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7 금요기도회: 누가복음 7: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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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날마다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혜를 받았음에도 저희는 저희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저희의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서 삶 속에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7:36-50 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7:36–50 NKRV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빚을 빌려주는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빚을 져본 적이 있으십니까? 여기서 빚은 우리가 보통 돈을 생각하겠지만, 돈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마침 필요한 것을 누군가가 내어주었다든지,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가 도와줬다든지,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든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빚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유로 삼으셔서 한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예수님이 빚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신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빚을 갚으라는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빚지지 말라는 이야기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 자리로 초대했다고 3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앞 본문인 30절에서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과 대화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이 그 자리에 같이 있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꺼이 바리새인의 초대에 응하십니다. 앞에서 바리새인을 비판하셨지만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이 식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서 연회였습니다. 40절을 보시면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존경합니다. 그래서 존경하는 차원에서 예수님을 대접해드리는 연회인 식사 자리였습니다.
이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주 즐겁고 풍족하게 누리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아주 충격적인 사건이 됩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연회는 아주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37절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이 연회에 예수님께서 참석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뒷편으로 가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꼬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언틋 보면 “이게 왜?”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회의 주최자인 바리새인, 더 정확하게는 이름이 시몬인 이 바리새인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 여인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성경이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도덕한 행실 때문에 죄인이라고 불린 것은 확실합니다. 부도덕한 행실을 한 죄인인 여인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발을 닦고 향유를 붓는데 예수님은 그저 가만히 계셨습니다.
이 모습은 시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죄를 지어 부정하게 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예수님의 몸을 만진다면 예수님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몬에게 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면 시몬은 그저 보고만 있지 않고 이 여인을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제지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지하지 않으셨고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시몬은 39절에서 예수님이 선지자였다면 이 여인이 죄인이고 가까이해선 안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의 주님은 다르십니다. 주님은 바리새인 시몬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십니다. 주님은 시몬의 마음을 아시고 40절에서 “시몬아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시몬은 “선생님 말씀하소서”라고 여전히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 존경을 표현하지만 이 둘의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빚진 자들의 이야기를 시몬에게 들려주십니다. 41-42절입니다.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빚 주는 사람을 더 사랑하겠느냐?”
한 데나리온은 당시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열 배나 더 많은 빚을 졌습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고 가정할 때, 이 두 사람은 2달치의 임금과 1년 9개월치의 임금의 빚을 졌다는 뜻이 됩니다. 어마어마한 차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빚을 진 이 두 사람은 빚 갚을 능력이 없었을 겁니다. 또한 그들이 빚을 면제받을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이 빚을 갚아야 빌려준 사람의 손실이 생기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빚을 대금업자는 아무 조건 없이 탕감해줍니다.
또한 빚진 자들은 대금업자가 자신들의 빚을 탕감해주리라고는 기대조차 안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라도 만일 돈을 빌렸다면 빚을 탕감해주는 기대를 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빚을 갚은 돈이 전혀 없는 자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탕감해준다는 소식은 대단히 기쁜 소식이 됩니다. 빚을 탕감받을 자격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빚을 탕감받는다는 것은 감사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은 42절에서 시몬에게 질문하십니다. “두 빚진 사람들 가운데 누가 대금업자를 더 사랑하겠는가?” 이에 시몬은 43절에서 “많이 탕감을 받은 자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의 판단이 옳다”고 시몬의 생각을 인정해주십니다.
정답을 말한 시몬은 이제 얼추 예수님이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지 눈치챘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제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이 비유를 해설하십니다. 44-47절입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너의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는데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나에게 입맞추지 않았는데 그녀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았고, 너는 내 머리에 올리브유도 붓지 않았는데 그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세 가지 행동과 함께 그것을 시몬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한 세 가지 행동은 예수님의 발을 씻은 것, 발에 입맞춘 것, 그리고 향유를 부은 것입니다. 이 행동은 모두 어떤 대상 존경하고 존귀하게 여길 때 하는 행동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모두 시몬이 할 수 있었던 행동들입니다.
시몬은 그가 ‘선생님’이라고 말한 것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정말 예수님을 존경했다면 종을 시켜서라도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었을 겁니다. 그리고 뺨에라도 입을 맞췄을 것이고, 올리브유라도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을 겁니다. 하지만 죄인이라고 불리는 여인은 시몬보다 더 정중하게 예수님을 섬깁니다. 종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발을 씻었고, 수치스러운 행동일 수 있는 발에 입맞추고, 값싼 올리브유가 아닌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시몬에게 알려주시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이 이야기 속 고리대금 업자는 하나님이시며, 빚은 죄이며 적게 빚진 자는 바리새인, 그리고 많게 빚진 자는 여인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은 죄인을 멀리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몬에게 자신이 왜 죄인들에게 다가가는지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빚을 지지말라는 뜻이거나 고리대금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500 데나리온을 값없이 탕감해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행위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48절에서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인의 행동으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여인의 많은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이런 행동들을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바로 이 행위들입니다. 이 여인의 행위는 자신이 이미 죄 사함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50절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34절의 예수님의 말씀과 오늘 본문을 연결시켜 이 여인이 그 죄인 중 한 사람이며 죄인의 친구라는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이 여인이 믿었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는 여인의 믿음이 그녀를 구원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몬에게 전하시려는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시몬은 이 여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적게 빚진 자로 비유가 되어서 실제로 그의 죄가 여인보다 적다는 것으로 해석이 될 수 있지만, 사실 빚의 많고 적음은 죄인인 본인들의 생각입니다. 시몬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적다고 생각했고, 여인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몬은 죄인인 여자를 멀리하는 것과 같은 율법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께 진 빚이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이 시몬도 여인과 마찬가지로 많은 빚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몬과 같은 바리새인들은 49절에서 “예수가 누구이길래 죄도 사하는가”라며 예수님의 권세를 의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생각처럼 우리 힘으로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듯이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는 500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처럼 너무 큰 죄를 지은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오늘 본문의 여인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예수님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우리는 그분을 향한 존경과 사랑의 행동들을 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많은 빚을 탕감받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아직 세상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빚을 탕감시켜주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빚을 탕감시켜주신 분이 계심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오늘 본문의 시몬과 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죄인이 오면 눈쌀이 찌푸려지고, 초라해보이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 교회에 오면 가까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많은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망각하고 적은 빚만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가 그들과 우리가 똑같이 많은 빚을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기꺼이 복음을 전합시다. 우리에게 값없이 빚을 탕감해주셨으니 우리도 값없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합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많은 빚을 탕감받은 자들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우리 주변에 아직 자신이 많은 빚을 탕감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의 여인과 같이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빚을 탕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빚을 탕감해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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