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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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만나다보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훌륭할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성품과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는 우리에게 때론 큰 도전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 보다보면, 실망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사람의 장점이 더욱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실망감에 빠져 들어,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목격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를 잘 살펴 보면, 양측 모두에게서 연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먼저는 우리가 닮고 싶었던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또한 연약함이 있는 사람이며, 닮고 싶은 면이 있는 것과 동시에, 의문을 자아낼 만큼의 단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잘난 것 같은 사람에게서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그 사람 또한 연약함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보며 허탄한 소망을 품었던 모습, 또, 쉽게 사람을 의지하려고 했던 모습,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사람과 관계를 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의 단점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모두가 연약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얽히고, 섥히며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로 깊은 상처를 입어 ‘일이 힘들어서 일을 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힘들어서 일을 관둔다’는 말까지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속상한 것은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는 교회 안에서도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속되는 것으로 모자라 교회 안에서는 그들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깊은 위로와 회복을 누려야 하기도 바쁜데 양 옆에 있는 지체들을 바라보며 이처럼 어려운 관계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의 관계는 조금 다르게 그 은혜가 있으면 좋겠지만, 앞서 말한 대로 동일한 인간문제의 어려움들은 교회에 안에서도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아니 발생하는 것을 넘어서 교회 관계를 깊게 하면 할수록 그의 장점이 보이기보다 단점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를 해결하고자 ‘다름’이라는 대안을 꺼내 놓습니다. 상대와 내가 다르니 서로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겉보기엔 이보다 합리적인 말이 없고, 이보다 거창한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름만을 강조하면 결국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치닫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자는 말을 깊이 들여다 보면 ‘다름을 인정하자.’ 라는 미명하에 자신을 용납해 달라는 마음과 인정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다름' 이것만으로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기에, 또, 연합을 이루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가치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연약한 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들과 함께 연합됨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4:11–12 DKV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준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사도의 역할이 있으며, 예언자는 예언자의 역할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이유는 각각의 역할을 자세히 설명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각자의 부르심과 사명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마다의 특성과 개성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제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한 곳에 부르신 이유는 섬기는 일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이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각각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부르심을 받아 한 곳에 모인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 몸된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목적과 사명으로 인해 장점과 단점도 다르고, 깊이 보면 깊이 볼수록 그 사람에 대한 실망이 크며 가까이하면 가까이 할수록 인간냄새가 풀풀 풍기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공동의 사명,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사명이 있기에 서로 다른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릴적, 퍼즐 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있는 그림이나 캐릭터가 있는 퍼즐을 하나씩 모으다보니, 집에 퍼즐이 여러가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퍼즐을 잘 맞추어 보관하면 좋았겠지만 몇 번 완성하고 나니 퍼즐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떨어 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퍼즐을 한 통에 담아 놓아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장난감 통을 확인해 보니 제 각각에 서로가 서로에게 뒤엉켜 더이상 퍼즐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퍼즐 조각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퍼즐 조각들은 행방도 알지 못한채 사라져 제 기억속에서 마저도 희미하게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퍼즐 조각조각이 바른 의미를 가지려면, 완성이라는 목적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있을 때 각자의 다른 퍼즐 조각이 유기적으로 기능하며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만들어 감에도 동일한 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제 각기 다른 퍼즐 조각이지만, 너무나도 다르고, 쓰임새를 짐작할 수 없지만 하나의 그림, 교회라는 사명을 통해서 그 의미가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공의 얼굴을 담고 있는 퍼즐 조각이라고 할지라도, 배경 어딘가를 표현하는 구석의 작은 퍼즐 조각이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의 그림을 위한 목표를 가질 때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고 할지라도, 또 누군가 유능하고, 매력적인 것 같고 정반대로 누군가 무능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도 교회를 만들어 감에는 너무나도 필요하고 소중하며, 중요한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나와 누군가가 어떻게 다른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비로소 교회가 세워지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온전하신 교회가 세워질 것을 믿음으로 붙잡고 나아가야 할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4:13–17 DKV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지식에 하나가 돼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께서 충만하신 정도에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로 인한 술책에 넘어가 온갖 교훈의 풍조에 떠밀리고 휩쓸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며 범사에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해 함께 연결되고 결합됩니다. 각 지체가 맡은 분량대로 기능하는 가운데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가운데 스스로를 세워 갑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 안에서 이것을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사는 것같이 더 이상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명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신뢰하며, 그 하나님을 더욱더 알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에베소서의 말씀 그대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속임수, 거짓 메세지, 술책과 유혹, 세상의 흐름과 풍조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를 힘쓰고,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그 신앙이 성숙해지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이 무엇이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임을 자각하고, 그 몸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그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특별히 비교, 질투와 시기, 열등감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가진 것을 잊어 버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또 휩쓸리며 허망하며 정처없이 헤매고 떠도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에 의해 어렵고 힘들더라도, 지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의 사명을 붙잡으십시다. 이 사도 바울의 당부를 꼭 기억하여 교회가 교회되도록 우리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내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에베소서 4:7–10 DKV
그러나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높은 보좌에 올라가실 때 사로잡힌 사람을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올라가셨다” 하였으니 땅 아래로 내려오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내려오셨던 그 자신이 하늘의 가장 높은 데로 오르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모든 사명을 위하여 가장 먼저 솔선 수범한 이가 있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우리를 구하시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버리시고 가장 낮은 형체로, 비참한 형체로 이 땅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게 하기 위하여 또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오신 것도, 가장 높은 곳에 이른 것도 만물을 온전케 완전케 하려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먼저 몸소 보여 주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어려움과 고난이 우리에게 몰아 닥치거든 우리 자신을 몸소 비워 내십시다. 또, 그 비워낸 우리의 마음에 신령한 하늘의 것으로 가득 채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힘쓰기를 주저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기꺼이 자신의 종의 형체를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의지할 때 우리를 통해 이땅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실 것이고 그로 인해 세상에 바른 소망을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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