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찬송가 436장 / 왕상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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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단어 선택하고,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Notes
Transcript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을 마치고, 월요일 새벽을 깨워 이 곳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주일날의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그 말씀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여, 삶의 자리 가운데 그 말씀을 다시금 들어보고, 묵상하고, 은혜를 누리며, 그렇게 제대로 소화시켜서 성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세상의 계산법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으로만 계산하며 살아갔던 죄악을 용서하여 주셔서, 날마다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고 듣고 생각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 아버지, 특별히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태국 치앙마이에 정도연 선교사, 그리고 베트남의 강기쁨 선교사를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셔서, 그 곳에서 예수님을 계속해서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 선교사들의 영혼을 가득히 채워주시옵소서. / 아버지,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웃과 직장동료들에게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시고, 예수님이 선포되는 예배의 자리로 영적인 탕자들을 초대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 연약한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조금의 감기 몸살에도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몸에,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이겨내고 있는 성도들,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싸매여 주시옵소서. 저들에게 예수님의 함께 하심이, 그 은혜가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 오늘을 살아내는 성도들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셔서, 각자의 삶의 터전 가운데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고, 그 회개의 역사 가운데 예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문제들을 주님께서 다 해결하여 주시고, 무엇보다도 문제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 이 시간 말씀 듣습니다. 말씀 가운데 성령님 함께 하여 주셔서, 예수님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여 주시고, 말씀 듣고 기도할 때에,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삶의 문제들로 인하여 기도가 나오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저들의 입술을 열어주시옵소서. 입술 가운데 예수님을 찬양하는 기도가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오늘 함께 볼 하나님의 말씀은 21장 1절. 열왕기상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말씀을 2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셨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우리 귀한 성도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님의 은혜와 평화가 가득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책의 제목입니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데, 책 읽는 것보다 책 사는 걸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책을 사 놓고, 아주 조금만 읽었습니다. 제목이 너무나도 맞는 말이 적혀있어서 구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오늘 말씀과 매우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설교 제목으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입니다.

본론

아합 왕 그는 누구인가?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보기 전에, 오늘은 3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나봇, 아합, 이세벨. 먼저 이 아합 왕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북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왕이었습니까? 16장에 이렇게 나와있지요.
1 Kings 16:30–31 NKRV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아합은 정말 악한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1대 왕 여로보암이 악함의 기준이 되었는데, 여로보암을 가볍게 뛰어넘은 상상을 초월하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 시돈 사람 이세벨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렇게 이 아합 왕이 왕궁에 살면서 왕궁 근처에 포도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포도원은 아합이 보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포도원이었습니다. 왕궁 근처 있었기 때문에, 그 포도원을 갖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나쁘고 악한 아합 왕은 정말 놀라운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아주 예의를 갖추어서 포도원을 사고 싶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 Kings 21:2 NKRV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당연히 그 아합 왕이 강제로 빼앗고, 쫓아낼 줄 알았는데, 아주 신사답게 정당한 방법으로 그 포도원을 사겠다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나봇이 어떻게 말합니까?
1 Kings 21:3 NKRV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나봇은 아합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보니까 팔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거절합니다. 당연히 아합 왕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빼앗고, 죽일까요? 놀랍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 Kings 21:4 NKRV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아합은 놀랍게도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에 들아가 침대에 누워 식사를 안 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삐져서 밥 안 먹고, 벽만 쳐다보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합 왕은 성경이 말하길 악한 왕이라고 평가했는데, 여기서는 놀랍게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아합에게 누가 찾아옵니까? 그의 아내였던 시돈 사람 이세벨이 찾아옵니다. 그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듣게 됩니다. 그러더니 아합 왕을 꾸짖고, 내가 왕께 그 포도원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가져옵니다. 굉장히 잔인한 방식으로 가져옵니다.
1 Kings 21:13 NKRV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거짓 선동을 펼쳐서 나봇을 돌로 쳐서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 없게 되니까 포도원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합은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은 충격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1 Kings 21:16 NKRV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이세벨이 어떻게 그 포도원을 얻게 되었는지 전혀 의심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내려가서 그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합과 이세벨의 모습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합은 왜 처음부터 빼앗지 않고, 그냥 끙끙대며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이세벨은 어찌하여 잔인하게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것일까요? 이 둘의 세계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산에서 도토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칩시다. 할아버지는 떨어져있는 도토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 도토리 주서다가 도토리묵 해먹으면 맛있겠다. 그러면 손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근처에 다람쥐가 있으려나? 다람쥐 봤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이지요.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할아버지가 도토리를 막 주우면, 손자가 그걸 보고 다람쥐 먹이를 가져가냐고 따지는 것이지요. 둘의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합과 이세벨로 돌아갑시다. 아합은 왜 초반에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그가 아무리 악한 왕이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관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팔지 않겠다는 말에 아무 것도 못하고 끙끙댔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세벨은 다른 나라 여인입니다. 시돈 사람입니다. 아주 돈과 힘이면 다 되는 강자들만이 살아남는 그러한 세계관에 있던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매우 잔인하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합 왕은 포도원을 아무 의심 않고 차지하러 갑니다. 점점 아합 왕은 이세벨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점점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이 이세벨과 같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 세계관은 정말 중요합니다.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오늘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입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여기서 공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교적 세계관. 유교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유교적 세계관을 죽어야, 유교적 세계관을 버려야 나라가 산다는 것입니다. 정말 제목은 좋은 책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보고, 무엇으로 듣고,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유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속에는 유교적 세계관이 가득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교회를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라 볼 수 없는 것이죠. 공자가 죽고, 예수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교회를 다니는데, 속에는 공자가 넘쳐나면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은 기독교 세계관. 예수님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틀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이 자신에게 있다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유교적 세계관이 들어있습니까?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무조건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에 유교적 세계관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오늘 하루도 예수님으로 보고, 예수님으로 듣고, 예수님으로 생각하며 그렇게 세상의 계산법이 아니라, 대박의 계산법, 예수님으로 계산하며, 날마다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고 듣고 느끼는 그러한 믿음의 사람 다 되시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 우리 안에 예수님이 가득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계관이 아니라, 수많은 잘못되고, 거짓된 세계관들이 우리 안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여 주셔서, 온전히 예수님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며, 날마다 예수님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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