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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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1–5 NKRV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1. 우리는 왜 전도를 시도조차 못하는가?
사도행전 1:8 (NKRV)
사도행전 1:8 NKRV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이 땅에 남는 모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라”라는 말씀이죠.
이것을 우리는 두 글자로 “전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해야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흔히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지상명령”이란? “가장 높은 곳에 놓인 명령”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한번 우리가 긴 세월이 아니더라도 딱 1년만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전해본적 있나요? 예수님의 복음을,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 되신다는 복음을 전해본적 있으신가요?
아마도 없을겁니다.
2. 전도가 왜 어려운가?
우리가 전도를 못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여러분 주위에 예수를 전해야 할 사람들을 충분히 알고 계실겁니다.
사실 우리는 전도를 안하는거죠.
물론 전도에 있어서 상당히 다양한 측면이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 전도는 우리의 삶에서 말씀을 실천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선하심, 혹은 그게 정말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말하는 전도는 직접적인 전도 즉 말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년부니까 제가 2019년도에 종합된 설문 조사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전도가 왜 어려운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캠퍼스 사역자들과 청년대학부 사역자들에게 물은 설문조사입니다.
전도의 어려움에 대한 평가를 하는건데요.
가장 큰 어려움은 “청년들의 시간 부족과 무관심”이고, 다음으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신자들의 위선적 생활”등을 꼽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것들이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어려움이죠.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항상 있어왔어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전도는 항상 이루어져왔습니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어려움들에 대해서 외면할 필요는 없죠. 그것을 극복해나갈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적인 이유들이 정말 전도를 안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해야만하지만 안하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몇 가지 전도에 대한 중요한 메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1. 전도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는다.

아까 현실적인 이유들 중 하나가 뭐였냐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었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 우리 세대에서는 많이 만연해있죠.
그러나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하고 있나요?
고린도전서 2:1 (NKRV)
고린도전서 2:1 NKRV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바울은 전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서 전도하는 것을 두려워할 때 사실 우리의 마음에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뭔가 우리가 하는 말이나, 우리가 가진 복음이 화려해야하고, 매혹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그 매혹적인 지혜와 말로 세상에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매혹적인 지혜와 말로 세상에 어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그럴듯해보이게 포장하거나 덧칠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모나리자라는 명화에 어떤 사람이 선이 하나 더 들어가면, 색을 더 밝게 칠하면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칠해버리면 값어치가 더 떨어지는 것 같은거죠.
바울은 복음을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 아닌 복음 그 자체로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은 무엇이었을까요?

2.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속죄의 그 사건을 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2 (NKRV)
고린도전서 2:2 NKRV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전해야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로 초청하는 목적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복음 전함은 그게 만약 단순히 교회에 한번 나오라는 초청일지라도 그 목적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보완)

3.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한다.

사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의 불행을 해결하셨다는 그 복음을 전하는데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직접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3 (NKRV)
고린도전서 2:3 NKRV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정말 많은 신약 성경을 쓰고,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유럽 전역을 전도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한 사도였지만
실상 그의 마음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 바울은 어떤 이미지일지 모르겠습니다.
방방곡곡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고, 강하고 담대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사실 바울도 인간적인 면이 사도행전에서도 많이 드러나죠.
바울은 함께 동역하던 바나바와 입장 차이로 인해서 싸우고, 따로 사역하기도 합니다.
서신서를 보면 바울은 “가시”라고 표현하는 육체의 질병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사도행전 14:15 (NKRV)
사도행전 14:15 NKRV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바울 본인이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라고요.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쉽지 않았던 상황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2:4 (NKRV)
고린도전서 2:4 NKRV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능력은 바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심”이라는 표현은 “증명”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이 그 복음을 증명하셨고, 능력으로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상당히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복음이라는 것을 내가 전하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능력으로부터 얻어진 것인가요?
이미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라는 것은 그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은혜가 담긴 이야기인데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면, 구원을 주는 복음의 능력도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1.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되었다.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자꾸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 아닌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여러분 제가 물건을 파는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물건이 로션 이런 종류였어요. 그런데 그 로션이 정말로 좋은 로션이었습니다
유기농 로션이고, 이게 아기들도 바를 수 있고 온 가족이 다 사용 가능한 좋은 로션이었단 말이에요. 성분이 상당히 좋아서 한번 쓰신 분들은 재구매율이 상당히 높은 로션이었습니다.
저도 사용을 하고 있었고, 이게 정말 좋은 것을 압니다.
저는 파는 입장이었지만 이것을 사실 권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로션을 팔 때 사람들이 이것을 쉽게 사지는 않습니다.
다른 로션 제품과 비교하고, 한번 테스트도 해보고 하는데 쉽게 사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떤 경우가 많이 있었냐면, 다른 회사 제품과 성분, 발림 이런 것들 다 비교해보면서 다시 돌아와서 사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로션 상품 자체가 좋으니까 비교해보고도 다시 오는거에요.
예수님의 복음을 우리가 잘 꾸미고 포장해서 전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치 로션 상품 자체가 좋으면 구매하러 오는 소비자들이 있듯이,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토리인데 우리가 지혜와 말의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닐까요?
물론 어떤 사람과 먼저 친해지기 위해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들 이런 것은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겠죠. 이런 준비 과정이 충분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타락해버린 배신자 인간들의 땅으로 직접 들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배신자 인간들을 똑같이 배신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제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믿게 되면 생명을 얻게 되는 그 복음의 이야기.
이것은 세상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청년대학생 전도 ‘공동체와 경험’에 주목하라” < 교육 < 기사본문 - 주간기독신문 (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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