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5 수요] 두려워하지말고 담대하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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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전 353 십자가 군병되어서 / 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묵도후 288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본문 창15:1
창세기 15:1 (NKRV)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금문교(Golden Gate Bridge)’라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는 세계적인 명 물 중 하나인데, 이 금문교는 1933년에 착공하여 1937년에 완공된 다리로써 길이만 2800m에 달하는, 걸어서 건넌다면 50분 이상 소요되는 대형 현수교이다. 이 금문교는 워낙 크고 높기 때문에 이 다리를 만들 때 많은 인부들이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건설 도중에 현기증으로 인해 5명의 인부가 바다로 떨어져 익사하였다. 익사 사고가 이어지자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더 이상의 인부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그 방법은 인부들이 작업하는 아래 부분에 안전 철망을 만들어서 혹시 현기증에 떨어지더라도 인명피해를 막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리의 높이가 변한 것이 아니다. 작업의 강도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차이라고는 안전철망 하나 둔 것이 전부인데, 그 이후부터는 인부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철망이 없었을 때에는 떨어지면 죽는다는 두려움 가운데서 일하다보니 현기증을 쉽게 느꼈는데, 철망이 설치되고 난 후에는 혹 내가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안도감 속에서 작업하니 더이상 현기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 사라지자,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자, 담대해졌다는 것이고, 담대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께 질문을 드린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러분의 인생을 통틀어 여러분의 안전철망은 무엇인가? 인생 중 사로잡힐만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여러분을 담대하게 만들어주는 여러분의 든든한 안전철망은 누구인가? 오늘 성경은 이에 대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답을 제시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든든한 안전철망이 되신다”고 말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한번 함께 읽자.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주시니, 아브람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라”라는 것이다. 여러분, 방패는 언제 사용하는 것인가? 전쟁에서 적의 공격을 막는 호신용이다. 따라서 ‘내가 너의 방패이다.’라는 말은 ‘내가 너를 위한 보호자이다.’ 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하나님이 친히 보호자가 되시기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강하고 능하시며 전쟁에 능하’시며 아브람의 방패가 되어주셨던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분의 백성들인 저와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주심을 믿으시길 바란다. 신명기 32:10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눈동자와 같이 지키셨다고 말씀하신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시편 17:8 에서도 시편기자는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눈 앞에 갑작스러운 일이 닥치거나 위험을 스스로 감지할 때 본능적으로 자신의 급소를 가린다. 그래서 눈 앞에 뭐가 날라올 때 눈부터 감는다. 이것이 본능이다.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는 것은, 마치 인간이 본능상 위험으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을 꽉 감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본능처럼 지키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자기 백성을 본능적으로 지키시고,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사 모든 환난과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인생을 살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나를 넘어뜨리려는 여러 어려움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 정말 가장 친한 친구가 찾아와서 위로한다. “고생 많았지?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널 도와줄게! 나한테 기대! 내가 있는 힘껏 널 지켜줄게!” 여러분,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 이 따뜻한 한 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위로해주는가? 하물며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하겠는가?
지금도 악한 원수 마귀가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올무를 놓고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니 마귀가 우리의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인생 가운데 여러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난이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시니,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움추려들게 만들겠는가? 무엇이 여러분들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겠는가? 따라서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신다는 것은 곧 우리 인생의 가장 든든한 안전철망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 어느 두려움조차 사라지게 하는, 안도감 속에서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는 그런 안전철망이 되신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연약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나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본문 속의 아브람도 그러하였다. 지금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점점 더 부해지는 아브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는가? 본문의 말씀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두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하나는 오늘 본문말씀 서두에 있는 ‘이 후에’라는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방패’라는 단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이 후에’라고 번역된 단어는 ‘그 사건들 이후에’라는 뜻이다. 여기서 ‘그 사건들’이란 앞장에 나타난, 창세기 14장에 기록된 사건들을 의미한다. 창세기 14 장에는 3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첫번째 사건은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메소보타미아 북방 연합군과 소돔, 고모라 왕과 연합한 팔레스타인 남방 연합군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 가운데 소돔에 머물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조카 롯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자 318명을 비롯하여 동맹한 자들과 함께 롯이 사로잡혀 있는 곳에 쳐들어가서 승리하게 된 사건이다. 이 전쟁을 통해 아브라함은 롯과 그의 가족, 그리고 많은 재물과 포로 된 자들을 구출하게 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 사건은 그렇게 승리하여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게 된 사건이다. 멜기세덱을 만난 아브라함은 그로부터 축복을 받고, 그에게 십일조를 헌금한다. 따라서 ‘이 후에’라는 표현은 이 3가지 사건 이후의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우리는 두 번째 단서인 ‘방패’라는 단어를 통해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방패’는 전쟁에 사용되는 도구로써 전쟁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창세기 14장에는 두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일어난 전쟁’은 아브라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북방연합과 남방연합간의 전쟁이고, ‘후에 일어난 전쟁’은 그의 조카가 포로로 사로잡혀간, 아브라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전쟁이다. 아브라함이 두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이 두 전쟁 중 하나 때문이다. 둘 중 어떤 것 때문일까?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승리한 전쟁이다.
성경은 이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 가지 장치를 해두었는데, 그것은 오늘 본문의 ‘방패’라는 단어와 창14:20 에 ‘붙이신’이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면 같은 단어로 기록해 둔 것이다. 창14:20 말씀을 보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방금 읽었던 말씀은 아브라함이 승리한 전쟁에 대한 말씀이다. 즉,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나는 네 방패이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즉, ‘너를 위한 방패가 된다’는 말은 단지 “적의 공격들로부터 널 지켜줄게” 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너의 대적을 너의 손에 붙여 승리하게 해 주겠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미 승리한 전쟁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보복공격 때문이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4개의 연합군의 보복공격이 두려웠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두려워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비록 아브라함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였긴 했지만 완전히 그들을 진멸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승리를 거뒀을 뿐이었다. 그들은 군대요 나라를 이루고 있지만, 아브람은 개인이다. 그들은 개인인 아브람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다. 이러니 그들이 마음먹고 쳐들어온다면 능히 막아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잔잔한 물결 이는 것 같은 인생일 때는 눈앞에 계신 하나님, 방패되신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부터 인생의 큰 풍랑이 밀려온다.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쳐오고 있고, 거센 바람들이 몰아쳐오고 있다. 점차 내 눈은 앞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 눈 앞의 풍랑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파도처럼 내 믿음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여러분, 베드로를 생각해보라. 그는 물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간청한다.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로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여전히 배 밖에서는 풍랑이 넘실거리지만 그는 믿음가운데 배 밖으로 한 발을 꺼내어 물을 밟고 일어섰다. 그러나 결국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아브라함도 그랬다. 그는 “너희 대적으로부터 승리하게 한 네 손의 방패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라는 멜기세댁의 말을 듣고,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방패 되시는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나에게 붙이셔서 승리하게 하셨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의 보복공격을 염려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떨때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지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려움을 갖게 되는 때는 언제이고, 방패되시는 하나님께서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려움을 갖게 되는 이유는 믿음의 눈이 아닌 육신의 눈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할 때이다. 상황과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상황을 보아야 하는데, 정작 봐야 할 믿음의 렌즈는 온대간대 없고, 육신의 눈으로 상황을 보고, 육신의 눈으로 형편을 판단하니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열왕기하 6 장을 보면 엘리사를 잡기 위해 아람 군대가 찾아왔다. 그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아람왕은 군대를 보내어 엘리사가 있는 성읍을 완전히 포위했다. 이 때 엘리사의 사환 중 하나가 새벽녘에 나가 밖을 보니 아람의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쌈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탄식한다. 이것이 육의 눈으로 현실을 본 자의 마땅한 반응이다.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피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고난을 만났다. 막막하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이다.
똑같은 현실 속에서 선지자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열왕기하 6:16–17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여러분, 바로 이것이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자의 자세 아니겠는가? 믿음의 시련 속에서도, 인생의 풍랑 앞에서도, 나를 집어삼킬듯 밀려오는 인생의 거대한 폭풍우 앞에서도, 불말과 불병거로 무장한 하나님의 군대를 보는 것이다.
여러분, 기억하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가 되신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매순간마다 우리를 지키시고 붙드시는 분되심을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과거 어떤 경험들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 귀한 진리를 확신하며 우리의 모든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가장 안전한 철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육신의 눈으로 상대를 보고, 육신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육신의 눈으로 상황을 보니까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을 생각해보라.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골리앗을 마주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는 어떠했는가? 이스라엘의 수백수천의 군대가 단 한명의 대적에게 완전히 마음이 물처럼 녹아내렸다. 왜? 육신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보니까. 믿음없이 현실을 바라보니까 불안함에 사로잡혔다. 그 거대한 외모와 강력한 무기에 마음이 완전히 압도당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골리앗을 “크게 두려워했다" 라고 증언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눈 앞에 펼쳐진 상황만을 바라보며, 낙심하였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어떠하였는가? 다윗이 골리앗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자. 사무엘상 17:36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지금 다윗은 크게 담대하여 눈앞의 골리앗, 모든 사람들이 가히 두려워 떨만한 원수를, 자신이 처 죽였던 짐승 중 하나로 여겼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여러분, 이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이스라엘 군대는 믿음이라는 렌즈를 통과해서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 대적의 모습과 그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았지만,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방패 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믿음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현실과 상황을 보니까, 방패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눈 앞의 위협적인 골리앗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주목하기 시작하니 원수가 아무리 위협적으로 도발해도 요동치 않고 그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성도 여러분,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의 눈으로 방패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불신자들처럼 육신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육신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니, 눈 앞에 밀려오는 거대한 인생의 풍랑 앞에서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마치 안전철망 없이 높은 다리 위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처럼, 이 험난한 인생 가운데 의지할 만한 것 없어서, 미신에도 의지해보고, 불상이나 영흠하다 알려진 나무나 돌 앞에 절도 해보고, 부적도 갖고다녀보고, 무당을 찾아가 굿도 해보고 내가 이 것도 믿어보고, 저 것도 믿어본다 하지만, 늘상 불안함에 사로잡혀서 그 불안함을 떨쳐낼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 가운데 이것들이 큰 힘이 될 것이고, 저것들이 나를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부추기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나선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의 방패가 되어줄 수 없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인생의 풍랑들을 피할 수 있으리라 여기지만, 성경은 하나님 외에 완전한 피난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시편 46:1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62:8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알수 없는 내일로 인해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분 있는가? 어떤 문제들로 인하여 담대함을 잃어버리고 염려와 불안 가운데 계신 분 있는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인해 두려워하며, 염려하고, 걱정하며, 그렇게 마음 조리며 살고 있는 분이 계신가? 만일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들은 믿음의 눈으로 가장 완전한 방패 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육신의 눈으로 환경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살고 있는가?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위한 방패이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이다. “내가 너를 위한 안전철망이니, 너는 떨어질 것을 염려하지 말고, 담대하라”라고 말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담대함, 그리스도인의 배짱은 바로 이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믿음의 렌즈를 통하여 방패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온갖 핍박과 고난 중에도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피난처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인생의 모진 풍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힘은 “내가 너를 위한 방패이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인줄로 믿으시길 바란다.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시편 115:9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라고 하셨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 속 가장 큰 도움이 되시고, 우리에게 밀려오는 모든 풍랑과 위협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가장 완벽한 방패가 되어주신다. 요한1서 5:4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가장 완벽한 방패가 되어주시고,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우리 인생의 다리에 안전철망으로 서 계신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자.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하셨다. 방패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담대한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내 마음에 안전철망 되시는 하나님, 내 삶에 방패 되시는 하나님을 내가 온전히 믿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때로는 우리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고, 육신의 눈으로 그것들을 보며 두렵고 낙심할 때 있지만, 언제나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방패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세상에 대하여, 유혹들에 대하여, 밀려오는 유혹과 시련들에 대하여 주를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마무리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마음에, 내 삶에 안전철망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이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담대한 인생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혹 아직도 하나님의 방패되심을 믿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안전철망 되심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이 시간 간절히 간구하오니, 이 귀한 진리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새겨지게 하여 주옵소서. 어떠한 상황과 형편 중에도 우리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요, 가장 완전한 방패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현실과 상황에 매인 자로 노예처럼 살아갈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담대히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특별히 하나님, 약속하신 바와 같이 택하신 백성들의 방패가 되어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안전철망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인생이 담대해 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처럼 믿음의 배짱으로 세상과 맞서 싸우게 하시고, 세상으로부터 승리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과 능력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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