨,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뤄진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값진 진주”라 칭하시며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찾아와 주셨는데, 나는 그 부름에 걸맞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 값진 진주인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 저는 이 질문에 한 없이 부끄럽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주께서는 “너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멘 값진 진주다.” 라고 불러주시고 먼저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먼저 찾아오신 그 사랑, 보잘것 없는 나를 값지고 아름답다라고 칭해주신 그 사랑, 이것이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 기억해야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크신 은혜 안에 거하며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교회 안과 밖에서 이어가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마태복음 13:47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마지막 비유는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 그물 안에 있는 좋고 나쁜 물고기의 구분입니다. 한 그물 안에 좋은 물고기도 있고 못된 물고기가 있듯이 사람의 공동체 안에도 이것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먼저 구분되어 지는 “못되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 48절에 좋은 물고기에 반하는 물고기를 ‘못된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못된 것’의 성경 원어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면에서의 악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무가치하고 쓸모없다.’라는 표현을 동일하게 사용한 비유가 마태복음 25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주인이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어리석은 종에 대하여 성경은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자’의 최후는 한결 같습니다.
마태복음 25:30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못된 것”, “무익한 종”, “악인”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쓸모가 없는 이를 말합니다. 이것을 오늘 말씀 전반에 비추어 다시 설명드리면, 천국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또한 전혀 관심이 없는 이를 “악인” 그리고 “무익한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가운데 피어난 믿음은 우리를 깨닫게 하고, 주께서 주시는 넘치는 은혜는 새로운 삶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먼저 찾아와 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참된 성도가 그 사랑과 은혜에 어찌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된 성도로 부름 받으신 성곡의 성도 여러분! 어부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듯 세상의 끝날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심판하실 그 마지막 날에 의인과 악인이 구분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는 정말 놀라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날은 ‘아직’ 임하지 않았고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음의 말씀은 지금을 살아갈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빌립보서 2:12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정은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서 겸손히 이미 얻었다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겸손히 맡은 바, 나의 봉사의 자리와 삶의 자리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 소망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가는 말
나가는 말
서울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듣게 되는 기독교의 전도 구호가 있는데, 바로 “예수님 믿고 천국 가세요.” 라는 말입니다. 이 구호는 참 복음적이고 멋진 말입니다. 그러나 때론 이 구호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의도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전도 구호를 잘못 이해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한 하나에 도구로 전해 버립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제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의 소망을 품는 이유는 그곳에 종을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선물하신 삼위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의 건강한 천국 소망은 이 땅에서 수고한 만큼 채워주시고 갚아 주실 것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하나님 한분을 향한 온전한 갈망이 옳습니다. 그 외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그 필요에 따라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천국 소망은 오롯이 주님 한 분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우리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주님의 독생자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희생하여 우리를 얻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인 가치를 깨달고 그 나라를 위해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미 시작된 천국의 기쁨과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임할 마지막 날의 소망을 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