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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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바울과 바나바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안디옥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진행하게 돼죠. 그리고 1차 전도여행의 다섯 번째 도시인 이고니온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고니온에서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고니온에 오기 직전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핍박을 당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고니온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비시니아 안디옥에서 부터 이고니온 까지의 거리는 160km나 되었습니다. 160km라 하면 안산을 기준으로 하여 위로는 강원도 화천이고, 아래로는 충남 논산까지의 거리입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습니다. 당시에 로마제국이 길을 갈고 닦는다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순탄치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과 바나바다가 험한 산을 넘고 넘어 160km나 되는 이고니온으로 향한 주된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환경적인 이유로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주요 도시였으며, 이고니온은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인 도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이고니온으로 향한 것입니다.
이고니온에 도착한 두 사도가 행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새번역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라고 말씀합니다. 즉, 언제나 행해왔던 것과 같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먼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자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받아 이고니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를 통해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믿게 된 것입니다.
요즘 전도를 하기 위해 나가보면, 예수님 이라는 세글자만 꺼내면 표정이 어두워지며 거리를 둡니다. 전도에 대해 거부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처럼 돌에 맞아 죽는 위협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전도를 하며 험한 말과 좋지않은 시선들로 핍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먼저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메체에서 전도에 관한 슬로건을 본적이 있습니다. “전도에 실패는 전도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 한 전도의 실패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이 흘러가게 하신 것처럼 우리를 통해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이 흘러가게 하실줄 분명히 믿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허다한 무리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었지만 그들 중에서도 복음을 믿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배척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많은 이들이 복음을 믿게 되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배척을 선동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이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3절입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복음을 전하며 핍박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바울과 바나바는 배척을 당하며 위축될 수 있었으나 오히려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또 그런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에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고 계심을 분명히 믿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함께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도 이고니온에서도 똑같이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장소가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핍박 당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반복 된 것입니다. 이는 2000년 전에 일만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 바울과 바나바에게 처한 상황을 우리가 맞이할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주를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제나 동행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함께하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어서 5절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이방인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배척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바로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고니온의 관리들까지 포섭하여 자신들을 돌로 쳐 죽이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루스드라와 더베로 피신하였습니다.
6-7절입니다.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피신한 루스드라와 더베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 말씀에 있었던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만약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막 선동하고 관리들까지 끌어들여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 하지 않았더라면, 바울과 바나바가 굳이 루스드라로 도망해서 갈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의 선동과 모함과 살해 위협이 결과적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발걸음을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핍박 받지 않고 축하받고 기쁜일들만 가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극심한 핍박이 찾아왔습니다. 그로 인해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와 더베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분의 계획을 이뤄가시는 분이십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운행 된 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도의 여정 또한 하나님께서 운행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얼마전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15개국의 417명이나 되는 선교사님과 그들의 가족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마스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중에는 만 1세도 되지 않는 아이의 묘도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자녀 묘인 것이지요
양화진선교사묘원을 돌며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아무도 모르는 타국까지 와서 선교케 하였을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늘 말씀에 등장한 바울과 바나바와 같았습니다.
머나먼 타지에 도착한 이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핍박에도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그들을 통해 한국땅에 복음이 분명하게 전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혹시나 하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불이익과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으신지요? 지금 계신 자리에서 그러한 선한 싸움을 이겨내고 계신가요?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로 것처럼, 아펜젤러, 언더우드, 토마스 선교사님을 한국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 또한 각 가정과 학교 직장 일터, 교회, 등 다양한 선교의 현장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이익과 어려움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사역을 실행해 나가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내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더나아가 우리는 보내신 각자의 자리에서 어떠한 핍박에도 주를 의지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운행하심으로 우리를 통해 복음이 흘러가도록 역사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