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9 설교실습: 시편 7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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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72 편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의로 말미암아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하리로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그들이 해가 있을 동안에도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도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모든 왕이 그의 앞에 부복하며 모든 민족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산 꼭대기의 땅에도 곡식이 풍성하고 그것의 열매가 레바논 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 같이 왕성하리로다
그의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의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1. 서론
만약 여러분이 왕정 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한 나라의 백성이라면 어떤 사람이 나의 왕이 되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왕이라면 뒤를 이을 후계자가 어떤 왕이 되면 좋겠습니까? 군사력을 강하게 만드는 왕, 경제를 부강하게 만드는 왕, 너그러운 통치를 하는 왕 등 각자가 원하는 왕의 이상형이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훌륭하고 위대한 왕을 꼽으라면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왕정 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어서 왕이라고 하면 확 와닿지 않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 우리는 왕정 시대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려줄 지도자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 솔로몬을 위해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기도인 이유는 1절에 ‘왕과 왕의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마지막 절인 20절에서 ‘다윗의 기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왕이 될 사람이 이런 왕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가 기록된 시편이기도 합니다. 이 시편은 대대로 이스라엘 왕국에서 왕이 등극할 때 쓰였던 시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72편을 제왕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왕의 후계자를 위해서 이스라엘 왕을 비롯한 백성들은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그리고 이 기도가 이루어졌을까요? 이 시간 다윗의 간구를 이루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다윗의 기도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본론
[요점1] 첫 번째로 왕을 위해 간구하는 다윗입니다.
[설명부1-1] 먼저, 시인인 다윗은 1절에서 자신과 아들에게 주의 판단력과 공의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판단력과 공의로 통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절부터 보시면 다윗은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며, 3절에서는 땅은 공의로 복을 받고, 4-5절에서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필요를 채우고 압박한 자를 꺾으며, 6-7절에서는 왕이 새롭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기에 의인들이 풍성한 평화와 함께 번성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라가 잘 되게 해달라”, “강력한 군사가 있게 해달라”라고 기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왕이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 핍박받은 자들을 위해 평화와 공의로 다스릴 것을 간구합니다.
[증명부1-2] 이 기도는 열왕기상 3장에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무엇을 줄꼬”라고 말씀하신 것에 솔로몬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던 모습과 비슷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것을 간구한 이 모습,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잘 들어맞습니다.
[설명부1-2] 그런데 다윗은 왕의 이런 통치가 이스라엘에만 일어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8절과 9절을 보시면 다윗은 왕의 통치가 바다에서부터 바다로,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시 말해 전 세계에 왕의 통치가 미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통치의 결과로 9절부터 11절까지 주변국들이 왕에게 복종하고 선물과 조공으로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만 보면 다윗은 왕이 정복자가 되길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 고대 국가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당연했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공격하여 부를 축적하고 부국강병의 국가를 만드는 모습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다윗의 기도도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그 이유는 다음 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12절부터 14절에서 주변국들에게 선물과 조공을 받는 왕이 자신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압제에서 구원하며, 약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여 그들이 왕에 의해 존귀하게 여겨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약한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게도 이스라엘 왕의 통치가 뻗어나가길 원합니다. 바로 다윗이 제일 앞에서 간구했던 주의 판단력과 공의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도 똑같이 미치길 원했던 겁니다. 이것이 이방 나라 왕과 이스라엘 왕의 차이점입니다.
이방 국가는 그저 자신의 이익과 배부름만을 위해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왕의 통치를 넓히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 정말 의로우시고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 우리만 누릴 수 없다. 이방 국가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누리면 참 좋겠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을 통해 통치하시니 이방 국가에도 왕의 통치가 임하길 바란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다윗이 지금 왕의 통치가 다른 나라에도 미치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증명부1-2] 아주 좋은 예시로 이방 국가들은 가능한 한 영토를 최대한 넓히려고 했다면, 이스라엘의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던 다윗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만 차지하고 그 이외의 영토를 가진 나라를 침범하진 않고 조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정복자로서의 왕이 아니라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길 바라는 왕이었습니다.
[설명부1-3] 여기까지만 해도 다윗의 간구는 아주 훌륭한 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가 이런 간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다른 하나를 더 간구합니다. 15절에서 17절까지 다윗은 이런 왕의 통치가 있는 왕국이 영원히 번성하여 모든 나라가 왕의 통치로 인해 복을 받길 간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왕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복되다고 찬양하길 간구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왕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왕을 찬양하길 간구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간구는 당연해 보입니다. 강대한 국가가 되면 세상 나라에서는 반드시 왕이 높임을 받고 찬양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치 우리가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을 높이 보고 때론 찬양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18-19절에서 이러한 통치의 결과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시길 원합니다. 다윗은 영화로운 하나님의 이름을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영원히 찬송하고 영광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그것도 아멘을 두 번씩이나 외치며 정말로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 시 마지막에 찬양을 넣은 이유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왕의 통치 최종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통치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너무 좋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바로 이것이 왕의 통치 최종 목표,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 최종 목표입니다.
[증명부1-3] 신구약 성경을 마무리하는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 있을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통해 그 날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통치 최종 목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전환 요소] 이상 다윗은 이스라엘 왕의 후계자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앞으로의 이스라엘 왕들이 이런 왕이 되고, 이런 통치가 이루어지길 바랐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을까요? 다윗의 간구가 이스라엘 왕들을 통해 이루어졌을까요?
[요점2] 마지막으로 다윗의 간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설명부2-1] 다윗의 간구대로 통치를 실현한 왕들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간구와는 반대로 통치한 이스라엘 왕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기도를 했던 다윗조차도 핍박받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평화와 공의로 통치하지 않고 오히려 빼앗고 짓밟기도 했습니다.
[증명부2-1] 사무엘하 11장을 보십시오. 다윗은 물론 훌륭한 통치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판단력과 공의로 통치해야 함에도 오히려 우리아에게서 밧세바를 빼앗고 심지어 그의 생명도 빼앗았으며, 밧세바에게는 평화가 아닌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과 함께 성 착취라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다윗의 후계자였던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았음에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많은 첩들을 두었으며, 심지어 그 첩들 중에는 이방 여인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이스라엘에는 많은 우상이 생겼고, 솔로몬도 우상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다윗과 솔로몬이 이랬는데, 그 이후의 왕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설명부2-2] 이처럼 이스라엘 왕들은 다윗의 간구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왕들보다, 심지어 다윗보다 훨씬 뛰어난 왕을 이 땅에 보내셔서 다윗의 간구를 이루셨습니다. 그 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궁핍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그런 모습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땅에 매여있는 국가를 넘어, 교회를 통해 모든 나라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가난한 자, 약자, 그리고 궁핍한 자들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사도행전에서 모든 물건을 통용하여 구제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실현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됨으로 하나님 통치의 최종 목표를 이루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통해 받고 있는 다윗의 간구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서 우리는 그 통치의 결과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적용부2-1] 어떻습니까? 다윗의 간구를 이루신 그리스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게 된다면 다윗의 간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한 이 복, 우리만 누릴 수 있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국가도 이 기쁨에 동참하길 원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주변에 아직까지 이 기쁨에 동참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이 기쁨에 동참하도록 초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그들을 초청하기 위해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판단력과 공의로 가난한 자들, 핍박받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압제 받는 자들을 압제로부터 놓아주어야 합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인 우리를 통해 많은 자들을 자신의 통치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에게 다윗의 간구를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계시기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3.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을 통치하는 왕은 어떤 왕이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그 왕의 통치가 이 땅에 실현되길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다윗의 간구를 이루신 왕이십니다.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