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두 번째 이적 -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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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4:43-54(신약 149쪽)
John 4:43–54 NKRV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믿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요. 그런데 무엇이 좋은 믿음인 것일까요?
오늘 성경이야기는 우리에게 그것을 답해주고 있는데요. 오늘 성경이야기를 통해 이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시는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좀 더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오늘 성경이야기에 앞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 또는 구주로 믿게 됩니다. 좀 더 정확히는 세상의 구주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문 후에 예수님은 다시 고향인 유대 땅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 무렵에 예수님의 대한 소문이 갈릴리 곳곳에 퍼졌습니다. 이는 보다 앞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여러 이적들을 사람들이 보았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갈릴리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오늘날 우리로 치면, 고위 공무원 성경에는 왕의 신하라고 나오는 이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그에게는 병약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는 한달음에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으로 오셔서 아들을 살려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은 이를 거절합니다. 왕의 신하는 애타는 마음으로 간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왕의 신하에게 아들이 살아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왕의 신하는 어리둥절하였으나, 별수 없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던 중에, 그의 종들이 찾아와서 아들이 살아난 것을 알립니다. 왕의 신하는 이 일이 일어난 때를 묻고 그 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때임을 알게 됩니다. 그 일로 왕의 신하와 그의 가정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를 입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이야기는 진정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의 유의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고향에 속한 유대 갈릴리로 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44절 하)” 이는 예수님이 고향에서는 존중받지 못할 것을 예고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은 이렇게 나옵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45절 상)”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예고하신 것과 달리 예수님은 고향에서 영접을 받으셨습니다. 즉 환대를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체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에 대한 힌트를 우리는 오늘 성경 이야기의 45절과 48절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45절에 보면,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고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함인데요. 그것이 무엇인지를 48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특별한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존중하고 믿고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방식과 태도는 왕의 신하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나아왔다기 보다는 예수님께서 특별한 이적을 일으키신다는 소문을 믿고 그에 대한 기대로부터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서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요구에 대해서 처음부터 따라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해 주셨던 것은 그의 믿음으로 인함이 아니라 그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로마군대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신 이야기와 크게 대조됩니다. 어찌보면 두 이야기가 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비슷한 방식으로 얘기가 전개가 됩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로마군대의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죽을 병에 걸려서 이를 고침 받고자 예수님께 나옵니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가지는 관심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이 그 얘기를 듣고 백부장의 집으로 가려고 하자,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친히 오시지 않고 명령만 하셔도 나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왕의 신하는 직접 오셔서 고쳐달라고 했는데요. 이런 점에서 누구의 믿음이 더 크고 누구의 믿음이 더 진정성이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서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뿐만 아니라 그의 하인도 고쳐주셨습니다.
좀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습니다. 백부장은 로마군대의 장군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왕의 신하는 얼핏 백부장의 이야기와 혼동해서 이방인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방인이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속하고 머물고 있는 지역이 유대 갈릴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또한 유대 사람이라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또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앞서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를 세상의 구주라고 받아들였는데, 반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정말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했던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시며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불행하게도 유대인들은 온전히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것이 앞선 사마리아인들의 이야기와도 큰 대조를 이루면서, 유대인들의 온전치 못한 믿음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봅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또한 예수님보다 예수님의 이적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닌 그 이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그것이 온전치 못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한편으로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믿음은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에 있습니다. 옛말에,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이와 같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까지나 예배 받으시고 찬양받으시게 합당한 그 분 예수님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오늘 하루도 그 믿음 안에 거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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