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병에 걸린 사람들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1 rating
· 434 views

왜 예수님은 고창병을 고쳐주셨을까?

Notes
Transcript

인트로

어느 안식일날에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인 지도자들 중에 어떤 한 바리새인 집을 방문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자리 앞에는 수종병이라는 병을 앓으며 고생하고 있는 병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지도자등을 비롯해서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께로 집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지켜봤습니다. 예수님께서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안식일에라도 귀신들려 18년 동안 중병에 걸려서 고생하던 한 여인을 고쳐 주신 것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번에도 예수께서 수종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 주는 일을 하시면 그것을 트집 잡아서 예수님을 흠내고자 해서 여기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진 생각을 아시고는 수종병을 앓는 자를 바라보시며 바리새인과 율법선생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대답해 보아라.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이 물으심에 그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선 수종병을 앓고 있는 병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는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묵묵부답으로 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너희 아들이나 집에서 키우는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해서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 안식일이라도 당장에 끌어내지 않겠느냐?” 이 말씀에 그 누구도 이러쿵 저러쿵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고창병에 대해

이게 오늘 본문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병명이 하나 있는데, 수종병이 나옵니다. 혹시 뭔지 아시나요? '수종병(水腫病,dropsy) 옛날 성경에는 고창병이라 기억하는데, 헬라어는 "휘드로피코스" (물이라는 '휘도르'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이 병은 혈액 중의 액체성분이 혈관벽을 통과하여 신체조직 속이나 조직과 조직사이의 체강에 고인 상태를 말합니다. 체강(體腔)과 조직안에 형성되는 과다한 액체가 몸에 축적되어 몸이 붓는 병이지요. 신체의 여러부위에 복수가 차면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인데 당시에는 불치병이었습니다. 생명유지에 절대 필요한 기관에 생기는 질병의 증상이요, 생명이 위협받는 심각한 병인 것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수종병이 고창병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개역개정이나 한글성경에 수정이 되어서 지금은 수종병으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 옛날에 쓰여진 고창병은 잘못된 표현이어서 지금은 수정한 것입니다.
사실 고창병이라는 말은 동물들에게 사용되는 말입니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에 생기는 병이기에 동물에게 나타나는 병입니다. 그리고 고창병이 생기는 원인은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 삼킨 거친 풀· 나뭇잎· 열매들이 첫째위에서 다시 입으로 뱉어져 되새김을 하지 않고 막바로 4째위까지 통과하여 장으로 가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전혀 되새김으로 씹히지 않은 음식물이 장에 오면 소화 장애로 부패되었기에 수분도 흡수가 안되어서 배만 맹꽁이배처럼 잔뜩 부풀어 오르게 되고 소가 한 번 이 병에 걸리면 치명적이라 합니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위험한 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창자에 물이차서 북처럼 부풀어 생기는 병이라 해서 고창(鼓脹)병이라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휘드로피코스 즉 물과 관련된 그리고 물이 차서 생긴 병이기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창병으로 쓰였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동물의 병과는 좀 다르기에 현재 수종병이라고 수정한 것 같습니다.
여하튼 수종병 영어로는 Dropsy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물에 의한 병입니다. 물이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지구는 대략 70%정도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몸의 60%가 물이라고 합니다. 물이 없으면 죽고맙니다. 날마다 물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수액을 통해서 온몸에 영양분들이 전달이 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물이란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 주는 아주 소중한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물도 과하면 수종병처럼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것 같습니다. 적당함이 참 좋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물(事物)이 정도(程度)를 지나치면 도리어 안한 것만 못함이라는 뜻으로, 중용(中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분명히 물은 우리의 삶에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3일만 물의 공급이 없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 전체에 문제가 생기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심지어 생명에도 지장을 초래 한다고 합니다.
부족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 또 많이 넘치면 그것 역시 우리의 몸을 위험한 상태로 만들기도 합니다. 물은 우리에게 아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나치면 도리어 해가 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에서 오는 것도 문제이지만 넘쳐서 오는 것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물과 말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 또한 물과 같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 또한 언제나 필요한 물처럼 영적으로 생각을 해 볼때 날마다 반드시 필요한 물과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매일같이 말씀이 없다면, 물이 부족하면 목마름이 오는 갈증처럼 우리의 심령의 갈급함이 생기고 급기야는 몸에 심각한 일이 벌어지듯이 말씀도 부족하면 우리의 영혼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전에 말씀을 드렸듯이, 과유불급(過猶不及)! 바로 넘치면 오히려 안좋다는 그 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렇게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물이 우리를 해할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소견입니다만 이렇게 말씀을 바라보기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하필 수종병든자를 치유하셨을까요? 다른 병자들도 많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또 하필이면 안식일에 그를 고치셨을까요? 더군다나 안식일에 바리새인들 앞에서 말이에요.
수종병…물과 관계된 병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왜? 하필 물에 의해 피패된 몸을 치유하셨을까요? 그리고 그것도 안식일에 바리새인들 앞에서 말이죠?
전 이렇게 생각해 봤어요. 분명 무슨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물과 말씀을 같이 생각해 봤습니다. 물은 우리의 육신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말씀은 우리의 영이 숨쉬고 살아가는데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동의 하시죠?
그러면 수종병…딱 맞는 비유인것 같아요. 그것도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가장 많이 알고 말씀을 넘치게 알고 있는 그 바라새인들 앞에서 물이 넘쳐나서 수종병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을 통해 보여주시는 치유의 목적은 분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선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대로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안식일은 생명과도 같은 규례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상상도 못하는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세상 그 무엇보다 생명 살리는 일이 가장 큰 일임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아무리 높은 뜻을 가진 율법이라고 해도 안식일이라 하여도 생명을 살리는 일이 우선인 것입니다.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일은 하나나님의 뜻과는 다른 일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수종병이 걸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을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독이되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 생명의 말씀은 정말 소중하고 귀한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오히려 생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말씀이 아닌것입니다.
생명인 말씀을 그저 율법으로만 이해하고 그것만을 따르게 된다면 수종병에 걸리듯이 우리의 영혼도 수종병에 걸려 죽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그런 영적 수종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보이고 깨우치기를 원하셔서 수종병에 걸린자를 치유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귀한 말씀을 생명력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게 할 수 있을까요? 진리의 말씀을 알지만 온전한 이해가 되지 않고 그저 아는것만으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유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말씀을 먹는것일까요?
혹시 이런 일들을 경험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어느날 처음으로 성경의 내적인(영적) 비밀들을 접하면 너무도 기뻐서 놀라움에 젖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게 됩니다.
날마다 숨겨진 비밀들을 알아내느라고 다른 일은 뒷전이 되고 심지어는 집에 있는 아이들 밥 챙겨주는 일도 마다하고 이런 저런 모임에 열심을 냅니다. 일주일 내내 듣고 듣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유튜브라든 수많은 각종 SNS을 통해 많은 말씀들을 접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여기서 알아진 지식을 남에게 전달하느라고 또 여념이 없습니다. 이모임 저모임에서 자랑하듯이 이야기를 합니다.
어찌보면 참 은혜가 넘치는 일인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주 위험하기도 합니다. 소위 하나님과 주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 하여, 주구장창 말씀은 추구하나 삶에 적용하지 못하면 실제가 없는 공허한 이론일 뿐인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머리로만 알고 나의 영은 점점 수종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생명력이 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성육신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친히 낮고 천한 피조물로 내려와서 인생을 체휼한 수난의 과정이 있어야 실제가 되었듯이, 영의 말씀이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역동되어 자아를 죽이는 십자가가 있어야 그 말씀이 생명력이 있는 참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자신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처리하며 부활의 삶으로 사는 것을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없는 지식은 그저 이론일 뿐이고 그저 떠있는 관념뿐인 것입니다. 역동적인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처럼 자신은 지식의 허영 속에서 높은 구원을 성취한 것 같지만, 객관적으로 비춰지는 실재의 모습은 생명이 없는 그저 곧 썩어 죽을 그런 뿌리없는 생명을 잃은 나무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까 처음에 제가 고창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종병의 옛날 말입니다. 같은 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들에게 걸리는 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되새김질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아서 걸리는 병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결론

말씀의 되새김이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되새김질은 곧 묵상이라도 해도 될것 같습니다. 말씀의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영적인 고창병 즉 수종병이 걸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되새김질하는 동물들처럼 조용한 장소와 시간을 내서 그 말씀을 곰곰이 되씹어야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소가 풀만 먹어도 골수가 가득 찬 단단하고 굵은 뼈를 만들어내고, 영양이 풍부한 젖을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되새김질에 비밀이 있습니다. 되새김질은 소화 흡수를 완벽하게 돕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억새풀이라 할지라도 다 분해시켜 버려 몸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되새김질의 말씀묵상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뼈와 같은 견고한 믿음으로 형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어느 한 유튜브를 보니까 보기에도 버거운 양의 음식을 놓고 어떻게 먹어치우는 지를 보여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음식을 재미로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냥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탐식에 미친 사람들이고 돈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영의 세계에게도 이와 같은 일들이 있는것을 봅니다. 이곳 저곳에서 온갖 미디어를 통해 마구잡이로 말씀을 먹습니다. 토할때 까지 먹고 또 먹습니다. 탈이 납니다. 바로 고창병 수종병이 생기고 맙니다.
묵상이 없이 마구 먹어대서 배에 복수가 차는 무서운 병인 복수 수종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계속되면 온갖 성인병 증세로 시달릴 것입니다. 암은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던가요? 그래서 암(癌)이라는 한자에 보면 입구자가 세 개나 들어 있습니다. 영적인 암은 많이 안다는 교만의 도도함과, 다른 이를 정죄하는 증세로 나타납니다. 쉽게 치료되지 않기에 아주 치명적입니다.
많이 듣고서 소화만 잘 시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완전 금상첨화 이겠죠. 그러나 들은 만큼 실제가 안 된다면, 이것들이 쌓여 영적인 수종병인 교만을 초래하고 곧 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을 때에 조심할 것은, 듣는 것이 모두 구원이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들은 만큼 살아내지 못하면 모든 것은 쓰레기에 불과하고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습관적 신앙생활을 없애시기를 바랍니다. 혹여 우리가 그런 습관적 신앙생활을 한다면 단번에 일소하고, 말씀 앞에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이제 탈바꿈해야하는 때입니다.
그래야만 더이상 고창병에 걸려 생사를 오고가는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무분별하게 무조건 집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씹고 또 되씹고 묵상이라는 말씀의 되새김을 통해 살아서 생명력을 갖는 신앙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한 신앙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실제가 있는 살아 숨쉬는 건강한 신앙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그 길은 오직 말씀의 되새김인 묵상뿐입니다.
요한계시록 3:8 (NKRV) 후반부에 보면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합니다. 성도들을 칭찬하십니다.
8b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피아 성도들은 작은 능력(지식적으로 작은)으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결단코 배반치 아니함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을 승리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능력이 많아 보인다고 해서 건강하고 좋은것만은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처럼 비록 작은 능력으로도 주님의 말씀을 늘 되새김하는 묵상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삶가운데 지켜내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충만한 삶이 되어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고창병에 걸린 사람처럼 고생하지 마시고 빌라델비아 성도들처럼 작은 능력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늘 되뇌이면서 되새기면서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생명력 넘치는 말씀의 능력으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의 삶이 실제의 능력이 넘치고 살아 숨쉬는 그럼 신앙인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며 기도해 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