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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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우리는 삶을 살다보면 많은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어려운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증거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끝없는 낙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좀처럼 한가지로 정의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수많은 상황에서 눈을 들어 진실로 하나님을 본다면 신기하게도 복잡하고 다양했던 이 땅의 일들은 아주 단순하게 변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경에도 수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큰 재앙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큰 이적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일들은 항상 목적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일들을 행하셨을까요?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많은 상황들을 허락하시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시는 것일까요?
오늘은 그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엄청난 이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이 때 당시 상황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는 북이스라엘의 최악으로 손꼽히는 아합 왕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입니다.
그가 얼마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눈 멀게 하였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는지는 성경 몇 구절만 살펴보아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아합 왕은 그 어느 왕보다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도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했습니다. 심히 두려울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아합 왕과 북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십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는 북이스라엘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의 징계였습니다. 우리 상상에 1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도 국가적인 재난 상태인데, 무려 3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엄청난 재난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로서 7년의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7년의 풍년 때 곡식을 저장해두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북이스라엘은 아무런 대비없이 3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을 견뎠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와 같은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상황이 지금 일어난다면 큰 재난 수준인데, 그 때 당시 북이스라엘이 치렀을 대가는 짐작할 수 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면,
“아! 하나님은 이제 북이스라엘을 버리셨구나. 북이스라엘이 죄를 많이 짓고, 아합 왕의 죄가 극심하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는거야” 라고 말하고 끝날 수 있습니다.
물론 북이스라엘의 죄가 극심한 것에 대한 징계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서 행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즉, 징계 자체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자신들의 죄를 통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주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께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합 왕을 비롯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시간을 통해서 뼈에 사무칠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 죄악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시냇가가 말라 물이 없어서 갈증을 느낄 때, 자신들의 죄악을 슬퍼해야 했고, 비가 내리지 않아 열매가 없을 때, 주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심지어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엘리야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전히 눈이 멀어 있습니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많은 날이 지나고 3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땅에 비를 내릴테니 아합 왕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3년 동안 북이스라엘을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었던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나는데 아합 왕은 그를 보자마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아합은 조금도 이 재앙이 자신 때문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저는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느껴집니다.
“아합 네가 나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했기에 내가 이런 재앙을 내린거야! 정신 차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안 사랑하셨으면, 그냥 내버려두시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아이들의 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숭배하는 바알이 완전한 가짜이고,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신 것을 드러내기 위해 엘리야를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영적 대결입니다.
그리고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을 깨우는 말을 합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인간사를 움직일 수 있는 신이라면 불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불을 내릴 수 있는 신이 진정한 신이라고 말하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였습니다.
북이스라엘도 그렇고 심지어 바알의 선지자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영적대결은 시작되고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불을 내려달라 기도합니다.
그들이 아침부터 온갖 의식을 행하며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정오가 될 때까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바알은 가짜인데요.
정오쯤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합니다.
너희 신이 잠든 것 아니냐? 어디 나간 것은 아니냐? 그러니까 더 큰 소리로 외쳐라! 조롱합니다.
이에 바알 선지자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고, 자신들의 몸을 상해하면서 까지 바알신을 깨우려고 하지만, 저녁이 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제 엘리야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자신에게 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쌓아올리되 이스라엘 지파 수대로 돌 12개를 취해서 쌓아올립니다.
엘리야의 이러한 행동은 먼저 그 자리에 모인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들이 어떤 민족인지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에 복을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 때부터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것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돌 12개를 취해서 제단을 다시 쌓아올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물을 붓게 하십니다.
그들이 조금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조금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각을 뜬 송아지 위에 물을 가득 붓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엘리야에게 외치게 하십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열왕기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에게로 가라. 내가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 외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열왕기상을 처음 읽는 사람은 “아~ 엘리야가 자신이 있었구나! 엘리야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려고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조금도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행동들이 사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 그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명령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 일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이스라엘 백성이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였습니다. 위대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원하셨습니다. 그들을 조금도 우상에 빼앗기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열심이 불을 내렸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하나님은 이 고백을 받기 합당하십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이스라엘은 적어도 그 순간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에 대한 결단을 받아냅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3년만에 황폐한 이스라엘을 적시는 단비가 내립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이 하셨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것도, 그들에게 놀라운 이적을 보이신 것도, 그들의 땅을 회복하신 것도 유일한 목적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어떠한 놀라운 이적이었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만큼의 극심한 고통이었는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켰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이적을 겪고 정신을 번뜩 차리지만 결국 주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주님을 지속적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이적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주님의 초청을 깨닫고 주님께로 우리의 삶을 전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징계와 이적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두가지 모두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끝없이 사랑을 표출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심판과 재앙은 사람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모른 채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판을 받은 자가 아합의 아내였던 이세벨이었습니다.
이세벨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셨다는 놀라운 이적을 듣고, 3년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땅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 것을 보고, 그 빗물을 맞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는 오히려 바알 선지자를 엘리야가 죽였다는 것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말을 듣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기도합니다.
엘리야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엘리야는 놀라운 이적을 통해 북이스라엘이 변화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결과는 전혀 변화가 없는 왕궁, 그리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엘리야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를 좀 쉬게 하신 후에 호렙 산으로 가게 하십니다.
호렙 산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셨던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엘리야를 만나주셔서 그를 치유하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보면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전부인 것을 더 볼 수 있습니다. 이적자체로 만족할 수 없고 그 너머에 더 큰 목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앞에 의도적으로 엄청난 이적들을 보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시지만 그 가운데 계시지 않는 것을 엘리야에게 나타내십니다.
분명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술만큼 엄청난 위력의 바람이 분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엘리야 앞에 지진을 일으키신 것도 그 지진 후에 불을 내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적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후에 세미한 소리로 다가오셔서 말씀하시므로 실의에 빠져있는 선지자를 회복시키십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이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과 이적을 맞바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그저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계획했던 일들이 잘 풀리고, 어려운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혹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니까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거기에 조금 더해서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게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과 이적을 맞바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엄청난 불이 떨어지고, 가물었던 3년의 시간이 지나 단비가 내렸을 때, 그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이 끝난 것에 안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이적을 맞바꾼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용하신 일 때문에 아합 왕이 돌이키고, 이세벨이 자신의 죄를 탄식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나 엘리야가 그것을 보고 만족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이적을 맞바꾸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적인 어려움이 해결되고, 계획된 일들이 잘 풀리고, 거기에 더해 이 땅에 수 많은 이적이 일어나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서 수 많은 자들이 회복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에 만족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이적을 맞바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의 목적은 우리가 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더 하나님을 알게 되어, 더! 하나님을 우리의 온 존재로 사랑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에서도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평안이 임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들의 개인적인 삶의 풍요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열망은 주님을 더 아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그 아름다움을 더 맛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들, 그것이 말씀이든, 이적이든, 징계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 유일한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과 사랑으로 인해 더욱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질투와 열망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회복된 관계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그렇기에 우리에게 계속해서 찾아오십니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주님과의 관계로 끊임없이 초청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몇 번 주님께 시선을 드리고 반응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그분의 품으로 초청하신 온 땅의 주인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기 위하여 그 분의 임재 앞에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알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임재 안에서 그분을 진짜로 더 알게 되는 것에서 비로소 온전히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닌 하나님 그분 자신을 기뻐하는 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줍니다. 주님은 이 진정한 생명을 우리와 함께 누리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