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8_회개

강웅산 교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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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entance: 회개

회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회개가 가능하고 필요하다. 구약 제사 속에 회개가 있었고, 신약 성도의 삶에 회개가 있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의 회개

복음서는 백지에서 새로 시작된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구약 종교와 질서, 가치관을 배경으로 삼고 시작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세례요한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메시지는 구약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이것과 일치한 회개의 메시지를 예수님께서도 선포하셨다. 구약 마지막 메시지와 신약 첫 메시지는 회개로 일치한다. 여기서 구약과 신약의 교차와 연속성이 발견된다. 회개는 구약과 신약의 일관된 메시지다.
회개의 메시지는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촉구된 메시지였다. 세례요한이 회개를 촉구했을 때 들어야 할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태어나 이미 언약 안에 있는 백성들이었으며, 예수님께서 하셨을 때도 전제는 같았다.
구약에서 “נחם”(나캄)과 “שׁוב”(슙)은 회개로 번역된다.
나캄은 니팔 용법으로 기본적으로 “후회하다”, “생각을 바꾸다”의 뜻을 가지며, 사람에게 쓰일 경우 “회개하다”로 사용되며,
Lexham 히브리어 성경 어휘사전 (נחם)
7. 회개하다 — 가책을 느끼다; 유감스럽게 생각하다; 깊이 뉘우치다. 어간: 니팔, 2. 관련 주제: 회개하다; 회개.
니팔
렘 31:19 כִּֽי־אַחֲרֵ֤י שׁוּבִי֙ נִחַ֔מְתִּי
욥 42:6 עַל־כֵּ֭ן אֶמְאַ֣ס וְנִחַ֑מְתִּי
하나님에게 사용될 경우, “한탄하다”, “돌이키다” 등으로 사용된다.

3. 슬퍼하다. — 슬픈 감정이 일어나다. 어간: 니팔, 3.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עצב 2. 관련 주제: 슬픔; 슬픔.

니팔

창 6:6 וַיִּנָּ֣חֶם יְהוָ֔ה כִּֽי־עָשָׂ֥ה אֶת־הָֽאָדָ֖ם בָּאָ֑רֶץ

창 6:7 כִּ֥י נִחַ֖מְתִּי כִּ֥י עֲשִׂיתִֽם׃

삿 2:18 כִּֽי־יִנָּחֵ֤ם יְהוָה֙ מִנַּֽאֲקָתָ֔ם

4. 수그러들다 — 특정한 활동을 중단하다, 종종 그 누그러뜨리는 것이 자비로운 행동이라는 암시와 함께. 어간: 니팔, 22. 관련 주제: 종료하다.

니팔

욜 2:13 וְנִחָ֖ם עַל־הָרָעָֽה׃

암 7:3 נִחַ֥ם יְהוָ֖ה עַל־זֹ֑את

암 7:6 נִחַ֥ם יְהוָ֖ה עַל־זֹ֑את

욘 3:9 וְנִחַ֖ם הָאֱלֹהִ֑ים

욘 4:2 וְנִחָ֖ם עַל־הָרָעָֽה׃

6. 마음을 바꾸다 — 행동의 방향이나 어떤 일의 진실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다. 어간: 니팔, 5; 히트파엘, 1.

니팔

출 13:17 פֶּֽן־יִנָּחֵ֥ם הָעָ֛ם

삼상 15:29 לֹ֥א יְשַׁקֵּ֖ר וְלֹ֣א יִנָּחֵ֑ם

삼상 15:29 כִּ֣י לֹ֥א אָדָ֛ם ה֖וּא לְהִנָּחֵֽם׃

렘 18:10 וְנִֽחַמְתִּי֙ עַל־הַטּוֹבָ֔ה

시 110:4 וְלֹ֥א יִנָּחֵ֗ם אַתָּֽה־כֹהֵ֥ן לְעוֹלָ֑ם עַל־דִּ֝בְרָתִ֗י מַלְכִּי־צֶֽדֶק׃

종합적으로 나캄은 내면적 변화, 생각과 판단을 바꾸는 의미에서 돌이키다, 뉘우치다, 회개하다 등의 의미이다.
슙은 방향의 전환에 초점을 둔 단어로, 칼 용법으로 “죄에서 돌이키다”, “하나님께 돌아가다” 등, 주로 잘못된 길에서 옳은 길로 돌이키는 행동의 변화를 의미한다.

11. 회개하다 ⇔ 돌아오다 — 죄에서 돌이키다, 하나님께 돌아가거나 어떤 장소에서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하여. 어간: 칼, 90. 관련 주제: 개혁하다.

렘 3:7 אַחֲרֵ֨י עֲשׂוֹתָ֧הּ אֶת־כָּל־אֵ֛לֶּה אֵלַ֥י תָּשׁ֖וּב

호 7:10 וְלֹֽא־שָׁ֙בוּ֙ אֶל־יְהוָ֣ה אֱלֹֽהֵיהֶ֔ם

호 11:5 כִּ֥י מֵאֲנ֖וּ לָשֽׁוּב׃

호 14:2 שׁ֚וּבָה יִשְׂרָאֵ֔ל עַ֖ד יְהוָ֣ה אֱלֹהֶ֑יךָ

욘 3:8 וְיָשֻׁ֗בוּ אִ֚ישׁ מִדַּרְכּ֣וֹ הָֽרָעָ֔ה

신약에서 회심은 “메타노에오”, “에피스트레포” 등이 있다.
메타노에오는 마음의 변화에 초점을 둔 단어로서, 부정적 또는 과거지향적: 성찰, 후회, 회한로서의 회개 긍정적 또는 미래지향적: 용서와 화해를 생각하게 하는 회심
에피스트레포는 행동과 삶의 변화와 같은 외적 결과에 초점을 둔 단어로서, “돌아서다”, “돌아오다” 등의 의미이며, 위 단어와 마찬가지로 죄로부터 멀어지는 부정적 의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긍정적 의미 모두 가능하다.

회개와 그리스도와의 연합

회개는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WCF는 회개와 죄 용서에 대해, 죄 용서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회개 없는 죄 사함은 없다고 강조하며, 회개하는 죄인은 “죄에 대해 아파하며, 증오하고, 모든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서술한다. 회개는 기계적이어서도 회개 행위를 신봉해서도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긍휼과 자비에만 근거를 두는 믿음으로 회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구원을 얻는다. 회개는 구원받은 신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한 은총이며 구원 서정의 한 단면이다. 구원의 삶을 누리는 데 회개는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회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누리는 구원 혜택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언제든지, 무슨 죄든지, 사함을 받는 엄청난 혜택이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이키고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는 특권이다. 이것이 구원을 누리는 삶이다.
믿음으로 연합되고, 연합 안에 회개가 있다. 그러므로 회개는 믿음으로 한다. 믿음과 회개는 불가분적 관계다. 구원으로 신자는 죄로부터 멀어지고, 그리스도께로 가는 양면성을 띤다. 구원이란 죄 문제 해결과 의의 삶이다. 구원의 양면성은 믿음과 회개의 불가분적 관계로 나타난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수동성과 행사하는 인간의 동작이라는 능동성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회개도 성령의 사역(행11:18; 딤후2:25; 요6:65; 고전3:6)이라는 점에서 수동적이며, 이 수동성을 전제하여 회개하는 나의 동작이란 측면에서 능동적이다. WCF 15:3이 회개 없이 죄 용서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능동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회개의 수동성과 능동성은 언약 개념에 의한 것이다.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셨다(인간측에 수동성).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대상인 인간에게 인격적 반응이 요구된다(능동성). 언약 구조에서 볼 때, 회개의 능동성은 전인격적인 반응과 참여를 의미한다.

회개와 구원서정

구원서정의 하나로서 회개가 구원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구속계시의 진행과 맞물려 강조된다. 신약에서 회개는 종말론적 긴박성이 느껴질만큼 중요한 메시지로 대두된다.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24:47)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그의 사역 전체에 일관된 메시지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믿음(πίστις)”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μετάνοια)”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말씀을 듣는 대상과 대상으로부터 전도될 모든 족속 모두 결국 구원의 핵심이 죄 문제의 해결과 연관 있기에 믿음과 회개의 불가분 관계를 강조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회개는 믿음을 배제하지 않는다. 믿는다면 회개를 실천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믿음에 의한 회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름으로"가 이미 믿음의 동작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5) 참람한 일 중 믿음을 강조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오히려 회개가 강조되고 있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2:38) 원문은 “μετανοήσατε, [φησίν] καὶ βαπτισθήτω”로, 두 동사 모두 과거시제 명령형으로 단회적 동작을 말한다. kai로 연결되면서 회개와 세례가 한 사건임을 말한다.
회개는 종말을 사는 신약 성도들에게 강조되었던 종말론적 메시지다(행17:30; 26:20, 히1:1-2; 벧후3:9; 롬2:4; 계2:5). 예수의 사역에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회개는 신약의 종말론적 삶의 한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종말론적 삶으로 회개가 촉구/강조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언약 안의 삶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언약 백성의 정체성이자 특권이 회개다.
WCF 15장 [회개]에서 언약을 전제로 회개를 이해할 때, -죄 사함에 있어서 회개는 형식상 조건에 해당할 뿐 용서의 효력은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히 여기심에 있지만- 회개 없이 용서함이 없으며(3항), 참 회개를 통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고(4항), 회개는 구체적이어야 하며(5항), 죄를 범했던 사람에게 회개를 밝히고 화해와 관계회복이 있도록 해야 한다(6항). 회개는 언약이기에 개인적 차원을 넘어 언약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다.
회개와 성화의 관계와 구분에서, 회개는 성화의 삶을 사는 우리가 매 순간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는 동작 자체에 초점을 두며,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해 구별되고 계속해서 구별되어야 하는 거룩에 초점을 둔다. 회개는 성화의 방편일 수 있다.

회개와 회심의 관계

회개와 회심은 같은 단어에서 나왔다.
바빙크가 구분한 회심의 두 측면은, 회심은 모든 종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 나름 그 종교가 갖는 핵심개념이 삶의 중심이 되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내적 변화와 함께 외적 변화가 이전 삶과 계속해서 구분되어지는 삶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말하는 세례는 회심에 대한 교회의 인증이었다. 돌이킴의 변화를 통해 교회에 들어오는 은혜가 회심(단회적)이라면, 교회에 들어온 자가 지속적으로 돌이킴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회개(지속적)다. 회개와 회심의 공통점은 죄에 대한 내적-외적 돌이킴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회심은 어떤 외적 정형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죄로부터 구분되고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가는 마음과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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