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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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76:9(구약 857쪽)
설교제목: 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Psalm 76:9 NKRV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6편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걸어온 모든 대적을 제압하고 평화를 일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전쟁의 승리자로 그리고 있는 까닭은 하나님만이 세상의 절대적 능력을 행사하는 왕중왕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과 달리 과거 전쟁의 승패는 신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다시 말해 전쟁에서 이긴 신이 가장 강하고 전능한 신임을 전쟁의 신이라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것은 우리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긍정적이지도 않을 뿐더라 그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를 결코 좋다고 대단하다고 얘기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쟁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부정적으로 혹은 불의한 신으로 여기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6편 9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전쟁을 일으키신 이유가 바로 9절에 잘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전쟁을 또는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대체 온유한 자가 무엇일까요? 또 하나님은 왜 그를 구원하신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달리말하자면, 온유한 자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것이고 오늘 우리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해서 오늘은 구원받는 온유한 자에 관하여 짧게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 1. 온유한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 나타나는 ‘온유한’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나브’라고 합니다. 이는 구약성경 민수기 12장 3절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과 관련하여 나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다시 말해 모세는 온유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에 관하여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어떤 인물인지를 통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젊은 시절 혈기 왕성하여 살인을 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던 그가 노년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것에 크게 쓰임 받게 됩니다. 바로 이러하나 모세의 모습이 오늘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본래 온유함은 야생 매가 길들여진 상태를 말하는데요. 강인한 맹수가 길들여져서 주인의 말에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혈기왕성하던 모세가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된 상태가 바로 오늘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이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를 수 있는데요. 보통 우리는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한 것을 가리켜서 온유하다고 말하지만요.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달리 말하면 겸손함입니다. 이전까지 자신을 세상에 중심에 놓고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하다는 것은 자신의 성질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 2. 온유한 자는 주의 말씀을 따르는 자입니다. >
결국 온유한 자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입니다. 성경에서 모세가 온유하다고 평가 받는 것은 자신의 성질을 죽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가 겸손한 모습을 보였어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면 성경은 그를 온유하다고 일컫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모세를 온유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온유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말해줍니다. 아무리 성격이 온순하고 겸손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한다면 그는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사람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온유하다는 것이 겸손한 것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진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겸손하다고 또 온유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앙 안에서 참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삶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우리에게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것이 구원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온유하지 않은 자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신앙생활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올바른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하여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온유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 3. 온유한 자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
한편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달리보자면 온유한 자에게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유한 자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고 그것이 곧 신앙생활이라면요. 우리는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바람을 마주하고 걷거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본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을 직접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바람의 세기와 물살의 크기에 따라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세상 살이 가운데 혹은 세상의 기준에서 손해를 보아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령, 지금처럼 남들이 편히 잠들어 있을 시간에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있고요. 어제처럼 남들이 편히 쉴 쉬간에 우리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먹고 살기도 만만찮은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햇 또는 잘 하기 위해서 먹고 살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고 혹은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면서 때로는 물질로 때로느 시간으로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왜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편리함보다는 불편하고 힘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삶에서 세상의 풍파를 거스름에 따른 고통과 문제에서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우리 곧 온유한 삶을 사는 신앙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구원이라는 것은 뭘까요? 우리 그간 주님을 위해 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해 봉사했으니 마지막 날에 최고급 저택에 머물며 안락한 생활하는 것일까요? 과거 천국을 다녀왔다는 어떤 분들의 간증처럼 금은보화로 치장된 아름다운 곳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의 구원이 그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보았던 미국의 오래된 유명한 영화 또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었는데요. ‘스타트렉’이라는 영화 입니다. 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인데요. 외계인도 나오고 그 가운데 전쟁도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설정이 등장합니다. 지구는 더 이상 돈을 필요로 하지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이 없어도 사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돈 대신에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돈과 비슷한 힘을 가진 어떤 수단들이 나오기 하지만 돈이 없다는 설정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정이 흥미로왔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임할 구원이 마치 그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이 세계의 방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가능함을 깨닫고 세상의 가치와 방식을 쫓지 않고도 더 좋고 나은 삶을 살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구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참으로 이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 구약성경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사자와 어린양이 뛰놀고 어린 아이가 독사굴에 손 넣어도 상하지 않고 해함이 없는 세상과 같은 새로운 세계에 관한 비전이 우리가 맞이할 구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잔치로 비유되는 풍성함과 즐거움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이 세상과 다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모습입니다.
바라건데 저는 오늘 우리가 온유한 자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성도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과 평안을 맛보고 누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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