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아비들아(골 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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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아 아비들아(골 3:20-21)
<서론>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가?
자녀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 놓고 거기에 우리 자녀들을 짜맞추려 하는 부모는 혹시 아닙니까?
아니면 자녀들을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보상심리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과연 어떤 자녀이인가?
부모님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그저 내 방식대로의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로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척 하면서도 삶은 여전히 부모님을 속이고, 아프게 하는 자녀는 혹시 아닙니까?
우리는 과연 어떤 부모가 되고, 어떤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 이라는 문패를 달고 사는 성도인 우리가 성경적인 부모와 자식이 되어 성경적인 부모와 자식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골로새서 3:20-21은 우리가 성경적인 부모와 자식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식관계에서도 ‘상호주의의 원리’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의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부모자식간의 상호주의라고 하여, 꼭 무엇인가를 주고받아야 관계가 유지되는 상거래처럼, ‘조건적인 관계’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부모와 자녀들이 각각 자기의 도리를 다해야 하며, 부모와 자식관계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할 때, 성경적인 부모와 자식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부관계 속에서 복종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의 역할이 분명하게 있듯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각자 고유한 의무나 역할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본론>
1.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20).
그렇다면,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20a)고 말씀합니다.
지난주에 살폈듯이 ‘순종’「휘파쿠오」는 문지기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가서 그가 누구인가를 확인하여 문을 열며 영접하듯 ‘상전의 말에 귀 기울여 듣고 따르는 자세’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은 자녀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약자인 자녀들에게 무조건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 된 입장에서 보더라도 부모라고 해서 다 부모가 아닙니다. 근래 몇 차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부모들에 의한 학대로 어린 자녀가 죽기까지 하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까지 무정하고 무책임한 부모들을 향해서도 순종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 부모님들이 이런 부모님들이라면 과연 그래도 순종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대답은 일단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님께 대한 순종은, 부모와 자녀,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도 기쁜 일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명령)은 우리의 감정, 형편, 그 어떤 조건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빚어내는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일단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귀를 기울여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좋은 말씀이라면 마음으로 수긍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나쁜 말씀이라면 잘 듣기는 하되 그렇게 살지는 않기로 결심하면 됩니다.
물론 자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은 당연히 부모의 일차적인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젖먹인 자식을 잊지 않고,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부모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사 49:15).
부모들이 그런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을 희생적으로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부모들이 이 의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우리 부모님들이 무책임하다고 해서 함부로 부모를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오직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해야 할 의무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부모님들이 도둑질을 시키고, 비도덕적, 비신앙적인 일을 시켜도 다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요구가 아니라면, 비록 내가 수긍이 가지 않더라도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되면 “부모를 거역하며”(딤후3:2e)라고 말한 후,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b)는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십계명에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첫 번째로, 그리고 부모와 자식관계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도 먼저 언급합니다(출 20:12, 신 5:16).
이는 부모님을 공경(효도)하는 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장수와 축복의 지름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우리 자녀들은 지금까지도 부모님들로부터 충분히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무슨 말이라도 하려 들면 아예 귀를 닫아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왜 부모님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또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저 내가 옳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정말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고,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자녀들을 향해 부모님께 순종할 것을 이토록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세우신 가정은 다른 모든 공동체의 모델과도 같은 독특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가정은 견고한 공동체의 기본입니다.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면, 언약 공동체 전체의 질서도 함께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부모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간주되기에, 당연히 자녀들은 그런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순종을 통하여 성경적 부모자녀관계’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부모들은 자녀들을 화나게 하거나 낙심시키지 않아야 합니다(21).
성경적 부모와 자식관계에 대해 말씀하는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는 두 번째 교훈은, ‘부모들은 자녀들을 화나게 하거나 낙심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자녀들에게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절에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지도하라. 이것이 주 안에서 기쁜 일이다’라고 말씀할 만도 합니다.
그런데 21절 말씀은, 다소 엉뚱하게 아비들(부모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21a)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낙심할까”(21b)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부모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너무 호되게 꾸짖지 마십시오. 그들의 기를 꺾지 않도록 하십시오”(메세지성경 골 3:21)라고 번역했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화를 촉발시키지 말라’, ‘쓴뿌리가 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이성을 잃고 화를 낼 정도로 자녀들을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의 가슴에 쓴뿌리가 남을 정도로 가혹하게 자녀들을 교육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성가시게 잔소리 하지 않아야 한다. 들들 볶아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때에 원칙이 있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이성적이어야 하되, 감성적인 균형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라는 권위를 앞세워 거친 말과 행동으로 자녀들을 윽박지르고, 몰아붙이고, 위협하기까지 하는 그런 일은 그쳐야 합니다.
설령 자녀들이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계속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저들이 새롭게 시작할 용기와 희망마저 꺾어버리는 거친 말들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본문이 기록된 2000년 전 부모들을 향해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요구는, 마치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했던 것과 똑같은 파격적인 요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의 부모들은 대부분 가문의 명예를 먼저 생각해 무조건 엄하게 자녀를 다스리는 것이 올바른 자녀교육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대의 부모들에게도 이런 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건 다~ 너를 위한 일이야! 그렇니깐 다른 생각말고, 무조건 아빠(엄마)말 잘 들어!’하며 부모의 주장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우리 부모들은 당연히 올바르고 선한 길을 말해 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계속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좋고 선한 것까지도 윽박지르면서 말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서는 기다릴 뿐 자녀들의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선택도 책임도 다 저들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저들도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독립된 인격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용기와 노력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항상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했다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자녀들에게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그들의 ‘행동에 대해’ 그렇게 말해야 하지 그들의 ‘인격에까지’ 상처주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훈육도 적시성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질질 끌면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면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자녀들의 화를 촉발시킬 뿐입니다.
자녀들이 낙심하지 않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가지게 되도록 지혜롭게 자녀들을 훈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하나님이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신중하게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사실 부모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자녀들을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 속에 갖다 놓으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따라오지 않는 자녀를 어르고 달래기도 하다가 안 되면 윽박지르고, 겁주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녀들이 마냥 부모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견디다 못해 반항하고, 어긋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허용적으로 키워 제멋대로의 자식을 만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녀를 이해해야 비록 저들이 실패해도 부모가 든든한 기댈 언덕이 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다른 그 어떤 시대보다 부모 노릇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부모들은 급변하는 이 시대의 사고나 가치관은 물론 자녀들의 놀이문화나 언어적 표현조차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필요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자녀들에 비해 내가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몰라 이것저것 물어볼라치면 ‘이것도 모르시냐?’며 핀잔을 줘서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엡 6:4).
자녀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삶을 통해 신앙의 모범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와 똑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녀들을 끝까지 격려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인정해 주고, 후원해 주고, 기도해 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 주는 하나님의 인애를 보여줌으로서 성경적 부모자녀관계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 대부분은 모두는 부모로서 또는 자녀로서 충분한 자격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좋은 부모, 좋은 자녀가 되는 것은 불가는 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적인 부모자녀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우리는 이제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된 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골 3:10).
다시 말해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모든 관계 속에서 그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인정하는 새 사람입니다.
이러한 근거로 바울은 다시 한 번, “주 안에서”(20b)라는 전제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주안에 있기 때문에, 주안에 있어야 주님이 원하시는 부모자녀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20)
주 안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라”(21)는
말씀에 귀 기울여, 성경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