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적 믿음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빌립보서 2:1-11
개인의 믿음, 공동체의 믿음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에 비유했다. ‌어린시절동안만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어른이 되고 드디어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이 교회라고 말한다. ‌키프리아누스라는 사람은 ‌너는 교회를 너의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너의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라고 말을 한다. ‌우리 개개인의 자아상은 온전치 못하다. 물론 정말 건강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문제, 부모와의 문제, 개인의 문제 등으로 병든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건강한 믿음을 가지기에는 참으로 어렵다. 내가 경험한 세상의 부정적인 인상들이 믿음을 온전히 받아 들이게 하지 않을 뿐더러 그 믿음대로 살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이상한 대상으로 자신이 바꿔버린다. 성경에서 배운 율법이나 하나님의 이야기가 삐뚤어진 나와 만나서 나에게 우상신처럼 되거나 왜곡된 종교인의 모습을 가지게 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빌2장의 말씀은 공동체, 교회 안에서 격려, 위로, 교제, 자비를 경험하라고 권면한다. 또 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마음이 되라고 한다. ‌왜 예수님은 자신 안에 거하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향해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하실까. ‌우리는 개인적으로 구원받는 일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서는 절대 성화를 향해 살아갈 수 없다. ‌왜나햐면 서두에서 말한 것 처럼 삐뚤어진 나의 자아상으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혼자서 바로 세우기가 쉽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를때 성인이라 하지 않고 성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거룩한 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는 단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빌립보서2장에서 바울이 말한 이 말씀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이야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 이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었고 우리를 향한 사랑에 의해 나난탄 것이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혼자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표현을 통해 믿음을 확신하게 하신다. ‌교회안에서 믿음의 대한 격려도 받지만 조언을 받고 ‌내 삶의 대해 격려도 받지만 ㄱ내 생각의 대해 지지도 받지만 조언도 받는다. ‌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에 비유했다.
어린시절동안만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어른이 되고 드디어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이 교회라고 말한다.
키프리아누스라는 사람은
너는 교회를 너의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너의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라고 말을 한다.
우리 개개인의 자아상은 온전치 못하다. 물론 정말 건강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문제, 부모와의 문제, 개인의 문제 등으로 병든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건강한 믿음을 가지기에는 참으로 어렵다. 내가 경험한 세상의 부정적인 인상들이 믿음을 온전히 받아 들이게 하지 않을 뿐더러 그 믿음대로 살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이상한 대상으로 자신이 바꿔버린다. 성경에서 배운 율법이나 하나님의 이야기가 삐뚤어진 나와 만나서 나에게 우상신처럼 되거나 왜곡된 종교인의 모습을 가지게 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빌2장의 말씀은 공동체, 교회 안에서 격려, 위로, 교제, 자비를 경험하라고 권면한다. 또 같은 생각, 같은 사랑, 한마음이 되라고 한다.
왜 예수님은 자신 안에 거하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향해 믿음의 경주를 하라고 하실까.
우리는 개인적으로 구원받는 일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서는 절대 성화를 향해 살아갈 수 없다.
왜나햐면 서두에서 말한 것 처럼 삐뚤어진 나의 자아상으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혼자서 바로 세우기가 쉽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부를때 성인이라 하지 않고 성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거룩한 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는 단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빌립보서2장에서 바울이 말한 이 말씀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이야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 이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었고 우리를 향한 사랑에 의해 나난탄 것이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혼자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의 표현을 통해 믿음을 확신하게 하신다.
교회안에서 믿음의 대한 격려도 받지만 조언을 받고
내 삶의 대해 격려도 받지만 고쳐나가야 될 것의 대한 도전을 받는다. 삐뚤어진 나의 모습이 교회안에서 섬김을 통해 고쳐나가진다. 기독교는 공동체를 이야기하지 개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타 종교는 개인의 수양으로 종교적 목적을 이룰 수 있지만 기독교는 절대 불가능하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삼고 우리로 각 지체가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함께 안으로 들어오려고 몸부침 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어느세 점점 불이 꺼져 가게 된다.
1절부터 4절- 서로를 향한 노력이 곧 예수가 보여주신 사랑을 닮는 것
11절에서 모두가 예수그 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며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하셨다.
종교개혁주일이다.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개인의 믿음, 개인의 구원, 개인의 속죄만 가르쳤다. 교회의 권위와 개인과의 관계였다.
종교개혁으로 교회 공동체가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믿음의 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움직이는 교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라고 말하니까.
나 혼자서 교회니까 교회 다니지 않아도 교회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잘못된 교회관이다.
그리스도안에, 몸에 붙어 있어야 우리는 각자가 교회가 되는 것이다. 몸의 한 지체로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산속에서 홀로 믿음생활 하며 구원받을 수 있겠지. 확신할 수 없다. 왜, 잘못된 나의 자아와 만나 하나님을 이상하게 섬길 수 있다. 정화수 떠놓고 절하면서 하나님을 에배할 수 있다. 동굴에서 촛불켜고 수백번 절하면서 회개의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나의 믿음을 교정받고 삶을 교정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가치를 서로 공유하게 됨으로
우리는 온전한 성도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성현이가 함양에서 보건소에 있지 않고 매주 올라와야 하는 이유, 혜원이가 힘을 다해 논산 산속을 벗어나 달려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화된 삶을 향해 함께 나가는 것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말씀을 다시 한목소리로 읽고 마치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