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3 새벽기도회: 마가복음 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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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번 한 주동안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죄를 즐기는 저희의 본성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즐거움을 누리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한 주간도 저희를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7:24-30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7:24–30 NKRV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겁게 누리시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해결해야 될 엄청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모든 희망을 걸지 않겠습니까? 다급한 문제 속에 희망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간절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이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두로 지방으로 가십니다. 두로 지방은 갈릴리 바다의 북쪽과 인접한 해안 도시 두로가 관할하는 지역을 말합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으로 가신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두로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악명 높은 원수들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두로는 이방인 중에서도 유대인들과 원수인 자들이었습니다. 이건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원수인 이방인 지역으로 예수님께서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시자 한 여인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 여인은 26절을 보니까 헬라인이며,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헬라인은 그리스인이라는 뜻보다는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헬라인을 이방인을 뜻하는 대명사로 사용했듯이 마가도 이방인이라는 말 대신에 ‘헬라인’이라는 말을 사용한 겁니다. 다시 말해 이 여인은 그냥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방인인 여인은 한 가지 문제가 있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25절을 보시면 이 여인에게는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26절과 29절에서는 그냥 귀신이라고 했지만 25절에서는 의도적으로 더러운 귀신이라며 ‘더러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자, 여기서 ‘더러운’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병자들을 예수님께서 고치셨다는 소문을 들은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예수님께 데려와 쫓아내 달라고 간구합니다.
보통 같으면 예수님은 “그래. 내가 얼른 고쳐주꾸마.”하고 당장 고쳐주셨을겁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모습도 그런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은 쉽게 고쳐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27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언제나 따뜻하시던 예수님은 안 고쳐주시겠다는 말처럼 들리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녀’는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등장하는 이 ‘개’는 우리에게는 귀엽고 애완동물의 느낌이 들겠지만, 이 당시에 개는 ‘욕’이나 혹은 도시나 마을 밖에 살면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썩은 고기를 먹는 야생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인들이 이해하는 개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습니다. 서신서들을 보면 개가 돼지나 이단자들을 연관시켜서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안 고쳐주실 것처럼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이 여인에게 모욕적인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떡을 배불리 먹게 하지만, 이방인에게는 먹이를 던지듯이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엄청 좋은 소문을 듣고 내 딸도 고침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기대를 품고 찾아왔는데, 정작 고쳐주지는 않고 엄청 모욕적인 말을 하는데 말입니다. 저 같으면 “에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하면서 기분 상해하면서 그냥 가버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달랐습니다. 이 여인은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떻게 보면 안 고쳐주겠다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시면 안 고쳐주겠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우선권이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것이지 기회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서 ‘먼저’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이 그녀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도 이방인이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시간적 우선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28절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정말 놀라운 답변이 아닙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녀에게 오히려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요청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29절입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딸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과 그녀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도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는 것을 믿은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기꺼이 고쳐주십니다. 그것도 신체적 접촉도 없이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이 집에 돌아가자 딸에게서 귀신이 나간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제가 앞에서 계속 기억하면 좋겠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원수인 두로 사람들이 사는 두로 지방, 그리고 오늘 본문의 여인이 이방인이고, 그 딸은 ‘더러운’ 귀신에 들렸다는 점입니다.
이방인과 더러움, 이 두 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볼 때 가지고 있던 관점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앞에서 손 씻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떡을 먹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을 지적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고 비판하시고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은 더러운 자들이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의도적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보다 이 이방인인 여인이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저 소문만 들었는데도 자신의 딸을 예수님이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다양한 이적들을 행하신 것을 직접 목격하고 보았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진 않으면서 그들이 만든 사람의 전통을 제자들이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에게 따졌습니다.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7장 5절을 보시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기는 커녕 ‘당신’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대해서 빠삭하고 잘 알고 있던 유대인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는 달리 성경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예수님에 관한 소문만 듣고 온 이 수로보니게 여인, 이 둘의 차이가 너무도 잘 보여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유대인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말씀하셨음에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선권이 없음에도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이 둘의 차이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도 합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열심과 봉사로 인해 나는 구원받을만한 모습을 갖춘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인 불신자들을 향해 정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휴, 저런 타락한 인간들. 나 같이 교회에서 예배에도 꾸준히 나가고 봉사도 열심히 해서 깨끗한 사람이 되야지 말이야.”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딸의 고침을 받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빈손으로 왔기에 아무런 권리주장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쌓은 공로도 없고 심지어 우선권도 없으며, 칭찬받을 만한 모습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예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은혜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으로서 엎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영적 이방인인 불신자들을 향해 편견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까? “저들은 더러운 자들이야. 저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귀신들린 딸을 오직 예수님만 고치실 수 있으셨듯이 불신자들의 영혼을 고치실 수 있는 것도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었음에도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듯이 하나님 나라는 아무런 공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공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채우셨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죄인인 우리는 율법을 지키기는커녕 쉽게 어깁니다. 이런 우리에게 정해진 미래는 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공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본디 영적 이방인이었던 우리였지만, 공로를 채우신 그리스도 덕분에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들어가 영적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아무런 공로 없는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받아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해 우리 주변에 있는 아직까지 이방인인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에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하나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신의 백성이 되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아무런 공로 없던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그들을 정죄하기보다 사랑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참으로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아무런 공로 없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저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쉽게 정죄하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 저희의 이런 모습을 용서해주시고 다시 한번 복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기쁨으로 전하게 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살아내어 저희의 모습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도 지켜주실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고, 자유롭게 기도하신 후에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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