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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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20초 동안 아무 말도 안 하였습니다. 이때, 성도님들께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저 전도사가 너무 긴장을 했나? 설교 할 부분을 빠트린 것 아니야? 아니면 갑자기 어디 아픈가? 여러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여러 생각을 만들게 했던 것은 바로 멈춤, 그 멈춤 안에서 나오는 침묵일 것입니다. 이 멈춤 속에서 우리는 마음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멈춤에 대해 오늘은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 46편은 고라 자손이 지은 시라고 나와 있습니다. 고라 자손은 시편 42편, 44편-49편, 84-85편, 87-88편 등 총 11편의 시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라 자손은 다윗 때에 성전 문지기와 성전에서 노래 부르는 직무를 맡은 자들입니다. 오늘 날로 보면, 교회 본당 로비와 본당 입구에서 성도님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집사님들과 권사님, 혹은 교회 성가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 많은 시들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46편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우리의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시입니다. 단락을 좀 더 나눈다면, 시편 46:1 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보게 될 희극을 먼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편 46:2-3, 시편 46:4-7 에는 여러 천재지변이 있고, 예루살렘 성이 흔들리는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보게 될 희극을 한번 더 이야기합니다. 시편 46:8-11 에는 예루살렘 성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나라와 여러 전쟁이 일어나겠지만, 다시 한번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희극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비극과 희극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2번 반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라 자손이 이 시를 짓기까지의 삶의 경험을 우리는 살펴 보고자 합니다. 고라 자손들이 이 시를 짓기 전에 그들의 조상인 고라가 어떠한 비극을 겪었는지, 이 비극에서 고라 자손들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시편에서 어떤 희극을 이야기하는지 같이 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고라 자손들을 알기 전에 우리는 고라라는 사람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고라’는 모세 시대에 있던 사람으로, 민수기 16장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게 반역을 듭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민수기 16:3
민수기 16:3 NKRV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고라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이 왜 혼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혼자 이스라엘의 모든 권력을 가진 자처럼 행동하냐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각 거룩하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으니, 모세와 아론이 지도자 행세를 할 필요가 없다고, 왕처럼 군림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고라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의 언급을 통해 고라의 욕심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민수기 16:9
민수기 16:9 NKRV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고라는 레위 사람으로서 당시 하나님의 성전을 봉사하는 직무를 맡고 있었는데, 고라 가족은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역할을 지시하는 것은 아론이었고요. 그렇기에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성전을 봉사하는 자기들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는 것처럼 보았고 이에 질투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고라와 그의 일당들의 반역 동기가 모세의 잘못된 지도자의 면모를, 독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자신들이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권력욕이라는 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와 고라 일당의 싸움 가운데 개입하셨습니다. 땅이 갈라지게 하여서 고라와 그의 소유물을 삼켰다고 민수기 16:32-33 에 나옵니다.
민수기 16:32–33 NKRV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모세를 향한 질투심, 그리고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에게 반역을 들고,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고라와 그의 일당들의 최후는 죽음이었고,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해서 받게 된 하나님의 심판. 이것이 고라 자손의 조상인 ‘고라’가 겪었던 비극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합니까? 혹 우리는 고라 일당의 멸망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와 고라와 다르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라 일당의 최후가 바로 우리가 맞이할 최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변명을 하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2:3
에베소서 2:3 NKRV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바울이 이것을 그리스도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본능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노의 자녀, 즉,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 서면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로마서 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라 일당과 똑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사람이며, 죄인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이 비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먹고 마시고 일하는 일상을 계속 살다보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받아야 할 심판인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우리가 바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며, 모든 경건하지 않음을 가진 자, 불의를 가진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고라 자손이 어떠한 일을 행했을까요? 그들이 했던 일, 일상을 잠시 멈추고 아버지에 대해, 조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고라 자손들이 고라의 마지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 우리의 조상이 잘못했구나!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의 말로는 심판, 죽음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심판과 죽음 앞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에 오늘 시편 46:2–3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이 말 중 땅이 변하는 것! 이것을 고라의 자손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왔을 것이란 말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경험이 이렇게 시로 표현되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땅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았을 겁니다. “내 아버지와 조상이 틀렸구나! 그렇다면 나는 괜찮은가? 우리는 괜찮은가?” 그들은 멈춰서 자신들의 신앙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 멈춤의 내용이 시편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라고 표현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 가만히 있다는 표현의 의미는 가만히 두라는 것도 있지만, 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고라 자손들은 이 ‘가만히 있으라’는 표현으로 잠깐 쉴 필요가 있다고, 멈출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멈추지 말라고, 쉬지 말라고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너가 공부 안 하고 멈춰있는 동안, 다른 애들은 더 열심히 공부할거야! 너가 취직 안 하고 멈춰있는 동안, 다른 애들은 취직도 하고 이미 커리어를 막 쌓고 그럴걸? 너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빨리 안 가지면 이미 나이 먹어서 늦게 돼! 너 지금 미리 돈 안 모아 두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 쓸 돈 없어져!” 이러한 말들을 하게 됩니다. 멈추지 말라고! 계속 달리라고! 쉬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멈춰서서 나의 삶이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의 뜻대로 잘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예배를 계속 출석하고, 봉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구역회도 하고, 직분과 사역의 자리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나의 만족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을 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에서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는지 아니면 그냥 주일에만 교회에 나와서 만나는 분인지. 이것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 전에 20초 동안 잠깐 멈춘 것으로 여러 생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에 잠깐 생각할 때, 멈춰야 할 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는 화, 수, 목, 금요일 점심에 학교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예배 설교 중 교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것을 멈출 때에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안식일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며, 주일 예배가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7일 동안 계속 일해야 합니다. 하루도 쉬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지키고, 이때 주님 안에서 안식을 합니다. 어쩌면, 바쁜 일상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예배 가운데로 와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과 행동이 내 안에 있으면 돌이키면 좋겠다는 하나님의 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예배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그분은 만군의 하나님이시며,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의 시대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고, 여러 나라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쟁 가운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가 더 노력해서 국방력을 키워야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고라 자손의 시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멈춰서 내가 누군지 보라고 말입니다. 시편 46:10-11
시편 46:10–11 NKRV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이스라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멈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라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언급을 통해 ‘야곱’의 다른 이름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들의 노력으로 국방력을 키워도 하나님의 능력보다 클 수가 없다는 것을 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교회의 과제수행을 잘 해서 예수를 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하라는 것 잘 해서, 말씀 보라는 것 잘 해서, 헌금 잘 내서, 봉사 열심히 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원리는 우리가 고생해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님이 먼저 오신 것입니다. 로마서 5:8
로마서 5:8 NKRV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직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목적지로 향해 나아가는 진노의 자녀였을 때에, 이 비극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운명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먼저 오셨고,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과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 먼저 보이셨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우리가 아무 공로를 쌓지 않아도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기쁜 소식, 희극이 되는 것입니다. 이 희극을 맛본 모든 세계가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시편 46:10 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극으로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비크너’라는 신학자는 본인의 책 “진리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마태복음 11:28 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태복음 11:28 NKRV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말한다. 이는 비극이다… 우리는 수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어서 예수는 말한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는 희극이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비극의 상황에 있는 우리를 쉬게 해준다는 희극으로 초대하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안실일에, 주일 예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비극과 희극 사이에 있는 인간은, 자신의 비극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와 희극으로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해 인간은, 우리는 고라 자손들처럼 멈춰야 합니다. 이 멈춤은 세상 속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나 자신의 비극을 발견하고 나의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혹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혹 내 욕심으로 무언가를 행하려고 하지는 않은지, 내가 혹 구원이 나의 노력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비극에서 희극으로의 삶으로 초대해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노력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원리를 우리는 성령님 조명을 통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고라 자손의 조상인 고라와 그의 일당은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결국 인류의 비극을 몸소 보였습니다. 이러한 비극 앞에 고라의 자손들은 멈춰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그들보다 더 큰 분이시라는 것을, 구원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찬양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라 자손처럼 우리도 삶에서의 바쁜 일상을 멈추고 안식일 날, 주일에 주님 앞으로 나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를 통해 구원이 나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라고 이 고백을 힘입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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