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과 보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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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눅 10:1-2
제목: 부르심과 보내심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외에 70명의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절 말씀을 보시면,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세우사”라는 표현은 헬라어 문헌에서 외교 상황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이나 하나님께서 주어로 등장할 때에만 사용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과 사도행전 1장 24절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공적인 임명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따로 세우셨다는 이 70명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인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직무는 무엇일까요? 1절 하반절 보시면, 예수님께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두 명씩 앞서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70명의 직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아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만 바로 앞장인 누가복음 9장 57절에서 62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도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가 어떤 사람이냐. 제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죠. 그리고 누가복음 10장에서 70명을 공식적으로 세우시고 보내십니다. 파송하신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의 특징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제자의 특징 첫 번째는, 주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10장 1절에서 “주께서”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주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주님이라는 표현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높은 권위나 지위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어 부를 때 사용합니다. 예컨대, “어르신”이라는 표현의 경우에, 조선시대에 노비가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양반을 높여 부를 때 어르신이라고 불렀듯이, 주님이라는 표현, 퀴리오스라는 표현은 높여 부르는 존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님의 세 번째 의미는 세상의 주인입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권자로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표현은 예수님께만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로마의 가이사 황제에게도 퀴리오스라는 칭호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가이사에게만 붙일 수 있는 고결한 칭호가 퀴리오스가 아니라, 퀴리오스는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이렇게 간략하게 주님에 대한 의미 세 가지를 살펴보았는데요. 우리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주인으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권자로서 70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창조주이자 주권자이시라면, 그리고 그분께서 택한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로 부르셨다면, 그 제자들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을까요. 네.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순종하는 것이 정상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지만, 그들을 강제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심령을 만져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심으로써 자발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죠.
이어서 제자의 두 번째 특징은, 예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무슨 성대한 행사를 치루면서, 제자들에게 임명장도 주고, 엄청난 권한도 주고. 이런 과정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온 세상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세우셨다는 거예요. 이러한 점에서 이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임명장이나 어떤 특별한 복지나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공식적으로 제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고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주어져야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마지막 제자의 세 번째 특징은,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제자라고 하면, 스승에게 지도받는 사람, 가르침 받는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제자라는 존재는, 가르침을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목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십니까? 복음 전파의 목적으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누가복음 10장의 시점에서 열두 제자나 70명의 제자가 영적으로 완벽하게 준비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참 모자르고 부족한 상태였습니다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보내시는 겁니다. 이러한 점에서 완벽하게 준비되어야만 보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전도사역부 가족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세 가지 내용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님께 부르심 받은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을 의미하죠. 내가 배우면 배우고 싫으면 말고.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 예수님은 그냥 훌륭한 선생님이나 성인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님께 돌려지는 칭호인 주님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라고 했습니까? 온 세상의 주권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소유하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그 특별한 부르심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제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특별한 임명식이나 어떤 특별한 명찰같은 것이 우리에게 없어도, 영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제자입니다. 아무런 권한도 없고 능력도 없는 유명무실한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세우신 제자들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로 세워주신 그 목적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 내용은 세 번째 내용으로 연결되는데요.
셋째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내신 제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교실에 앉아서 학문을 배우고, 학문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을 세우셨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국내 전도부 가족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든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한지, 이런 문제는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세우셨고, 보내셨습니다.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화평교회 국내전도부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되새기며, 복음전파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복음 전파하는 교회 되도록, 오늘 사역 가운데 열매를 주시도록.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전도대원들의 건강과 생업과 가정을 위해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심에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주님, 우리를 제자로 세우신 주님, 우리를 제자로 세상에 파송하신 주님,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자된 정체성과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영적으로 너무나 타락하고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과,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국내전도부 부원들의 가족들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일을 더욱 힘쓰는 데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가족들의 건강과 생업을 지켜주시며, 자녀들의 장래와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함의 축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주관자되시며,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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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NT 누가복음2 – 데럴 벅 (pp.74)
예수님은 열두 제자 외에 70명의 제자들을 임명하심.
예수님은 그들이 여러 지역으로 가서,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준비하게 함.
지금은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임. 그러나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한 일꾼들이 너무 적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일꾼들이 현장에서 수고하는 것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기도와 절대적인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결정됨. 추수할 것이 많다는 표현을 통해 복음 전파를 위한 기회가 무르익었다고 묘사됨. 선교 사역은 흔히 추수라는 이미지로 표현됨. 추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는 위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모으는 것을 가리킴. 또한 추수할 것이 많다는 표현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때 사람들에게서 거부를 경험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점을 넌지시 알려줌.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추수를 도울 일꾼들이 매우 적다는 것. 복음 전파 사역의 목적 중 하나는 제자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 이를 통해 선교 사역에 더 많은 제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메시지가 더 널리 전파되도록 도울 것.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이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공급해 주시는 것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일꾼들을 강제로 보내서는 안 됨. 또한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야 함.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청해야 함.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리켜 ‘추수하는 주인’(직역-추수의 주인)이라고 말씀함. 이 표현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 강조함. (눅 10:21-22에서 다시 강조됨)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가 널리 전파되도록 주관하시고 이끄심.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은 이를 테면 일꾼들을 내어 쫓듯이 보내심. (에크발로는 내던지다, 내어쫓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그러나 에크발로는 강제로 내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고 준비시킨 다음, 그들을 내보내시는 것을 강하고 생생하게 표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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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더반 누가복음 (pp.474)
제자들은 가서 기도하라는 지시를 받음. 추수가 궁극적으로 그들의 추수가 아니라 주님의 추수이며, 모든 것은 주님의 제한이 없는 자원에 달려 있기 때문. 예수님은 추수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시며, 제자들이 돌아올 때 그들은 예수님을 “주”(17절)라고 적절하게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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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TC 누가복음(pp.413)
70인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음.
“세웠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헬라어 문헌에서 외교 상황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 누가-행전에서 이 동사는 예수님이나 하나님이 주어로 등장할 때에만 사용되는 단어. 본문과 사도행전 1:24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공적인 임명을 가리키며, 하나님에 의한 임명은 예수를 주로 표현한 내용으로 확인됨.
추수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하며(욜 3:1-13; 사 27:11-12)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위한 핵심 계절을 상징함. “추수의 주”는 하나님을 가리킬 수 있으나, 1절에서 예수님이 “주”로 밝혀지고, 17절에서도 “주”로 언급되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과 사실상 동일하고, 예수님께서 “추수의 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의미함.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부족하다는 말씀은 사명을 맡은 70명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심각한 말씀일 수 있고, 낙심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음. 70인은 부족한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부름 받음. 그들은 사명을 위해 가기 전에 추수를 위해 주께서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먼저 기도해야 함. “구하라”는 표현은 ‘데이스다이’인데, 이는 간청하다, 애원하다, 기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에크발레인’은 보내다라는 뜻보다 훨씬 강력한 뜻을 가지고 있음. 조금 특이한 표현으로서 일꾼들이 이 사명을 지원하는 개념보다 급파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함. 따라서 2절은 70명의 제자들이 “추수의 주인”에 의해 파송되는 것을 강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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