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9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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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 VS 1
480 VS 1
여러분~ 다들 한주 잘 보냈나요? 다들 시험도 치르고 주말에 컨퍼도 보내고 했으니 조금은 휴식을 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10월도 마지막 날이 되면서 날씨가 많이 추워진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우리 친구들도 롱패딩을 꺼내들고 오게 되겠죠?
딱 요시기가 이제 코트를 입기 좋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가을이 되면 트렌치 코트기도 하구요. 물론 이제 가을이라는 시기 자체가 너무나 짧아져서 소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트렌치 코트 하면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잘 모를 드라마인데요, 야인시대라는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드라마입니다.
구한말 조선을 주름잡았던 김두한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인데요, 이걸 방영했을 시기에 어린이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주먹으로 적들을 무찌르는 김두한의 낭만스러운 모습을 많이들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와서 보면 그 드라마는 싸우는게 중심이 아니라 김두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피는 것이 더 주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죠.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야인시대 하면 주먹으로 상대를 가르는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겁니다.
최근에 나왔던 구미호뎐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그 장면이 패러디돼서 나오기도 했더라구요.
이렇듯 우리들은 이러한 대결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썰들도 많죠. 바로 17대1이라는 내용이죠.
뭐 대부분이 허풍인 경우들이 많겠습니다만, 다수를 상대로 무쌍을 찍는 영웅의 모습은 참 멋있게 느껴집니다.
오늘 우리가 본 성경말씀도 그러한 무쌍을 담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인원은 850대 1이라는 엄청난 숫자이죠.
그럼 도대체 성경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850대 1의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승부는 어떻게 끝났는지, 또한 그것을 가지고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지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계속 보고 있는 열왕기상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인물 중심으로 진행이 되겠죠?
오늘 우리가 새롭게 볼 인물은 두 명입니다. 한명은 바로 아합이라는 인물이고, 다른 한명은 바로 엘리야라는 인물입니다.
가장 먼저 아합이라는 인물을 소개해드리죠.
아합은 이스라엘의 7대 왕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보았던 아합 왕이 38년 째 다스리던 해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러면 과연 이 아합왕은 하나님 앞에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북이스라엘에는 선한 왕이 없습니다. 아합 역시도 좋은 왕이 아니었죠. 심지어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길 정도였다고 말씀에서 말하고 있으니, 그가 얼마나 악한 왕이었는지를 살펴볼 수가 있겠죠.
그가 악한 왕이 되었던 것은 물론 자신의 책임도 있겠지만, 또다른 큰 영향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내 이세벨의 존재였죠.
이 이세벨은 이방 시돈 왕의 딸이었는데요, 바알과 아세라를 신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 왕을 비롯한 모든 북이스라엘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가 팽배하게 되었죠.
그런 북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기 위해 한명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오늘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인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어떤 말씀을 전했냐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 말을 한 이후로 북이스라엘에는 정말 엄청난 가뭄이 찾아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농사를 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수적으로 필요하죠. 가뭄이 찾아온다는 것은 당장의 식량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 후로 많은 날이 지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엘리야를 부르시고 아합에게 가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께서 다시 많은 비를 내리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악한 왕 아합의 죄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에 다시금 비를 내려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확실한 그의 뜻을 엘리야를 통해서 보이시고자 하십니다.
엘리야는 오바댜라는 인물을 통해 아합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아합이 엘리야의 예언 이후 가뭄이 찾아오니까, 엘리야를 계속 찾았기 때문이죠.
아마 아합은 그를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바댜 역시도 아합에게 가지 않을 것을 권하죠. 이미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후였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그의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그의 이 말에서도 그가 엘리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타나죠. 이 모든 가뭄의 원인을 자신의 죄악이 아닌 엘리야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거에요.
그러자 엘리야는 다시 아합에게 말하죠. ‘내가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따르기 때문이다’라고요.
그러면서 아합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이세벨이 그렇게 좋아하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지금 갈멜 산으로 모아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겠어요? 내가 지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 입장에서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아합에게 종교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네가 지금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방의 바알과 아세라를 믿고 섬기는데, 과연 어떤 신이 진짜인지 증명해보자’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번 이야기한 것처럼 바알과 아세라 신은 가나안 지역의 농사와 풍요의 신입니다. 당연히 그들이 존재한다면, 북이스라엘에 가뭄이 사라지고 비가 와야할 거에요.
그렇기에 엘리야는 이러한 상황이 아합왕과 북이스라엘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너무도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멜산으로 그 수많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으고, 자신은 혈혈단신으로 그들과 맡서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준비되자,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하나님과 우상들 사이에서 머뭇머뭇 할거냐, 여호와가 진짜 신이라면 여호와를 따르고,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그를 따르라!’
백성들은 이 선포에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찔렸던 것일까요.
엘리야는 또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다 죽고 나만 남았다. 하지만 바알 선지자는 450명이다. 그러니 송아지 한마리씩을 가져와서 제단 위에 놓고 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짜 신이다! 백성들이 그 제안에 다 동의합니다.
엘리야는 선공을 바알 선지자쪽으로 넘깁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소리칩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죠. 그 수많은 바알 선지자들이 제단 주위를 뛰어다닙니다.
엘리야는 그 상황에서 이들을 조롱합니다. 너네 신이 지금 잠깐 나갔나봐, 아니면 자고 있나?
그러자 바알 선지자들이 약이 올라서 더 열심히 부르짖죠, 심지어는 자해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오가 지나고 저녁이 찾아와도 아무런 응답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옵니다. 엘리야는 제단 주위에 열두지파를 의미하는 돌 열두개를 쌓고, 그 주변에 도랑을 파고, 4개의 통에 물을 채워 제단 위에 쏟아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단과 제물이 다 젖었겠죠. 엘리야는 이렇게 세번을 더 물을 붓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요. 제단이 물로 흥건하고, 그 도랑에도 물이 가득차게 됩니다.
여러분, 분명 이들의 대결 내용은 불이 임하는 쪽이 어느 쪽인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이렇게 붓는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것이겠어요?
그만큼 엘리야가 자신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죠.
게임으로 비유하면 뭐겠어요? 너는 풀템 다 끼고 해, 나는 맨몸으로 할게. 이런 것이죠.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의 성격을 볼 수가 있죠. 엄청나게 도발을 하는 성격이구나. 이전에 놀리기도 한 것을 보면 말이죠.
여하튼 모든 준비가 끝나고, 엘리야는 나아가 외칩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야가 이 말을 마치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로 불이 내려와 모든 번제물, 나무, 흙, 심지어는 도랑에 찼던 물까지도 다 태워버립니다.
엄청나게 많은 물이 부어져서 불이 붙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불이 붙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크기의 불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겠죠.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백성들은 엎드려서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신이시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명해 도망하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도록 합니다.
굳이 바알 선지자들을 왜 다 죽이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엘리야가 이렇게 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절하는 자들을 죽일 것임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엘리야 선지자가 모세와 같이 그 죄를 처벌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엄청난 종교전쟁, 850대 1의 대결의 승자가 누구임을 알 수 있나요? 바로 엘리야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임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승리를 거둔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임을 해도 850대 1로 싸워서 살아남는 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치트키를 써야지 그나마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 엘리야, 어떻게 임했나요? 우리가 보았듯이, 도발의 대가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대결을 제안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놀리고, 심지어는 물도 끼얹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죠.
여러분, 엘리야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에요? 북이스라엘 한복판입니다. 심지어 수많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죽음을 맞게 되었던 아합과 이세벨이 있는 곳이란 말이죠.
이정도면 아마 옆에 있는 백성들이 생각했을 때에는, 엘리야가 정말 죽고 싶어서 저러나 싶었을 수도 있을거에요.
그러면 도대체 엘리야갸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요. 저정도로 할려면, 마치 마블에 나오는 데드풀처럼, 죽지 않는 불사의 어떤 능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죠.
하지만 엘리야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러한 능력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엘리야는 그 누구보다도 연약한 사람이었어요.
오늘 말씀 이후에 엘리야는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집어 반드시 죽여버리겠다고 선언하니까 두려워서 도망을 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만큼 엘리야도 사실 우리와 똑같은 연약하고 두려움 많은 인간이었다라는 거에요.
그러면 엘리야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라는 거에요.
분명히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르시면서 오늘 비를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정말 엄청난 일들을 해낸 거에요.
여기까지 보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나요. ‘와 우리도 엘리야처럼 저런 엄청난 믿음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이 없구나! 엘리야의 믿음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될거에요.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방금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엘리야처럼 굳센 믿음 가지고 가는 것 당연히 중요하죠.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그 믿음이 어디서 오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오늘 말씀의 사건,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 모습을 다시 돌아보자구요.
여러분들 성경책을 갖고 계시면, 오늘 말씀의 앞뒤구절을 천천히 보면서 한가지 찾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가 나가서 바알 선지자들과 전투를 하라!라고 명하신 부분들이 있나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나가서 아합을 만나라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결국 뭐에요? 엘리야가 스스로 행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투의 주된 내용이 뭐였어요? 각자의 신들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번 잘 생각해보자구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우리가 부르면 오고, 안부르면 안오고 이런 존재이신가요? 그렇지 않죠.
부르면 오고 이런 존재라면 신이라 할 수가 없죠. 그러면 시리랑 빅스비랑 다를게 뭐에요.
사실 하나님을 불러서 소환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는 무례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내가 말로 제한시켜버린다는 것이니까요.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당장 대통령만 해도 우리가 투표로 세운 사람이지만, 부른다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뭐 잘하면 올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 거절하겠죠.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나요? 엘리야의 부름에 응답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과 이렇게 할테니 해주십쇼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불렀는데 응답을 해주셨다라는 거에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우리에게 맞추어주신다라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그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맞추어주십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맞추어주심이라고 표현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뭐가 있겠어요? 바로 계시된 말씀이겠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런 우리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엄청난 지식들을 우리 인간의 시선에 맞추어 문자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맞추어주심의 궁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 엄청나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행하셨다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가장 큰 맞추어주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늘 말씀에서 엘리야에게 맞추어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언제나 함께하시며 그의 필요에 따라 맞추어주십니다.
결국 엘리야가 굳센 믿음을 갖고 목숨을 내놓은 사람처럼 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맞추어주시며 합당한 믿음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삶은 어떨까요. 아마 엘리야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혈혈단신으로 수많은 이방 우상들 앞에 서야했던 것처럼, 우리들 역시도 늘 세상의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오래되었던 것처럼,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늘 세상의 유혹과 공격 앞에 서있게 됩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지금 이 한시간이라도 공부해야한다. 지금 친구들은 나중에 다 소용없다. 신앙생활은 나중에 해도 괜찮다. 성경이 점수를 올려주냐와 같은 여러 말들이 여러분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가뭄이요, 들리는 것은 우상들의 소리뿐이었던 엘리야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합 왕에게 나아가라. 내가 비를 내릴 것이다.’
그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 내가 너희를 통해 희망을 보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전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통해 세상의 가뭄을 없앨 수 있는 비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은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850 대 1이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 앞에 맞서야 했던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정말 겪고 싶지 않은 부담스러운 상황들이 다가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크신 능력으로 엘리야에게 맞추어주셨던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분명 함께하시고 맞추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친구들, 언제나 하나님을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찾을 수는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모습들이 여러분들 가운데 있어서는 안됩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더라도, 그 순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맞추어주시며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나의 자랑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방금 여러분들께 언급해드렸던 것처럼, 그렇게 강한 믿음을 가진 엘리야는, 모든 것이 끝나고 크게 승리했음에도, 이세벨 앞에 두려워 무너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누리려고 한다면, 그 즉시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의 공격에 쉽사리 무너지고 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그로 인해 850대 1을 이겨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그러한 모습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하나님을 부르짖고, 언제나 하나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을 하나님은 너무나도 기뻐하시고,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그 순간마다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으로 세상 속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그리고 그 승리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우리 모든 하늘고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예수 늘 함께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