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로마서 강해(하나님은 우리를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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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설교의 자리로 불러주심에 성산교회에 감사합니다. 먼저 기도 하고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전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당신의 말씀 앞에 설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말씀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경험이 말씀보다 높지 않음을 기억함으로 당신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자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셔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듣는 모든이가 마음에 말씀을 새기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연소한 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의 주인이신 당신이 원하는 말씀을 잘 전하길 원합니다. 이 시간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 합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제가 나눌 말씀은 로마서 1장 1 - 7절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라는 제목으로 부르심에 대하여 함께 말씀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참 많은 내용을 내포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많은 내용 중에서 본문에 3번 등장한 “부르심”과 “순종”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고 싶습니다. 다른 내용은 간단히 나누고 넘어가겠습니다. ㅎㅎ
“부르심” !! 부르심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많이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기도하고, 공동체 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때 각자 개인적으로 부르시기도 하지만, 교회적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을 너무 개인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 된 생각입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은, 모든 이방인들의 사도로써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부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때 부르심은 개인적이기도 하면서 공동체 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면 안됩니다.
부르심의 시작은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시는 사건이 부르심의 시작 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숨어있을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십니다. 그 때의 부르심은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에 등장하는 부르심과는 차이가 있는 부르심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인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다시 한 번요.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아주 인격적인 모습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였을때 바로 찾아내셔서 벌을 주셔도 되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성품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전능자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서 부르신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사용해서 강압적으로 행하시지 않는 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보여주며,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성도로 부름받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강압적으로 이 자리에 계신 분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 복음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이런 질문을 성도인 우리게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선하신데, 왜? 가난한 사람은 있고, 왜 전쟁은 발생하며, 왜?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거냐? 전능하면서 선하다는데, 내가 보기엔 무능력하고 관심도 없어보인다. 라고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 받아 보셨나요? ㅎㅎ (저는 많이 받아 봤습니다. ㅎㅎ)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려면 참 많은 시간이 들겠지만, 본질적으로 이 질문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왜곡이며, 하나님의 기다리심과 전능함을 자신의 임의로 사용하지 않으시며 인격적인 관계를 맺길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기초적인 생각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인격적인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도됨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다고 말하며 사도로서의 권한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의 가족인 교회를 핍박하던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팔 일만에 할례를 받은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 이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돌로 치는 자리에 있었던 교회의 핍박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가 어떻든 하나님은 복음을 위하여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그의 선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르심이 우리의 어떠함에서 나오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 혹은 과거의 잘남, 신앙의 실천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천상으로 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바울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바울은 복음에 대해 말하길 복음은 자신이 만들어 낸것이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요.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추어 설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은 하나님의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이어서 복음의 내용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그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로써, 정리해보자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오해하기도 합니다.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 혹은 바라는 것의 성취 쯤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어디서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내면의 갈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이런 우리가 바라는 것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관한 것이라고 잘 설명해주는 팀 켈러 목사님의 글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팀 켈러, 당신을 위한 로마서 1 (복음: 무엇이 아닌 누구)
복음의 중심에는 예수님이 있다. 복음은 개념이 아닌 한 분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 그분에 관한 것이다. 복음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인생과 꿈, 희망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는 결코 복음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복음이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선포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 꿈, 희망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저는 우리의 기도에 우리의 소망을 담아내는 것을 지적하여 고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요 우리의 기도에 우리의 소망을 담아낸 것을 지적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되어있지 않는 소망, 예수님보다 앞선 우리의 간구가 잘 못되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게 참으로 필요한 복된 소식은 우리의 갈망, 소망 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 입니다. 우리는 복음 자체이신 그 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중심이신 그 분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 이십니다. 바울은 3-4절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 성육신의 신비에 대해서는 함께 나누고 싶지만, 지금 시작한다면 오늘 설교가 끝이 나지 않을 수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ㅎㅎ
오늘 본문에서 제가 진정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다음 말씀입니다.
로마서 1:5 (NKRV)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앞서 저는 이 본문에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대목을 복음을 위하여로 바꾸어서 살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중심은 앞서 설명하였듯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복음 그 자체 이기 떄문입니다.
다시 5절을 살펴보면 바울이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고, 받은 목적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들 중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는 것" 다시 한 번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들 중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즉 복음을 위하여’ 입니다. 우리게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은 아주 익숙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설교 중에서 믿음과 순종은 너무나 자주 쓰이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즉 복음을 위하여를 먼저 보고자 합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의 직접적인 목적을 ‘그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언급합니다. 즉 복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주된 목적인데,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하게 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여기서 신기한점은 믿어 순종하게 하는 것이 이방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왜?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동시에, 우리가 따라야할 주인이자, 목적 그 자체 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다는 것 안에 이방인을 위한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진정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순종하는 것만이 그의 이름 높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복음이, 선택받은 이스라엘만이 누렸던 이 복음이 확장되어 이방인에게까지 주어져 누리게 되는 것은 그의 이름을 위한 것 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어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이 듣습니다. 성경이 주구장창 이야기 하는 바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 익숙하지만, 익숙한 만큼 오해도 많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지난 첫 설교로 믿음에 대해서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메세지를 전하였습니다. 믿음에 대한 오해도 상당히 많이 하신다 생각했기에 믿음은 나에게서 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전하였습니다.
순종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을 많이 할 수록 믿음이 크고 하나님이 나를 더 도우신다라고 생각을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정말 위험합니다. 순종을 잘 할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순종을 실패할때, 순종을 하지 못할 때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아지게되며, 나를 돕지 않으시는 분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기 때문에 정말 위험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고, 믿음을 주시는 분이며, 그 믿음의 결과로 순종을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순종을 조건으로 은혜를 주시고, 순종을 조건으로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순종은 은혜의 조건이 아니라, 순종은 은혜로 얻은 믿음의 결과라는 것 입니다.
순종이 믿음의 결과가 된다면, 순종은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순종의 태도와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지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코로나 키트와 같이 우리의 믿음이 양성인지 음성인지 알 수 있는 점검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순종이 없다고 우리의 믿음 자체가 없으며 결국 구원도 취소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기 싫다면 억지로 외면하거나, 혹은 억지로 행동만 하지 말고, 내가 정말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인가? 내가 정말 믿고 따르며 내 주인 삼은 것이 주님이신가? 돌아보자는 것 입니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많은 유혹과 시험에 빠지며 순종보다는 불순종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지 않고, 순종해야 하는 말씀을 회피하지 않고,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시고,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두 팔 벌리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믿음을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제가 이제 말씀을 맺기전에 마지막 주제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솔직히 제가 앞에서 이런말 저런말 구구절절 말을 어렵게 했습니다. 바라기는 명확하고 간단하게 하길 원했는데, 생각 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ㅎㅎ 여튼 설교단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믿음으로 순종해라’ 라는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고 결론짓는 다면 너무 아쉬울 듯 합니다.
제가 앞서 저렇게 많이 벌려 놓은 이유는 바로 마지막 주제인 이 것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의 순종이 그의 이름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우리의 믿음의 순종이 그의 이름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느가?”입니다. 엥?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라고 질문 하실 수 있습니다. 아까 전도사님이 그렇게 된다고 설명했잖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앞전에 그렇게 된다고 5절 말씀을 설명하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순종이 예수님을 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얼마나 말도안되 놀라운 것인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먼저 그의 이름을 위한다. 그리스도를 위한다. 이 말을 잘 살펴보길 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순종이 필요할까요? 다시 한 번 주님은 우리가 순종함으로 그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필요로 하실까요? 아니요 전혀 필요 없으십니다. 왜죠? 그 분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물의 주재요, 창조의 주 입니다. 그런 분이 우리의 순종이 필요하시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순종을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보다. 주님 혼자서 일하시는 것이 더 완벽하게 이름을 높이는 일이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돌을 들어서 자신의 일을 하실 수도 있는 분 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순종이라 말하며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고, 그의 이름을 낮추게끔 하지는 않았나요? 21세기 세상은 교회를 평가하기를 이기적인 자들, 앞뒤가 다른 자들로 평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타락은 하나님 존재를 의심하고, 교회를 혐오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보면 우리의 믿음의 순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적으로 모범이 되는 공동체도,있고, 모범이 되는 개인들도 있겠지만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이러합니다.
하나님에게 우리의 순종은 지극히 작은 것이고, 그러한 순종이 어쩌면 하나님의 일에 방해까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선포합니다. 이는 이들의 믿음의 순종 자체가 너무나 어마무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궁휼하게 보시는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자기가 편하려고 자기 마음에만 맞는 사람과 어울리거나 혹은 혼자 일을 처리하려하여 좋은 성과를 이루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고, 실수하여도, 실패하여도 우리의 믿음의 순종을 기뻐하시고,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극히 작은 순종도,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멋진 사역이전에 우리와 서로 사랑의 교제를 이루시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순종이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앞에 우리의 순종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설교를 맺으려 합니다. 오늘은 부르심이라는 중심 주제를 함께 나누었는데, 부르심은 우리의 선택 혹은 우리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그리고 그런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잘한 것을 순종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이 전체적으로 변하여 우리의 삶을 주께 내어드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순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순종이 고귀하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위대하신 분께서 우리의 지극히 작은 순종을 기뻐하시고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이 귀하다고 하십니다.
성산의 귀한 성도 여러분 오이코스초청축제 기간이라 들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자리에 함께 하셔서 영혼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작은 순종이라 할 지라도 그 순종을 기쁘게 사용하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오이코스기간을 보내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성산의 성도들과 함께 당신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설교는 부실하지만 우리게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위대하심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말씀만이 우리 마음에 남게 하시옵소서. 당신의 말씀의 능력이 오늘 이 순간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에서 우리를 이끄는 방향이 되어 우리 삶을 인도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의 순종이 대단해서 당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우리의 미천한 순종을 거룩하게 하시며 귀하게 여기시니 우리의 모든 자랑을 주님께만 드리길 원하오니, 우리를 겸손케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아 주십시오. 이 모든 기도합하요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그분의 이름을 높이게끔 하셨을까요?
로마서 12:1 N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에서 바울이 말하는
설교를 맺으려 합니다. 오늘은 부르심이라는 중심 주제를 함께 나누었는데, 부르심은 우리의 선택 혹은 우리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그리고 그런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었 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잘한 것을 순종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이 전체적으로 변하여 우리의 삶을 주께 내어드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순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삶에서 우리는 많은 순간들을 마딱뜨립니다. 그 순간 순간에 우리
제가 한 청년을 통해서 설교에 대한 생각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현재는 일을하면서 성도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인데요. 이 청년이 설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설교는 어떤 신의 한 수를 전하기 보다, 성도로 하여금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게 돕는 것”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이 말 앞에서 제 설교를 피드백 해 봅니다. 제 설교는 듣는 성도님들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설교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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