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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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의 사사이야기
세명의 사사이야기
사사기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백성들의 “가나안화"이다.
사사기2:19
성경전서 새번역 2장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백성은 다시 돌아서서, 그들의 조상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르고 섬기며, 그들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악한 행위와 완악한 행실을 버리지 않았다.
가나안땅의 주민들을 소탕해야 하는데, 오히려 가난안 신을 섬겼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가나안사람을 쫓아내지 못한다.
지금 이스라엘의 가장 큰 심각한 문제는 “자기가 보기에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가나안땅에 들어와 보니 신세계이다.
가나안은 한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브리스, 아모리, 여부스,시돈등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공동체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속에서 인정하고 따라가고 타협하고 하면서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점점 가난안화 되어가고 오히려 가나안사람들보다 더 무자비해져 갔다. 19장 이후를 보라.
가나안문화가 아무런 저항없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가나안문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성하고, 영향을 주게 되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성공하기위해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인 문화가 있다. 그것이 나를 형성하게 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보다 내가 받아들인 것이 훨씬 더 가치있게 느껴지고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보다 내가 받아들인 세상의 것이 훨씬 더 앞서게 된다.
그러다보면 오늘 사사시대의 백성들의 모습과 얼추 비슷하게 된다.
이런 사사기 시대를 이해하고 지난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쓰신 의외의 사람들 몇몇을 살펴보았다.
사사들의 이름이 등장은 하지만 업적이나 사역이 전혀 언급이 안되는 사사들이 있다.
입산, 엘론, 압돈이 세명의 사사들이다.
사사기 12:8-15
성경전서 새번역 12장
8 그 뒤에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9 그에게는 아들 서른 명과 딸 서른 명이 있었는데, 딸들은 다른 집안으로 출가시키고, 며느리들도 다른 집안에서 서른 명을 데려왔다. 그는 일곱 해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10 입산은 죽어서 베들레헴에 묻혔다.
사사 엘론
11 그 뒤에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그는 십 년 동안 사사로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2 스불론 사람 엘론은 죽어서 스불론 땅에 있는 아얄론에 묻혔다.
사사 압돈
13 그 뒤에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14 그에게는 마흔 명의 아들과 서른 명의 손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나귀 일흔 마리를 타고 다녔다. 그는 여덟 해 동안 사사로 있으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은 죽어서 아말렉 사람의 산간지방에 있는 에브라임의 땅 비라돈에 묻혔다.
입산은 아들 30명, 딸30명 키우고 결혼시킨 것이 사역의 주된 내용이다. 이것은 단지 자식을 키운 내용이 아니다.
아들의 며느리는 다른 집안에서 데리고 오고, 딸들은 다른 집안으로 출가 시켰다는 내용은 이웃민족과 불가침조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주변국 왕들의 집안과 결혼하면서 평화조약을 맺는 것이다. 타 민족들의 대표집안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에는 60개 민족의 풍습과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나안문화때문에 혼탁해져 있는데, 더 많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하는 문화들이 가득 들어오게 되었다.
입산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하나님 맡기신 사명에 자신이 없다. 백성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스리는 7년동안 전쟁이 없었다. 백성들도 가나안의 다양한 문화도 좋았는데, 60개국의 더 다양한 문화가 들어오니 훨씬 더 새롭고 신선하고 좋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님 맡기신 사명을 쫓기보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쫓은 결과이다. 봐,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데, 이런 기가막힌 것들이 있잖아, 유명한 사람들이 이런말 하잖아, 성경보다 더 기가막힌 조언이잖아.
로마서 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사명을 쫓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다.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진정한 힘은 성령의 역사이다. 그것이 사라져버렸다. 다양한 세상의 신선한 문화는 맛보았을지라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는 맛볼 수 없었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가나안화되면, 세상속에서 세상이 되어버리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더이상 없게 된다.
다음 사사는 엘론이다. 이 엘론은 더 아무 설명도 없다.
엘론 사사는 입산보다 더 내용없이 살다 죽었다만 기록한다.
상을 줄때 앞사람의 상 내용과 동일할 때, “이하동문"이라는 말을 한다. 엘론사사는 입산의 사역을 그대로 이어서 변함없이 해 왔기 때문이다.
사명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이 부르신 그 사람에게 맞게 다양하게 이루어가신다. 움직이는 교회 사명을 감당하는 새로운 교회의 대한 사역이 어느 교회를 모델로 배껴가면서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좌충우돌이 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구하며 선하고 기뻐하시는 뜻을 구하며 겸손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 저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사명을 맡기셨다. 누군가를 흉내내는 것이 아닌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맞는, 감당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사명, 우리는 그것을 찾아 감당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 압돈이다. 이 사람은 자녀40에 손자30, 아들손자만 30이니까 손녀를 계산하면 두배이상이겠다. 으마으마한 당대 자손이다. 또, “그들은 나귀 일흔마리를"타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사사들을 보면, 각 부족을 찾아 다니며 이일 저일 감당하는데 걸어다녔다. 사무엘사사도 이동네 저동네 걸어다니다가 사울왕이 전쟁을 앞두고 기다리다가 지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압돈은 자녀들을 통해 나귀를 타고 일사천리로 빠르게 해결했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기 보다, 사람의 지혜, 술수, 세상의 정보들을 의지한다.
하나님의 느린 길 보다 세상의 빠른 길을 선택했다.
한 사람이 아들40명을 놓을 정도면 아내가 몇명이었겠나.
삼손의 부모는 겨우 기도해서 낳은 자식이었지만 삼손이 사역을 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나의 탁월함을 의지하지 않게 하신다. 세상의 탁월함을 의지 하지 않게 하신다.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의지하게 하신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자신을 사명감당할 수 있도록 탁월하게 만들어가신다.
결론이다.
나의 방식을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 내 방식대로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 앨리멘탈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물과 불의 사랑이야기,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이 아닌 정말 해야 될 일,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 주면서 가는 것이 행복임을 말한다.
싸우며 감당해야 한다. 부부싸움 말고, 우리가 읽은 본문 앞에 입다사사 이야기가 나온다. 암몬전쟁을 하는데 자기 살겠다고 도망하는 에브라임사람들을 다 죽인다.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는 것은 죄와 싸우고, 탐욕, 거짓들과 끊임없이 싸워나가는 과정이 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니다. 위의 세명의 사사는 사명감당보다 잘먹고 잘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 몸이 원하는데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데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행가운데 몰아넣지 않으신다. 고난가운데는 들어가지만 그속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한다.
오늘 우리, 잃어버린 사명을 다시 되찾길 바란다. 그 사명 감당을 위해 성령의 역사하심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