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5: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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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누가 했나요? 먼저는 글을 기록한 요한이 자기 시대의 사람들 즉 성전을 중심으로 살다가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 될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흩어졌고 그 중 로마의 제2 도시라 불릴 만큼 로마의 색채가 강한 에베소라는 곳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그리고 이방인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듣고 있고
저자는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시기의 사람들 즉 유대인이라 불리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역사적인 신앙을 믿고 사는 사마리아 사람, 그리고 꽤 떨어진 곳에서 저 멀리의 예루살렘을 오가는 갈릴리 사람들이라 불리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한 이들을 1장 19절부터 지금까지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 때 그 자체, 또는 그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신뢰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사려고 하면 사용자의 리뷰를 보게 됩니다. 그런 평들이 좋으면 그제서야 그 물건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반면 물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이야기를 살피게 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이해가 되고 공감하게 됩니다. 특히 서사 즉 스토리가 있는 삶을 들으면 이해와 공감이 크게 증대하게 됩니다.
저자는 1장에서 제자들의 고백을 2장에서 기적을 통한 사람과 그런 소식을 듣고도 예수를 만났지만 믿음에 아직은 이르지 못한 니고데모 같은 사람이나 예수의 대화를 통해 변화를 받은 사마리아 여인도 소개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즉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한 사람이나 갈릴리의 사람들도 이들처럼 예수를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저자인 요한은 예수께서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고 예수님께서 왜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어떠한 권한으로 그렇게 행하시는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유일한 하나님만을 믿는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지금 눈에 보이시는 그분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을 베푸시는 것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정체정인 ‘안식일’과 ‘율법’을 송두리째 거부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과 같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그래 맞다’하면서 아예 못을 박는듯 하시는 말씀이니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27절에 ‘심판의 권한을 갖는 예수’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심판 후에 일어나는 ‘부활’ 30절 이하에 ‘모세’까지 건드립니다. 선을 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정도면 이스라엘을 부정하는 정도의 파급 효과가 있는 것이죠.
본문에 나타난 신학적 주제를 공부하듯 이해하지 마시고 관계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0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를 ‘사랑하는’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재산을 상속한다고 보면 사랑은 특별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길 수 있는데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라고 아버지의 일과 아들의 일의 관계를 ‘사랑’으로 묶어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크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이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으심에 내어 보내는 관계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의 한 장면인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여러개의 스톤을 모으는데 특이하게 얻는 스톤이 있는데 ‘소울 스톤’입니다. 다른 스톤은 이전 영화에서 언급이 있는 반면 소울 스톤은 여기에서만 나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해야만 얻는 스톤으로 기모라를 희생해 얻게 되는데 오히려 기모라는 타노스가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영화는 타노스가 기모라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희생했다는 식으로 결론을 만듭니다.
이상하죠. 희생이라면 자기가 해야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마치 희생 제물 즉 인신공양을 해서 얻어내는 보상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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