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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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views성경은 감정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 본문은 감정표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분을 내! 그러나 죄를 짓지마” 즉, 감정에 이끌리어 살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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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감정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 본문은 감정표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분을 내! 그러나 죄를 짓지마”
성경은 감정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 본문은 감정표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분을 내! 그러나 죄를 짓지마”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과 한 몸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몸이신 예수님을 본 받아 서로 사랑하라고, 연합하고 하나가 되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3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4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 부르심의 목표인 소망도 하나였습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하여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머리로 하여 한 몸이 되었습니다. 주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주님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주님과 한 몸된 우리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서로 한 몸인 우리는 사랑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 새 사람으로의 삶, 하나님을 본 받는 삶입니다.
4장 25절부터 32절은 연합하는 삶을 깨뜨리는 행동들이 나와 있습니다. 거짓말하지말아라, 분을 품지 말아라, 도둑질하지말아라 더러운 말을 하지말아라 등등 이런 것들은 서로 연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엡 4:31)
그중에서 오늘 본문은 감정에 대한 것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오늘 설교를 통해서 감정은 무엇인가?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고 다스려야 하는가? 살펴봄으로 지금부터 훈련을 통해 성숙한 자들에게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여러분들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감정 때문에 아프고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감정이 없다면 인생이 재미가 있을까요? 애초에 즐거움이라는 감정도 없을텐데? 봄이 주는 설레는 감정, 친밀한 친구 사이에서 오는 사랑과 우정, 선생님이 주는 관심과 사랑, 부모님의 애정, 따뜻함, 열심히 시험공부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때 오는 보람, 정말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의 성취감 등 감정은 인생의 감초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클릭)여러분 앞에 나와있는 감정들 중에 긍정적인 감정은 뭘까요?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들은 뭘까요? 그런데 정말 감정에는 긍정적 감정, 부정적 감정이 있을까요? 분노, 두려움, 공포,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인가요? 의로운 분노가 있죠. 악에 대해선 우리는 분노해야죠. 두려움과 공포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감정들입니다. 감정은 가치중립적입니다. 그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냐가 문제죠.
둘째, 그런데 감정을 존중하다 못해 너무 극대화되었다.
우리는 감정이 너무 극대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심한 것 같아요. 자녀교육을 할 때도 감정이 상할까봐 부모님들이 조심하죠. 부모님들의 어투도 “그렇게 하면 안 돼요. 하지 말아요” 이런식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자녀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데 “하지 않아요~” 말을 들을까요? 이런 식으로 하면 성경 십계명도 이렇게 바꿔야 할까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아요. 여러분은 살인하지 않아요~” 그러나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을 두지 마! 우상숭배하지마! 부모님께 순종해! 살인하지마!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또 감정은 우리와 동일시 됩니다.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감히 니가 나를?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 마치 내 손을 짜르는 것처럼 여기며 반응하죠. (클릭)“당신이 뭔데 우리애 기를 죽이고 그래!”라고 말하는 것에는 애의 기를 죽여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우리 애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부모인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무의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클릭)요즘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이 왜 자꾸 일어나요? 안그래도 화가 나는데, 제가 날 무시하는 눈으로 쳐다봤다는 거에요. 너도 나를 무시해?!
오늘날 우리는 감정은 곧 나이며, 감히 건들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셋째,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감정의 표현은 하나님의 뜻을 살펴 결정해야 한다.
처음 말한 것처럼 감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했을 때 그것은 지, 정, 의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때 정 곧 감정이에요.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괴롭힌다면 분노를 느낄 수 있고, 때론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감정을 느낄 수 있죠. 그럴 수 있어요. 성경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말라고, 그 감정이 생기면 억압하고 짓누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관심은 너에게 그런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나타날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죠. 분노라는 감정은 모두가 다 똑같이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모두가 다 똑같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하는 것이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넷째, 우리의 감정은 하나님께 토로하고, 표현은 주변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하고 연합하고 동정심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늘 성령을 의지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죠. “하나님 저 너무 화가나서 미처버릴 것 같아요. 누구하나 걸리기만 해봐 하면서 폭발할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길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긍휼로 내 안이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너무 괴롭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아버지의 뜻에 맡깁니다.”
여러분 “내 기분대로 해야지, 오늘은 내 감정을 풀거야”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아세요? (클릭)분노의 감정이 올라왔으니 그 감정대로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성경의 여러인물들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클릭)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을 생각해봅시다. (클릭)그는 자신의 오른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진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8:11) 그를 죽이려고 인생의 절반을 사용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죠? (클릭)블레셋과의 전쟁 후 여인들이 외쳤던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도"라는 말 때문이에요. 그 말을 듣자 사울 안에 질투심, 시기가 치밀어 오른 것이죠. 그리고 사울은 그 감정이 자신을 통제하고 지배하도록 내버려뒀습니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창을 던지게 만들었어요.(삼상 20:33) 그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나쁜 아버지였나요? 아니죠.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지만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먼 것이죠.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분을 내 괜찮아. 그러나 죄를 짓지마!” 감정을 통제하고 다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분을 계속 품어서, 분이 내 안에 충만해지는 것, 그래서 마귀가 내게 틀어오는틈을 주는 것입니다. 사울은 감정이 자신을 끌고가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인 것이죠.
다시말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클릭)구약시대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자신의 감정을 사사로이 드러내면 안 됐습니다. 대제사장은 개인적인 슬픔으로 옷을 찢게 된다면 그것은 내 인생에는 하나님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야 했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와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어떤 사건도 하나님이 풀 수 없는 문제, 하나님이 모르신 채 발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건이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비통, 분노로 이끌 순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제사장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죠. “이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감정을 통제하고 표출하는 방법입니다.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대로 행동하고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감정을 다스리고, 그 표현은 주변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도록 해야하는 것이죠. 분노의 감정이 내게 일어났어요? 그럼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짜증내고 화내지 말고. 일단 멈춰서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 제 안에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 감정이 저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성령님 감정을 지배하게 해주세요.”
결론입니다.
감정은 선물이지만 최종권위를 부여할만한 왕은 아닙니다.
우리는 분노가 일어날 때 선택해야 합니다. 그 감정대로 따를지, 하나님을 따를지.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 후련해지는 것이 기준점이 된다면 그것은 죄요, 감정이 내 안에 왕이 되는 것이며,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감정을 따라서가 아니라 복음을 따라서 자신의 감정의 표현을 해야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음이란, 내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내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과 반대로 행동하고, 싫어하는 행동만 하고,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리는 가장 싫어하는 상태일 때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내 감정대로 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고, 하고싶은 말을 다 뱉어내서 느끼는 일시적인 후련함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 만족감이 충만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다윗 공동체 여러분 감정이 나를 지배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늘 성령님을 의지하여 감정과의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분노의 감정이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내 안에 분노의 감정이 나를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분노의 감정을 악한 방식대로 표출했나요?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내 안에 있는 분노대로 내가 행동했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세요.” 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감정대로 할 때마다 연습해야합니다.
감정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림으로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더욱 사랑으로 연합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