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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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의 일곱 번째 복은 바로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에이레네. 이 에이레네는 한글 성경에는 화평 혹은 평화, 평안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이 됩니다. 그런데 헬라어로는 한 글자입니다. 에이레네 영어로 피스, 영어는 그냥 피스로 하나로만 번역이 됩니다.
이 에이레네는 그 당시에 굉장히 익숙한 단어였습니다. 로마 제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그래서 팍스 로마나라고 하죠. 라틴어로 로마의 평화의 시대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1세기 2세기 시대에는 각 나라와 나라의 전쟁들이 거의 다 그쳤습니다. 잦아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강력한 로마 제국이 그 당시의 모든 나라들을 잠식해 갔습니다. 지배해 갔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전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지 다 정복했습니다.
사진1 이 콜로세움도 로마 제국이 세운 거죠. 강력한 군사력으로 팍스로마나
사진2 이렇게 피를 흘려가면서 이 평화를 얻은 것이죠. 그래서 그 당시에 로마 제국이 점령한 땅을 지도로 보겠습니다.
사진3 이 정도로 전 유럽과 서아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까지 다 점령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도 로마 제국의 정복을 당했죠. 그런데 전쟁이 힘으로 억제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평화라고 말하지만, 화평을 이루었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화평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피지배 민족들이 늘 불만에 가득 찼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지 못했지, 억지로 참았을 뿐이지, 진정한 화평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화평을 가지고 오는 사람은 바로 로마 황제다라고 믿었지만, 그 화평은 진정한 화평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 이후에 한 40년 후에 ad 70년경에 그 유명한 유대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유대 전쟁 7년 동안 무려 130만 명의 유대인들이 다 죽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성벽이 다 무너졌습니다. 진정한 화평을 이루지 못했다는 방증이죠. 여러분 진정한 화평은 언제 부어집니까?
여러분 세상에서도 화평, 평화를 원한다라고 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 원하는 평화가 너무나 이 땅 가운데 오지 않죠. 인간이 평화를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경험해 보니까 이 엄청난 싸움을 경험해 보니까 이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걸 다 잃어버리는 거구나라고 하는 걸 느낀 겁니다. 쌓아 올렸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 소중했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것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이 전쟁이라고 하는 상황 속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은 이 평화가 중요하고 평화는 소중하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는 거죠.
문제는 무엇입니까? 평화가 중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알지만 세상은 결코 평화롭지 않더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끊임 없는 전쟁의 소식들이 들려오는 것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국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만 문제겠습니까? 우리 개인들도 정말 평화롭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도 늘 다툼이 있고 갈등이 있고 싸움이 있죠. 심지어 우리의 가정도 화목하다고 느끼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부부 간의 갈등, 내 몸에서 낳은 자식이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싸우고 갈등이 있다. 교회도 천사들만 모여있습니까? 마찬가지다.
세상은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유는 진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바른 진단이 있어야 됩니다. 모든 평화를 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화평을 추구한다고 해도 실패하는 것이죠.
우리 예수님은 이 본질의 문제, 화평, 평화를 깨는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해결하심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을 만들어내고요.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평도 만들어내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이 평화를 깨뜨리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답을 주는 곳이 이 창세기 3장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에는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죄를 지었고 그 죄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가 나오죠 거기에는 뱀의 유혹이 나오고 그 유혹을 받은 최초의 인간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으라라고 하는 제안을 하고요. 그것을 먹으면 넌 하나님처럼 될 거야라고 하는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해서 이 아담과 하와가 반응해서 한 일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었고 그 먹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때 인간의 생각은 무엇이었냐면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압박하고 있는 이 신을 버리면 우리가 신이 되어서 신처럼 재미있게 즐겁게 행복하게 모든 걸 다 누리면서 살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타난 결과가 무엇이었냐면요 모든 관계가 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죠.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져버렸습니다. 창세기 3장 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어디에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인간은요 하나님께서 동산에 오시면 쪼르르 뛰어가가지고 하나님 앞에 붙어 가지고 동산을 거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니는 것 이게 창세기 에덴 동산의 장면 중에 가장 멋있는 장면 중에 하나였어요.
근데 여러분 지금 인간이 죄를 지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시는데 하나님께서 에덴에 오셨다라고 하는 낌새를 눈치 챈 아담과 하와가 하는 일은 뭐냐면요 나무 숲을 가운데 들어가 가지고 거기에 숨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옆에 가가지고 함께 붙어가지고 함께 이 동산을 거닐었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숨어가지고 자기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더라는 거죠.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간이 맺고 있었던 그 사랑의 관계, 조화로운 관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하고 서로 보고 싶었던 그 관계가 완전히 깨진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피조물을 만들었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멋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다음에 감탄하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다라고 말했던 게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끊어져서 하나님이 오셨는데 인간은 숨어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신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그 인간이 신이 되려고 했었던 그 선택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리멀리 떠나고 도망가고 숨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이렇게 끊어져버리고 나니까요 그 다음에 그 끊어짐이 다른 모든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있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아담은 이렇게 대답을 하죠 창세기 3장 12절에서요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의 열매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되게 나쁜놈이죠. 어떻게 나쁘냐면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는 거예요. 나는 전혀 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하나님 당신이 나에게 주셔가지고 나와 함께한 그 여자! 그 여자가 나한테 줘가지고 나는 먹을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그 여자 때문에 먹은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비겁합니까?
아니 하와라고도 이야기하지 않고요 내 아내라고도 이야기하지 않고요. 당신이 내게 줘가지고 나와 함께 살게 한 이것은 다 떠넘기는 거죠. 다 떠넘기고 실제로 그 여자가 나한테 줘가지고 그걸 먹은 거니까 나는 죄가 없고 저 여자가 죄다.
여러분 이게 가능한 말이고 할 수 있는 말인 걸까요? 여러분 이건요 거짓말입니다. 아담은요 하와가 죄를 짓는 과정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아담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과정에 동참했습니다. 하와가 아담을 속여 가지고 이걸 먹인 게 아닙니다. 또 힘으로 아담의 입을 쫙 벌려가지고 이 안에 막 집어넣으면서 먹인 것도 아니라는 거죠. 지가 받아가지고 자기가 먹었습니다.
여러분 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이걸 먹었다라고 하는 건요 이 모든 과정에 대해서 동의했다라고 하는 걸 의미한다라는 거죠. 그런데 이 순간 하나님께서 물어보니까 이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요 아담이 하와를 처음 만났을 때 뭐라고 고백했는지를 한번 보십시오. 창세기 3장 23절에서요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리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이건 인류 최초로 사랑에 빠진 시인이 만든 시입니다. 여러분 인류 최초의 사랑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예요. 너는 나고 나는 너의 안에 있어 이런 거예요. 이렇게 이는 내 뼈 중에 뼈고 살 중에 살이다라고 하는 건 내 몸에 있는 모든 뼈 중에 너라고 하는 게 가장 소중하고 내 몸에 있는 모든 살을 떼어낸다 할지라도 너보다 소중하지 않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렇게 말하면서 데리고 갔다고요 이렇게 말하면서 꼬셨다고요
이렇게 말하면서 결혼했단 말입니다. 그러면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이 왔으면 듣고 있다가 하나님이 지금 화가 나셨고 지금 뭔가 이 일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때 어떻게 합니까? 혹여나 내가 좀 잘못을 덜한 것 같다 할지라도 앞에 탁 나가가지고 하나님 제가 대신 죽을게요. 막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이 순간에 딱 나가가지고 앞에 서가지고 하나님 아내도 잘못한 게 있고 나도 잘못한 거 있지만 제가 책임져야죠. 저를 때리세요 절 패십시오. 아내는 건들지 마세요. 이렇게 해야 되는 거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뒤에서 이제 아내가 보고 우리 남편 내가 좀 잘못했지만 참 훌륭하다. 멋있다. 저런 남편이라면 쫓겨나도 같이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할 거 아니에요?
여러분 이 뒤로 아담과 하와의 사이가 어떻게 됐을까요? 아담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던 하와의 눈빛은 어땠을까요? 결혼 안해서 모르겠죠? 전 느껴져요 진짜 그 뒤로 둘이 사이가 안 좋았어요. 평생 사이가 안 좋았을 걸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해야 될 관계고요 지켜줘야 될 관계고요 서로가 서로의 책임 줘야 될 관계고요. 살 중에 살이라고 불려지고 뼈 중에 뼈라고 불려질 관계였는데 죄가 그들 가운데 들어오니까요. 이런 식으로 사이가 깨지고 망가지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과 깨어져버린 관계는요 반드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관계를 깨뜨리는 것으로 연결되더라는 거죠. 거기다 여러분 이렇게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 창조하실 때의 모습은 샬롬이었습니다. 이 평화의 세상, 샬롬의 세상을 만드신 다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하는 걸 하나님은 여러 번 반복적으로 외치셨던 거죠. 서로가 서로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섬기고 세워주는 관계였고 채워주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 땅을 저주하심으로 이 땅의 모든 종류의 평화가 깨어져버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죄가 들어왔고 그 죄가 화평을 깨뜨려 버렸고 이 세상이 아무리 지금 화평을 원한다 할지라도 세상이 가지고 있는 모든 힘과 능력을 다 동원한다 할지라도 세상은 결코 화평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죠.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의 소식이 끝없이 들려오는 것은 이 평화를 깨뜨린 인간 중심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라라고 하는 이 주님의 명령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되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요 분명 우리한테 화평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과연 가능하냐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인류가 이 일에 실패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화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게 정상인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화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유가 바로 화평을 만들어내신 분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 속에서 이미 어떠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에베소서 2장 14절을 통해서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신의 육체로 허시고라고 말하는 거죠.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분은 화평이십니다. 그런데요 이 에베소서 2장에 나와 있는 이것과 이것 둘 사이에 막힌 것을 허물었다라고 하는 것은 먼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혀 있는 담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담과 자기를 부딪혀 가지고 이 담을 허무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평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걸 의미하고요. 이 담을 허무신 분이시다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화평이 없었습니다. 샬롬이 깨어져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만날 수 없었고 하나님은 인간과 만날 수 없었고요. 인간과 인간은 서로 화목하고 화평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의 육신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평을 만들어 내셨다라는 거죠.
그래서 누가복음 2장 14절을 보면은요 천사들이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태어나는 장면에 대해서 찬양을 하는데 이렇게 찬송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말하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되는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은 평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깨어져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깨어져 있는 관계를 회복하는 분으로 예수님이 날 때부터 그 역할을 가지고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깨어져 있는 관계를 회복하러 오신 이 그분이 바로 샬롬이었고 평화였고 평강의 왕이신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굽니까? 이 화평케 하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맡긴 자들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 가운데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그분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막힌 담을 허무셨으며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람들 사이에 세워놓은 어떤 막힌 것들을 이미 허물어내셨다는 것이죠. 이 일이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서 행하신 그 일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 누리는 것이고 사람들 속에서 화평을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여러분 인류는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생명들은 지금 이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화평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 뭘까요? 여러분 화평이라고 하는 걸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나”라고 하는 또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행동의 방식이 있다면 그게 뭐냐는 것입니다. 그건요 자기 희생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화를 이루려고 하면은 내가 가지고 싶은 걸 다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다 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다 내가 챙기겠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절대로 화평에 이를 수 없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손해 볼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들을 손해 볼 때 이 화평이라고 하는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은 절대로 이 자기 손해라고 하는 걸 받을 수가 없다라는 거죠. 왜요? 여러분 죄의 본질은 뭐냐하면 내가 내 인생의 왕이라는 거예요. 모든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사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모든 걸 다 끌어 당겨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게 죄인 된 인간이 살아가는 죄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일을 통해서 자기가 또 다른 종류의 어떤 보상을 원하는 겁니다. 결국에 그건요 투자라는 거죠. 내가 뭔가 내어주는 것 같지만, 내어주는 이걸 통해 가지고 얻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어서 그 일을 하는 거지 결코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없는 것 이것이 죄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는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절대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없다라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평화의 사람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인 거죠. 예수님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라고 하는 존재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또 나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세상과의 관계에서 화목을 이루고 화평을 이루고 바른 관계 서로 사랑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경험하고 그분이 나를 위하여 어떠한 삶을 사셨고 그분이 나를 위하여 어떠한 희생을 행하셨는지를 오직 아는 자들 그 자들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과 나 자신과 이웃과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가능하다라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가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 평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내가 알고 내가 경험하고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고 맛 볼 때마다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나 자신을 희생하고 내어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골로새서 1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는 자기가 누구냐면 하나님인데요. 하나님께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화평이라고 하는 것이 넘쳐 나가지고 이 땅에 있는 모든 것, 하늘에 있는 것, 바닥에 있는 것, 인간과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 이게 하나님 당신의 꿈이고 계획이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라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희생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걸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맛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그 능력과 그 힘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나”이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 나를 내어줌으로 화평과 화목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나를 손해 보는 어떤 선택과 결정들을 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그렇게 살 때 받게 될 누리게 될 복의 내용입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9절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이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들은 어떤 취급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호칭으로 불려질 거라는 거죠. 여러분 여기 나와 있는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아들이라고 하는 표현이 휘오스라고 하는 표현인데 여러분 이 아들 또 자식을 의미할 때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헬라어 단어들 속에서 휘오스라고 하는 단어를 쓸 때는요 굉장히 중요한 표현인데요. 법적인 상속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식을 바라볼 때 휘오스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단어를 뜻에 감격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요 누구였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였습니다. 여러분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되는 사람들이었 영원한 심판에 들어가야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셔서 찾아오셔서 건지셔가지고 이 심판으로부터 건져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감옥 가지 않는 거예요. 지옥 가지 않는 겁니다. 이 정도만 돼도 엄청 감사해야 되죠
근데 여러분 심지어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양자로 삼아서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들었어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여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너희가 너를 자녀로 불렀을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걸 상속할 특별한 자식으로 부른다라고 말하면서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에 대하여 보여주셨다는 것이죠. 죄에서 건져주신 것도 감사한데요. 우리를 자식이라고 말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요.
이걸 뛰어넘어서 넌 나의 유일한 자식이야 특별한 자식이야 나의 모든 걸 이어받을 상속자야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화평을 위하여 수고할 때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애쓰고 수고할 때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삶의 선택들을 이어갈 때 나는 너를 내 아들 내 독자 내 상속자라고 부르겠다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자들은 내 자식이라고 부를 거라고 내 상속자라고 부를 거라고 내 특별한 자식들이라고 부를 거라고 그러니 힘을 내고 그러니 다시 또 힘을 내서 너의 본성은 원하지 않지만, 너희의 힘과 능력으로는 자기를 희생해 가지고 평화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이 상을 보기를 바라고 이상을 받기를 원한다면 오늘 너희가 너의 삶속에서 너를 희생하는 선택을 함으로 평화를 만들어내라라고 지금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 교회가요 진짜 이상합니다. 여러분 원래 교회는요 평화의 장소여야 돼요. 정말 천사들이 모여 있어가지고 정말 이렇게 얼굴만 봐도 평화로워야 돼요. 이렇게 근데 이상하게도 교회들이 너무 싸워요. 왜 교회가 그럴까? 여러분 이유는요 희생하지 않기 때문인 거예요. 내가 나를 끊임없이 주장하며 내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이 교회 안에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거죠. 여러분 우리가 있는 자리는요 평화가 만들어지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들은 나로 인하여 평화를 경험하는 거고요. 내가 그 직장에 그 캠퍼스에 들어가면 내가 그 직장에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평화를 경험하는 거고요. 내가 예수 믿는 자로서 내 가정 가운데 있다면 내 가정에서 나는 그 평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눠주고, 베풀고, 손해 보는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 말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온전히 내어주셨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평강의 왕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걸 쏟으셨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주님을 보고, 그 주님을 의지하며, 그 주님께 받은 사랑의 크기에 감격해서 이 세상 속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관계 속에서, 우리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를 내어놓는 선택과 결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평화를 만들어 주십시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을 통해서 이 땅이 평화로워지고, 관계가 평화로워지고, 가정이 평화로워지며, 직장이 달라지고요 이 땅에 깨어져 있는 자연과의 관계들, 망가지고 부서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여러분의 인생, 또 우리 부광교회 나누리 1청년부의 모든 것들이 쓰여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화평케 하는 자는 영어로 피스메이커라고 되어 있어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 하나님만이 주시는 그 피스를 그 평안을 그 화평을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우리 부광의 모든 청년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지음 받았잖아요. 형상이 영어로는 이미지입니다. 이미지, 하나님의 형상 근데 이 이미지 하나님의 형상이 헬라어로 뭐냐 하면 아이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아이콘 많이 들어보셨죠?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보면 무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카카오톡으로 들어가려면 뭘 눌러야 됩니까?
카카오톡 아이콘 사진
저 표시가카카오톡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 그림을 딱 누르면 카카오톡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라고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아이콘,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봅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이콘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는 왜 중요합니까? 교회는 분쟁, 분열, 다툼, 시기, 질투가 지배하는 세상에 원수 만드는 장벽을 무너뜨리고, 가까워질 수 없는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연합되고, 사랑하고, 희생하고, 구주를 위해 기꺼이 종이 되는 생명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를 경험한 성도들이 삶의 자리에서 흩어져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성도로서의 중요한 부르심 중 하나입니다. - 화종부 목사-
여러분들을 통해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서 피스메이커가 되어서 직장과 가정과 사회가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이야~! 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구나. 이 놀라운 은총을 마음껏 누리는 우리 모든 나누리 1청년부 식구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믿음 안에서, 성령 안에서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이 화평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방향성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맞지 않으면 끝내면 그만이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요 우리는 맞지 않을 때에도 서로 참으며, 서로 인내하며, 서로의 약점을 담당하며, 서로 돌보아주며, 서로의 짐을 지며 함께 화평을 이루며 살라고 성경은 곳곳에서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가치, 방향성이라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눈 앞에 세상적인 단기 유익, 육신의 만족, 세상에서 뭔가 성취를 하려고 살다가 중도 탈락하는 그리스도인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함과 화평함을 추구하고 그 과정 속에서 주의해야 될 것들을 생각하며 올바른 방향성을 추구하며 공동체를 잘 세워가는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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