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음으로 변화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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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3:1(신약 170쪽)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일체유심조’ 이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인데요. 이에 관한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람이 흔들리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답합니다.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다.’
좀 오래되고 익숙한 얘기 중에는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컵에 물이 반이 들어 있습니다. 이에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옵니다. 하나는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을 성경구절에서 발견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 21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본래 이 말은 우리가 세속적인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두라는 의미로 보물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우리의 마음도 하늘 곧 하나님의 뜻에 둘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우리가 마음을 두는 곳이 보물이 됩니다. 세속적인 가치에 우리가 마음을 두면 그것이 우리의 보물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마음을 두게 되면 그것이 보물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신앙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그에 관해서 짧게 나눠보고자 합니다.
< 1. 하나님에 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공생애 마지막 목적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입니다. 달리 보자면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그에 관해 제자들에게 알려왔지만 제자들은 그것이 현실로 닥치기 전까지 그 일에 관해서는 아직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장차 닥칠 자신의 죽음을 몇 차례 예고하셨는데요. 이른바 수제자라는 베드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예수님께 대들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큰 꾸지람을 듣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루살렘 입성 후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통해 로마의 군대를 내어 쫓고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을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권력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더욱더 실망스러운 것은 오늘 성경구절의 배경이 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이라는 유대인들의 명절이 되어서 만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구절을 보니 이 장면에서 그 유명한 세족식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로써는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발을 씻기는 것은 가장 낮은 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종이나 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기는 것이고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이러한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 베드로는 이것을 거부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만큼 이상한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당시의 문화적 배경으로 보면,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가 나서서 스승인 예수님의 발을 씻기지도 않았고 도리어 스승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에 앞서 성경은 예수님에 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가지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 과거부터 앞으로 쭉 변함없이 사랑으로 대하시고 또 대할 것임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세족식의 장면과 후에 있을 십자가의 사건은 그것을 증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 보시기에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것일까요? 앞서 말했지만 세족식 사건을 통해 보듯 제자들은 스승에게 모욕감을 줄 정도로 전혀 사랑스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한 시간도 어느 덧 3년이라는 시간이 되었지만, 그들은 아마도 그렇게 주님의 뜻을 알고 또 그 뜻을 따를 만큼 발전적이지도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해 예수님이 로마군에 잡히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 버리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을 통해 정권을 잡고 다들 권력을 탐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 버리지 않으시고 심지어 끝까지 사랑해주십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하였을까요? 사실 알 수 없지만요. 추측해 보건데 그건 성부 하나님에 관한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세계를 사랑하시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성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분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 자체는 사실 신뢰할만한 대상이 못되지만,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믿을만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따르는 일이 반드시 그분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예수님이 사랑스럽지 않은 제자들을 사랑할 수 있게 했고, 더 나아가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만들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온전히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결과적으로 제자를 대하는 것에 있어 끝까지 사랑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저는 우리가 신앙생활에 함에 있어서 이러한 믿음 또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전에 제게 이러한 믿음이 부족하여서 저는 어리석게도 사랑으로서 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친 말을 통한 폭력과 정죄와 판단이라는 교만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을 때,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더 사랑할 수 있고 더 인내하고 더 소망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어떤 영화 속에서 나온 인상 깊은 대사가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세족식을 하면서 어떤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고기 사람이 되는 것은 마술이고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잘 변화하지 않습니다. 괜히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변화를 이루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저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내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하고 얼마나 많은 폭력을 저지르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 뜻대로 변화되지 않는 상대를 얼마나 가혹하고 잔인하게 대하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있다면 그나마 좀 나을텐데요. 가족과 같이 깊이 연결된 관계는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훨씬 더 가까운 관계 안에서 오히려 더 상처를 주고받는 불행이 생깁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잠언 16장 9절에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주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온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믿음 안에 설 때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 뜻과 내 생각을 의지하는 삶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을 구하며 그 뜻이 이뤄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분명히 이뤄질 것을 믿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으로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요사이 계속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세상살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분을 통해 하나님이 분명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고 힘이 없어서 이제 천국갈 날만 기다린다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우리가 참으로 그분이 이루실 놀라우신 일을 기대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삶을 이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