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하든지(골 3: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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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지(골 3:22-4:1)
<서론>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23a),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합니다.
기왕 무슨 일을 하든... 노력하고 인정받고 칭찬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가족과 직장과 학교와 친구들이 다 인정하고 칭찬하는데, 하나님께서 박수를 치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고 무의미한 일입니다.
주께서 우리가 걸어왔던 삶의 자취를 보시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고 칭찬하시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세상이 하는 어떤 칭찬은 아무런 소용없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골로새서 3:22-4:1은 사람들과의 관계중에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아내와 남편의 관계, 자녀와 부모 관계에 이어, 오늘은 ‘종과 주인의 올바른 관계’를 말씀합니다.
본문을 이 시대에 적용해 본다면, 직장에서 맺게 되는 종업원과 고용주의 관계, 부하와 상사간의 성경적 관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cf. 엡 6:5-9).
성경이 기록되던 로마시대의 종 곧 노예는 주로 전쟁의 포로로 끌려온 사람 또는 빚을 갚지 못해 남의 종살이를 하는 사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은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 그 주인의 재산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종은 법적으로 자신을 대표할 수 없었고, 주인이 명령하는 것만 하고 살아야 했으며, 주인이 원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확산을 통해 이와 같이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주인이 함께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은 먼저 사회적 약자로 살았던 그 시대의 예수 믿는 종들을 향해 그리고 이 시대의 예수 믿는 직장인들을 향해,
1.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주인과 상사에게 순종하고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22절은, 「진정성이 결여된(요즘 표현으로, 영혼 없는) 포장된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는 성실한 마음으로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 곧 이 세상의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요청합니다.
이어지는 23절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3:23a)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25절에서 그렇게 일하지 않는 것은, 불의한 것이며,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3:25a)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는 분」(3:25b)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시대에서 종으로, 이 시대에서 종업원 혹은 부하직원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억울하고 분통해 죽을 지경인 이들에게 어쩌면 이런 요구는 말도 안 되는 요구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누군가에 의해 고용되어 월급이나 일당을 받고 일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눈가림만 하지 말고,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요청합니다.
주인이 지시하는 말을 머리 숙여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왜 사회적 약자인 종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복음의 확산에 따른 사회적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 때, 각 가정에 속해 있던 많은 노예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주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고 도망쳐 나왔던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골 4:9, 몬 1:10, 12).
이런 일들 때문에 복음이 방해를 받고, 예수님이 욕을 먹는 것을 바울이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종들에게 자신들이 믿는 주님 곧 예수님께 하듯 육체의 상전들을 마음을 다해 섬기며 순종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나 월급쟁이의 경험을 해 본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아직도 그런 자리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 곧 여러분에게 월급이나 일당을 주는 직장에서 여러분의 태도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잠시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주께 하듯 해야 하고,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주인이나 상사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요 상사가 되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기에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발전, 고객의 만족, 나의 자아를 실현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성취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직장에서의 일을 통해 영광 받아야 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3:23c) 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이런 자세와 태도 때문에 주인이나 상사가 감동을 받고, 내가 두려워하는 하나님을 저들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3:24a)라고 말씀하듯이, 어쩌면 그 보상을 이 땅에서는 비록 다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의와 공평으로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주께 하듯’ 주인이나 상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주를 두려워하는 성실한 마음으로 일해, 성경적인 고용관계를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의와 공평으로 대해야합니다.
두 번째로, 그 시대의 예수 믿는 주인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크리스천 주인이나 직장의 상사들을 향해, 「의와 공평으로 종업원과 부하직원들을 대하라」고 요청합니다.
4장 1절 상반절은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어다”(4:1a)라고 말씀하며, 「의롭고 공평하게 종들을, 종업원들과 부하직원들을 대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자기가 거느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공정하게 나눠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으로서 또는 상사로서 그들의 몫을 가로채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강자인 주인이나 상사로서의 지위를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베푼다παρέχω’는 것은 종들을 한 식구처럼 여기고 저들의 삶의 필요를 다 채워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요청이 오늘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들리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3:19), 아버지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20)는 말처럼 아주 파격적인 요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종들을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공평하게 대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그런 사회적 요청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그런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대 배경 속에서 성경은 믿는 주인들에게 그들의 종들도 의와 공평을 누려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4:1 하반절은 그런 주인 또는 상사들에게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4:1b)라고 말씀합니다.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종업원에게 베풀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상전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주인으로서 상사로서 우리가 어떻게 행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시대의 종들이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믿는 주인들이라면 그들이 바친 노력과 시간과 삶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그 삶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주인으로서의 도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주인 또한 궁극적으로는 종에 불과합니다. 주인도 ‘하늘 상전’이신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주인에게 의와 공평을 베푸시기에, 주인도 종들에게 당연히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선망 받는 직장 중에 하나가 ‘구글’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높은 급여와 함께 엄청난 복지 혜택을 사원들에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어디서든 반경 45미터 이내에 비치해 둔 유기농 원료로 만든 간식을 먹을 수 있다.
구내 이발소와 미장원에서 무료로 머리를 자르고, 옷도 세탁소에서 공짜로 세탁할 수 있다.
정원에서 승마 테니스 골프를 즐길 수 있고, 주말엔 바다낚시를 떠나며, 남자 직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출산휴가를 12주 동안 간다.
이 정도면 직장이 아니라 거의 천국 수준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관계없는 세상의 사업체도 종업원을 이토록 배려한다면 예수 믿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업체도 이런 사업체였으면 좋겠습니다.
직원들의 수고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되돌려주는 사업체였으면 좋겠습니다.
부하직원들이 거둬드린 성과를 내가 다 차지 않고, 그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주는 회사, 직장상사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랫사람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수고의 열매를 같이 맛보게 해야 합니다.
주께 하듯 마음껏 헌신하며 일할 수 있는 토양을 주인이, 상사가 만들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직원들과 부하직원들을 의와 공평을 베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서, 새 사람 된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경적 고용관계를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모든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해야합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은 주인과 종업원, 상사와 부하직원 모두를 향해, 「고용관계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그 시대의 종들과, 이 시대의 종업원과 부하 직원이, 주께 하듯, 두려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모든 일에 주인에게 순종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으로서 수고한 궁극적인 대가를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보상은 우리 모두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사한 내용을 다루는 에베소서 6:8은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엡6: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일차적으로는 주인을 통해 수고한 대가가 지불되지만, 궁극적으로 수고의 대가를 지불해 주시는 분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단지 우리의 수고를 보상해 주는 통로일 뿐, 그 보상의 진정한 원천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보상의 진짜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 24절이 말씀하는 데로, ‘기업의 상’곧 ‘약속의 땅’, 한 걸음 더 나아가 천국과 구원, 완전한 해방이라는 보상을 ‘주’ 곧 예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입니다(24a).
약속의 땅 가나안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께 하듯 주인을 섬기는 그 때의 크리스천 종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종업원과 부하직원들에게 천국이, 완전한 해방이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종들(종업원들)이 섬기는 궁극적인 대상이 주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24b).
하나님께서 모든 궁극의 보상이시라는 원리는, 하나님이 궁극적인 섬김의 대상이라는 원리입니다.
따라서 이 원리는 그 시대의 주인이나, 이 시대의 사장님 상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그들이 다소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인 종업원이나 부하직원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인들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종과 종업원들에게 상을 주시는 주님이, 주인에게 상을 주시는 같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25a)라고 말씀하시며, 불의한 종들에게 불의한 것으로 갚아주시는 주님께서,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4:1a)라고 말씀하시며, 주인들에게도 똑 같은 의의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 상전이신 하나님은, 종들이나 종업원들뿐만 아니라 주인들이나 상사들까지도 결코 외모로 취하시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주인으로서, 상사로서 휘두르는 그 무소불위의 칼이 자신을 다치게 하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주님, 불공정하게 다루시지 않는 주님이, 그런 주인과 상사를 엄중하게 다루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그 시대의 종들과 주인들을 향해, 이 시대의 종업원과 사장님, 부하직원과 상사를 향해, 고용관계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해야 한다고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역할에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여, 새 사람에 걸맞은 성경적인 고용관계를 지켜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요셉 다니엘 느헤미야의 공통점은 노예 또는 포로로 이방 땅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바벨론 제국에서, 그리고 페르시아에서 주목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거대 강국의 노예와 포로로 살며, 불가능에서 가능을 만들어낸 그들의 성공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도 이런 인물이 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거둔 성공 뒤에 있는 그들의 삶의 철학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마음을 다해, 무엇을 하든‘주께 하듯’ 성실하게 그 땅의 주인을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성공은 그들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산물 일(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도 주께 하듯, 이 땅의 상전들을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요셉과 다니엘이 총리가 되고, 느헤미야가 왕의 요직을 맡은 것처럼, 언젠가는 사장님이 되고, 상사되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직원과 아랫사람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업을 통해 거둔 소득을 그들과 함께 공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관계(고용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여, 하늘 상전;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상급을 보상으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