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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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사무엘하 22장 36절 말씀입니다.
사무엘하 22:36 NKRV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할렐루야~ 앞 뒤 옆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온유한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무엘하 22장 36절 말씀을 통해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가 무엇일까요?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총사령관을 지냈습니다.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아이젠하워의 어머니가 열차 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어머니 옆에 앉아있던 시골 아주머니는
옆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자기 아들 자랑에 열을 올렸습니다.
자기 아들이 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최근에 하사로 진급되었다는 등, 뭐 이런저런 얘기로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자식 자랑을 했습니다.
한참 동안 자기 아들 자랑을 다한 이 아주머니는
아이젠하워의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아들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그때 아이젠하워의 어머니가 한 말은 딱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제 아들도 당신 아들과 마찬가지로 군에 있답니다.”
여러분, 온유가 무엇일까요?
온유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꼭 필요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보면,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가 말씀을 같이 살펴보며, 이 뜻을 함께 생각해보며
우리 삶에 적용하고, 결단하는 귀한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온유함이 다윗을 크게 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첫째, 하나님의 온유함 때문에 다윗이 크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유함’이란 말의 뜻은
‘굽어보심, 도움, 낮춤, 가난함’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의미들 속에 포함된 공통점은
하나님이 자기비하, 곧 자신을 낮추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높이고, 크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스스로 낮추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랑에
감사하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그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의 삶 전체를 통해 경험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 때문에드리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지금 왕좌에 앉아 있지만,
자기의 능력과 인품 때문에 저절로 그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윗 스스로가, 자신이 본래 얼마나 비천한 자였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지난 세월동안
여러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어려움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특별한 배경도 없는
초라한 일개 목동으로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적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지만,
왕이었던 사울의 미움을 받아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동굴이나 깊은 산 속에 숨어 지내야 했던 막막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과 도우심으로 왕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자기 직무를 행하지 않고, 밧세바와 간음하기도 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그녀의 남편을 암살하는
추악한 실수도 저질렀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인생의 깊은 골짜기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목동의 자리에서 자기를 높이고 들어 쓰신 하나님,
사울의 위협과 추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하신 하나님,
범죄의 자리에서도 끝내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하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하고 영화로운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미 다윗은 100번 죽어도 마땅한 더럽고 추악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그러나 서울제일교회 청년 여러분,
이게 다윗만의 일입니까?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우리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에 비하면, 훨씬 더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보다 나은게 뭐가 있겠습니까?
본래 우리는 죄로 썩어가며 멸망할 운명에 처한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공동체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 혼자 있을 때 나의 모습, 내 스스로 내면을 살펴보면
얼마나 더러운 생각과 추한 모습들이 가득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더러움과 추함을 알면서도
오히려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 오시기 위해 하늘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사람이 되어, 천하고 냄새나는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잡아 하늘로 인도하시며
우리를 하늘로 밀어 올려주시기 위해
정작 자신은 땅 밑 처절한 곳으로 내려가사
십자가의 모진 고통과 수모를 다 겪으셨습니다.
목사인 저라고 다른 사람일까요?
신학교에서 교수님이 신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왜 목회자로 부르셨을까요?
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라고 부르셨습니다.
교회를 세우라고 부르셨습니다.
타락한 도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부르셨습니다.
신학생들의 대답을 다 들으신 후에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라도 부르지 않으면 막 살것 같아서, 불쌍해서 부르셨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모든 신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만 보더라도, 제가 목사라고 여러분 앞에 이렇게 거룩한 척 서있지만,
제가 노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중학교 때 딱 1년간 방황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제 친구들이 저를 함부로 못건들었습니다.
제 친구들이 어마무시 했거든요.
지금 그 친구들 중에는 룸사롱 사장도 있고,
새우잡이 배타는 친구도 있고, 짱깨도 있고,
사회 곳곳에서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서
정말 열심히 막 살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20대 초반에 친구가 가게를 오픈했다고
개업식에 초대했습니다.
음악홀을 오픈했다고 하길래, 저는 음악하는 곳이니깐
라이브 카페, 레스토랑같은 곳인줄 알았습니다.
제가 젊잖게 보이지만, 20대 초반까지는
찬양팀에서 일렉기타를 연주했었습니다.
그때 한참 레슨을 받을 때여서, 그 친구한테 우스개소리로
혹시 밴드 구할 때 기타 없으면 연락해. 내가 도와줄게.
근데 알고보니, 그런 곳이더라구요.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 중학교 2학년 때 만나주셨다는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서 다윗이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이 낮아지셨습니다.
다윗이 그 은혜를 알고 고백했던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아지신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도 기억하고 감사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낮아짐으로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온유함을 닮아서
그 온유함으로 이웃을 섬기고,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보내야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주의 온유함이 다윗을 크게하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온유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온유함이 다윗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의 배경
다윗이 사울, 그리고 모든 원수와 싸워 승리를 거둔 후에
하나님께 부른 노래입니다.
다윗이 거둔 승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이었습니다.
다윗이 잘 싸워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승리를 노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무엇이 다윗을 크게 했다고 말합니까?
주의 온유함입니다.
주의 온유함이 다윗을 크게 했습니다.
여러분, 온유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온유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무조건 참고 인내하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온유한 사람이 비겁하거나
무기력한 사람으로 비쳐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온유의 어원적 뜻을 살펴보면,
잘 길들여진 야생마처럼 통제된 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야생마를 본 적이 있으세요?
야생마는 주인의 손에 길들여지기 전에는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해 자기 마음대로 이리 저리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야생마가 주인의 손에 길들여지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김이라는 선교사님은
온유를 ‘충성’이라는 뜻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충성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기 싫어도 명령이 떨어지면 반드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을 절제하여서, 주인의 명령에
꼭 필요한 곳에 전부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주의 온유함입니다.
하나님의 온유가 다윗과 일평생 함께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살았습니다.
사울과 그의 군대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추격하였습니다.
다윗은 오래 동안 광야에서 도망자로서 살았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추격을 받는 사람의 마음은
잠시 동안도 편하지 않습니다.
한편,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했던 부하들도
하나님께서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겼기에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요? 사울을 죽였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온유함을 주지 않으셨다면,
다윗은 사울을 죽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온유함으로 인해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온유함은 다윗이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았을 때뿐만 아니라
유다에서 왕이 되었을 때도 함께하였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온유함으로 다스렸습니다.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었습니다.
그는 두 발을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온유함을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모든 밭을 그에게 주었고
다윗의 아들들과 똑같이 왕의 상에서
함께 먹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다윗의 온유함을 경험한
므비보셋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무엘하 9:8 NKRV
8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온유는 다윗과 일평생 함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다윗과 같은 온유함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여러분이 원한다면
여러분은 온유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온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우리 안에 있는 가시와 같은
가혹하고 돌밭과 같은 거친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시와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부족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고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유는 사람이 가치 있는 존재이고
사람을 가치 있게 존중하도록 만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있습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지체를 한번 보십시오.
지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보입니까?
지체 안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신실하심이 보입니까?
여러분은 서로를 온유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깨어지기 쉬운 물건을 우편으로 보낼 때,
우리는 ‘취급주의’라는 스티커를 붙입니다.
이처럼 물건 하나도 깨어질까 망가질까 조심히 다루는데,
여러분은 옆에 있는 지체를 온유함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못을 나무에 잘못 박았다면 빼면 되지만, 못자국은 남아 있습니다.
가혹과 거침의 못이 사람의 마음에 박힌다면,
그것을 빼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평생을 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온유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온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9 NKRV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사야 53:7 NKRV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고난 당하실 때에도 “잠잠한 양 같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수가 없어서
입을 열지 아니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힘과 능력이 없으셔서
대제사장들에게 끌려 가셔서 심문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른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26:53 NKRV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님께서 한다 하면 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한 군단이 보통 6천명 입니다. 열 두 군단이면 7만 2천명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천사들입니다.
온유하지 못하여 혈기를 부리는 베드로에게
온유함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온유는 힘과 능력이 없어서 낮아지고
사람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는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을 자신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온유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싶다고 해서 함부로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있더라도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온유를 사모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세우시기 위해
먼저 낮은 곳으로 우리에게 오셨던 것처럼...
다윗이 온유함으로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여 사용하였던 것처럼...
온유가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을 다스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낮은 곳으로>
기도
우리가 가진 능력과 물질, 시간과 에너지를 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온유한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께서 먼저 아낌없이 나를 위해 낮아지신 것처럼 나도 받은 사랑을 낮은 곳으로 흘러보내는 주의 온유함을 닮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능이 18일 남았습니다. 수험생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공부하는데 지치지 않도록 체력과 새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는 수험생들 되게하소서
우리에게 맡겨지 영혼,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각자의 기도제목을 놓고 주여 세번 부르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헌금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의 온유함을 닮게 하셔서 주님이 먼저 낮아지신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영혼,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낮아지고, 섬기며, 헌신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룸 청년 공동체를 축복합니다. 주의 온유함을 닮은 주의 청년들이 함께 세우고, 격려하며, 사랑을 나누는 섬김의 공동체로, 성숙한 공동체로,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는 공동체로 쓰임받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말씀을 듣고 내일부터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학교 선교사, 직장 선교사, 사업 선교사, 가정 선교사, 군대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 사모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정성으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꿈꾸는 모든 일들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주의 온유함을 닮은 청년들 되게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역사하실 주님 한분만을 기대합니다.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와 함께하시며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내주 교통하심이
예수님처럼, 다윗처럼 주님의 뜻을 위해 낮아지고,
나의 힘을 통제하며 사명을 위해 사용하기 원하는
여기 있는 모든 청년들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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