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와 땅들과 열매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6 viewsNotes
Transcript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은 비유장으로 많이 알려진 마태복음13장 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을 많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9절까지 읽으시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나요?
다시 한번 읽어보실까요?
제자들은 뭔가 이상했는지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무엇때문에 제자들이 이상히 여겼을까요?
아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접하는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서 였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비유를 사용하는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듯 사전적인 의미를 인터넷에서 찾아 봤습니다.
비유의 목적
대개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을, 타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타인이 당연히 알고 있는 이미지나 우화를 예시로 전하고자 하는 바의 내용을
강조하여 생동감있는 표현으로 타인을 공감시키고 설득하는 것
일반적으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고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합니다.
즉 이해가 어렵거나 난해 할 때 이해를 돕기 위해 주로 비유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너무 쉬운 이야기인데 왜 비유를 사용해서 이야기 하시지?
여러분들도 9절까지 읽으시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다고 여기신 내용이 있으신가요?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을만한 땅에서 많은 열매가 열린다는 내용이 뭐가 어려워서 비유를 사용해야만 하는 건가?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헌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일상적인 문학적인 용법인 비유의 목적에 대입해서 오늘의 본문을 읽으시면
예수님의 의도와 전혀 반대로 읽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비유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숨기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확실히 하고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사야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는 “나를 보내소서” 하며 자원하며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갔습니다.
한데 그런 이사야에게 나의 말을 깨달을 까봐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대상은 두 대상으로 나뉩니다.
2절을 보시면 “큰 무리”로 표현되어 있고.
10절을 보시면 “제자들” 로 되어있습니다.
문자적으로 같은 내용의 비유를
깨닫지 못해야 하는 대상은 큰 무리 이고
깨달아야 하는 대상은 제자들 입니다.
숨기기 위한 대상은 큰 무리 입니다.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한 대상은 제자들 입니다.
즉 큰 무리와 제자들 두 대상에게 이 비유를 말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이 두 대상 모두 이 내용을 들으면 각자가 나는 잘 이해 했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큰 무리도 제자들도
누가 이 말씀을 듣고 난 이해 못하겠어 반응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 들이 이 비유를 이해한 내용은 상반된 것이기에
하나님에 보시기에는 깨닫는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로 나뉘인 다는 것입니다.
비밀을 숨겨야만 하는 자와 비밀을 알게하는 자로 나뉘인 다는 것입니다.
그럼 큰 무리는 어떻게 이해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제자들은 어떻게 이해 하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이 두 분류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나를 알기위해
여기서 주요하게 인식해야할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
씨
땅
열매
1. 농부는 하나님 입니다.
2. 씨는 말씀(천국 말씀, 복음)입니다.
3. 씨뿌리는 자는 말씀을 전달하는 자를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구약의 선지자들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제는 땅과 열매 입니다.
땅은 4종류의 땅으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화 시키면 열매를 맺는 땅과 아닌 땅으로 나뉘게 됩니다.
먼저 열매가 누구에 의해서 맺게 되는 것입니까!
농부와 씨의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땅도 필요하지만 땅이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은 자신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농부의 노력으로 앞의 열매맺지 못하는 땅을 좋은 땅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열매맺지 못하는 땅이 자기 자신의 토양의 성질과 환경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오늘 말씀을 읽으시면서 나는 어떤 땅일까 생각하면서 뭔가 부족하다 판단되어지만
언젠가는 열매를 많이 맺는 좋은 땅으로 바꾸어야지 다짐하면서
앞으로 어떤 열심과 생활을 할까 계획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너희들이 내가 씨를 심어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좋은 땅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큰 무리와 다를바 없다라는 것입니다.
땅은 수동적인 존재 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안 좋은 땅인데 열심히 노력하여서 좋은 땅으로 능동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 땅인 것입니다.
땅은 받아 들여만 하는 존재 입니다.
즉 여기에 표현한 땅들은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신대로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해석의 문제가 되는 두가지중 하나인 땅은 수동적인 존재라고 해결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는 열매를 이해해야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 열매의 내용도 땅의 내용과 공유합니다.
바로 열매도 수동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해주십니다.
좋은 땅도 열매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다는 것을 우리는 이 비유 속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하나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단 1%도 열매를 맺는데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내가 30배를 맺게 하지도 못하고 60배도 못하며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에도 내가 노력할 수 없는 부분인 것입니다.
이 30배 60배 100배도 하나님이 결정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열매를 받아 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이 맺게 해주시는 열매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것을 알려면 이 두분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큰 무리와 제자들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택함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입니다.
먼저 큰 무리는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신약에 많이 거론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리새인 입니다.
바리새인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렇게 이해할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지? 하면서
자신의 율법 지킴을 돌이켜 볼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3가지 땅으로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내가 100배 인가 60배 인가 30배 인가를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알려할 것입니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제자들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 뭐라 말하였나요?
아무 열매 맺은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누가 보아도 부자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켰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된 인간의 시각과 기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시 말해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맺게 해주시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내가 죄인입니다를 깨닫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의 고백이 또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천국의 말씀인 복음이 뿌려 졌을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말씀을 지켰나 계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하였나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그럼 난 어떤 종류의 땅인가 생각하신 분들 계시죠!
저는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을때
나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난 길가라고 여기시고 돌짝밭이라 여기시고 가시덤불 이라고 여기시면서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바로
하나님 기준에서는 좋은 땅 즉 난 죄인이라서 열매를 내세우기는 커녕 부끄러움에 죄인이라 고백하는 자가
좋은 땅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난 어떤 종류의 땅이지 걱정하는 분은 바로 그분이 좋은 땅 입니다.
열매 맺기를 즉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밀이 열리는 시작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다른 신앙의 열매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 이구나를 깨닫는 것이 바로 이 열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 사이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사야는 역할을 무엇입니까?
선지자 입니다.
선지자의 주된 사역의 내용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죄를 깨닫고 회개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행위의 열매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닌 심령의 열매인 죄를 먼저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노력해서 얻나요?
죄책감을 계속 가중시키고 세뇌시켜서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건가요?
인간의 죄는 하나님께 깨닫게 해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죄를 깨닫는데 왜 백배 육십배 삼십 배 로 표현했을까요?
인간의 죄성은 아주 집요합니다.
그 죄성 중에 하나가 남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30 60 100
이 문구를 보는 순간
열매가 천국 상급이면
또 지상에서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겠다 생각을 할 것입니다.
반대로 열매가 죄를 깨닫는 것이라면
난 아마 30배 정도 일거야 하면서 축약하려는 비교를 통해 자신이 더 나아야 한다는 죄성 말입니다.
이것은 숫자적으로 측정이 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느껴지는 감정이 다른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본문에는 반대로 삼십배 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한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나에게 30만원 60만원 100만원 주어졌다면
비교하면서 불평하겠지요
한데 30조 60조 100조 가 주어진데도
비교하면서 불평할까요?
물론 불평과 물만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30조를 받는다면 그 이상의 것을 받는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죄는 얼마일까요?
그 죄를 사함 받고 천국 간다는데 하나님께 왜 내가 60배 100배 가 되지 않냐고 따지겠습니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30배던 60배던 100배던 말입니다.
이미 난 죄인인 것을 인정했다고 이 말씀이 우리의 앞날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큰 은혜를 깨닫고자 원하다면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성경을 비추어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확대하듯이 말씀속에서 우리의 죄를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확대하면 할 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께 더 나아갈 것이며
더욱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속에서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말씀속에 죄를 확대하는 것은 세상속에서 말하는 죄책감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렇습니다.
큰 무리 안에는 바리새인도 있을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도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 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이 비유를 들으면 내가 노력하여 얻어낸 열매를 생각할 것입니다.
어떠한 방식의 열매일까요? 율법을 얼마나 많이 철저히 지켰는가가 열매의 척도고
그것이 많다고 생각되면 좋은 땅이고 율법을 잘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3종류의 땅이라 생각하겠지요
즉 큰 무리에게 좋은 땅의 근거인 열매는 율법 지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 열매는 땅의 성질 즉 수동적인 것처럼 열매도 수동적인 것입니다.
땅이 자기를 좋은 땅으로 만들수 없듯이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씨를 받고 물과 햇빛을 골고루 받아 야지만 열매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받고 받고를 강조했습니다.
즉 이 열매도 하나님이 맺게 해주는 열매여야만 그 땅이 좋은 땅으로 판명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